저의 목회자 칼럼의 주 대상이 AMI교회 교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비AMI교회분들 가운데, 저의 칼럼에 동참하는 분들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래서 AMI교회의 목회자이지만, 비AMI교회분들을 감안하여, 목회자 칼럼이라는 타이틀 대신, 단순 황용현 칼럼으로 변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요즈음 제가 매주, 이스라엘 시리즈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왜 히브리인이라 부르는가?"(창14:13)라는 주제로, '히브리인'(Hebrews)에 관련된 성서적 가르침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성서에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지칭하는 이름이 다양합니다. 1. '히브리인들'(Hebrews, 창14:14), 2. '이스라엘인들'(Israelis, Israelites, 창32:28), 3. '유대인들'(Jews, 왕하16:6), 4. '여수룬'(Jeshurun, 신32:15; 사44:2), 5.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 '하나님의 백성'(God's Chosen People, 왕상3:8; 사47:6,65:9), 6. '시온의 딸들'(the Daughters of Zion, 사52:2), 7. '하나님이 택한 거룩한 백성'(God's Chosen Holy People, 신7:6)등 입니다.
이 중 우리가 '히브리인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일반적으로 노아의 5대손 에벨(히,Eber, 헬,Ebraios, 라틴어,Hebraeus)에서 기원되었다라고 추정합니다. 이 에벨의 5대 후손이 아브람(Abram)입니다(창10:21-24,11:10-26). 그러니까 아브람이 노아의 10대손입니다.
이 Eber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히브리어 Abar와 동의어로 'cross over, pass over', 즉 '건너기 또는 건넌 자'란 의미입니다. 어디를 건넜는가요? '유브라데 강입니다.
이 강가에 유명한 도시 둘(2)이 있습니다. 니므롯(창10:8)이 건설한 바벨탑(창11:9)이 있는 '바벨론'(Babylon)과,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Ur)입니다. 이 두(2) 도시가 바벨론 종교의 기원이 되는 장소라고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합니다. 아브람의 부친 데라(Terah)가 이 바벨론 종교에 심취했던 분이었습니다(수24:2). 아브람도 부친과 함께, 바벨론 종교에 열심이었던 분으로 추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예수님)이 우르(Ur)에 있는 아브람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지시하셨습니다. "고향과 친족과 부모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 요8:56-58). 아브람이 순종하였습니다.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하란(Haran)을 거쳐(창11:31), 75세에 가나안(Canaan, 창12:4-5)에 도착하여 정착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람을 '히브리인'이라 불렀습니다(창14:13). 그가 '유브라데 강을 건너온 나그네(외국인)'라는 의미입니다.
놀랍게도 이 '나그네'가 고향에서 대대로 섬겨왔던 바벨론 신을 버리고, 가나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변모되었습니다(창12:7). '영적 히브리인'으로 변모되었습니다. 단지 유브라데 강만 건넌 '육적 히브리인'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고향을 떠난 것만 아니고, 대대로 섬겨왔던 바베론 종교까지 버렸습니다. 가나안(영적으로 이세상)의 나그네로, 나라와 고향 없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차별과 미움과 왕따를 감수하며,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로 변모되었습니다. 이렇게 변모된 아브람을 '가나안 사람들'이(영적 이세상 사람들이) 이분을 '히브리인'(창14:13)이라 불렀습니다. 아브람이 '육적, 영적 히브리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신약 기독교의 '영적 히브리인'의 조상이라 합니다(롬2:28-29). '영적 히브리인'이란 어떤 분입니까? 아브라함처럼 우상(믿어 왔던 종교)을 버리고, 고향(천국)을 떠나, 잠깐 이세상 창조목적학교의 학생과 나그네로 살면서, 이세상 사람들로부터 차별과 미움과 왕따 당하는,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라고 바울이 말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롬2:28-29,9:6-8; 갈3:29; 빌3:3). 그러니 우리도 '히브리인'입니다.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받고 훈련받기 위해, 고향인 천국을 떠나, 잠깐 70-80년(시90:10) 이 학교에 등록한 학생들입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잠깐 이세상을 방문한 '나그네'요, '외국인'이요, '순례자'입니다(히11:13; 벧전2:11). 야고보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 같은 존재들이라고(약4:11).
우리는 이세상에 '나그네'로 사는 '히브리인'이지만, 본질적으로 '천국 시민권자'입니다(빌3:20; 엡2:19). 우리의 본향이 천국입니다(히11:14-16). 안타깝게도 기독교인 모두가 이런 '히브리인 사상'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직 '제자급 남은자들'(사1:9; 롬11:5)만이 가지는 사상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만 이 '히브리인 사상'을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는 이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다"(요15:19,17:14). 너희는 '육적, 영적 히브리인들'이다. 아이로니(irony)하게도,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이 '히브리인 사상'을 가진 자들이 많지 않음이 발견됩니다. 성서에서 이런 분들을 '명목상 기독교인들'(Nominal Christians), 또는 'Sunday Christians'이라 부릅니다. '영적 유아 크리스천들' 입니다(고전3:1). 이들은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에 민감하지 못합니다. '나그네'로 잠깐 방문한 '이 세상'을 영원한 고향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목적학교 일반 학생들의 영적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그러나 우수 학생으로 예정된 자는, 자신도 모르게, 은혜로 이 '육적, 영적 히브리인 사상'으로 옷 입혀집니다.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먼저 이땅에서 소금이 됩니다(마5:13). 예수님 이름 때문에, 이세상에서 미움 받으며 왕따 당합니다"(요15:19). '한알의 죽은 밀'이 됩니다(요12:24). 생명 살리는 자입니다.
이렇게 먼저 '소금'이 되어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먼저 '소금'이 되셨습니다. 그래야 '이세상의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어 '이세상의 빛'이 되셨습니다(요1:9). '빛과 소금'의 순서가 아니고, '소금과 빛'의 순서입니다. 예수님이 이 순서대로 말씀하셨고(마5:13-16), 또 이 순서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소금의 삶' 없이 '빛'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왕따의 아픔과 자존심 상처받음 없이, 어두움이 결코 쫓겨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소금과 빛'의 순서대로 섬긴 자를 천국에서 높이십니다(마5:10-12).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순서를 뒤집은 자는 상급이 없습니다. 자기 욕심과 자기 비전과 자기 영광을 위해 섬기기 때문입니다. 수 없는 사역자들이, 순서를 꺼꾸로 할뿐더러,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안타깝습니다.
이 순서대로 순종하는 제자는 정녕 슬기로운 특별한 '히브리인'입니다. 바울이 이런 '히브리인'이었습니다. 평범한 '히브리인'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히브리인중 히브리인' 즉 '특별한 히브리인'이라고 자랑했습니다(빌3:5).
어떻게 바울이 이런 자랑을 할 수 있나요? 그가 예수님 복음 전하는 일로 인해, 누구보다도(어떤 히브리인보다도, 어떤 기독교인보다도), 자신이 더욱 심하게 미움받고 핍박받으며 왕따 당했던 '소금 히브리인'이었으며, 그리고 '빛의 히브리인'(기독교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두짐승’(계131-18)의 사주 하에,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 즉 '이세상 낙원화' 구축을 위해,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들려는 '종교다원주의'가 득세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적그리스도 사상'(요일2:18)으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시켜, 구원까지 놓칠 수 있게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마24:23-28).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오늘날 히브리인들(기독교인들)이, 이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 삶에만 바쁩니다. 노아의 홍수전 시대와 같습니다(마24:37-39). 놀랍게도, 예수님이 자신의 재림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영적 무감각 상태로 될 것까지도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위시한, 세계 기독교인들 중에, 바울과 같은 '소금과 빛 히브리인', 즉 '히브리인중 히브리인'의 사상을 가지고,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 어두움을 쫓아내는 '빛' 사역하는 분들을 상당히 많이 발견합니다. 세계 각처에서 이들에 의해 마지막 추수 사역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의 임박성을 입증하는 강력한 징조 중 하나입니다(마24:3,14). 이들은 성서적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으로 무장된 분들입니다. '이 땅의 소금들'이며 '이 세상의 빛들'입니다. 왕따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즐깁니다.
오늘도 이들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듣던지 안 듣던지,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기독교 공동체 안에 종교다원주의 누룩을 먹고 휘청거리는 자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어가는 자들입니다(계3:1-6). 이들을 깨우기 위해, 추수꾼들이 외치고 있습니다. 미움과 핍박과 왕따 속에서, 오히려 은혜로 기쁨과 감사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히브리인중 히브리인'입니다. 우리도 이 반열에 꼽사리 껴야만 합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께서 이 꼽사리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합시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