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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9 13:18

황용현 칼럼 2022.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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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설교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전수 받은 야곱"(창28:3-4)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 우르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법적 계약(covenant)을 받았습니다(창12:2-3). 이 내용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입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의 복'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이 이러합니다. "아브라함아,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창12:2).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내리는 복입니다. 선교학에서 이 복을 '상단 복'(topline blessing)이라 부릅니다.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리라. 네 안에서(in you)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창12:3). 네 안에서는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성육신 하실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여기에 언급하신 족속은 히브리어로 mishpachad(300회)이며, 그 어원이 saphah(언어족속, tribes) 입니다. 재해석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것이라는 계약입니다. 이것을 선교학에서 '하단 복'(bottomline blessing)이라 부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복이 두(2) 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상단 복'과 '하단 복' 입니다.

저는 이 이브라함의 복을 '창조목적학교 구조 차원'에서 재해석하려 합니다. '상단 복'을 '조교팀 복'으로, '하단 복'을 '교장 탄생 복'으로 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이 계약을 아브라함(주전2166-1991)에게 한번만 하신 것이 아니고, 같은 내용을 무려 네(4)번이나 하셨습니다.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1)창12:2-3(우르에서), (2)창15:5(헤브론에서), (3)창18:18(헤브론에서), (4)창22:17-18(모리아산에서) 입니다. 그후 이삭(주전2066-1886)에게도 한(1)번 했습니다(창26:3-4, 그랄에서). 그런데 신기하게도, 야곱(주전2006-1859)에게는 조부 아브라함에게처럼, 네(4)번 했습니다. (1)창28:3-4(브엘세바에서 이삭의 기도), (2)창28:13-14(하란행 도중, 벧엘에서, 돌베개, 꿈, 사닥다리사건 때), (3)창32:28(20년후, 귀환도중 얍복강 근교 브니엘에서 새이름 이스라엘 받음), (4)창35:10-12(다시 벧엘에서, 이스라엘 이름 재확인하시면서)입니다.

상기에서 언급 했듯이, 아브라함의 복 속에 두(2) 종류의 복이 담겨 있습니다. (1)'조교팀의 복', (2)'교장 탄생의 복' 입니다. '조교팀의 복'이란 무엇입니까? 이는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창조목적학교 학생, 유대인을 제외한 99% 이방인)에게, 역사 현장에서, 눈높이로, 역기능적 교육방법으로, 무대 배우로, '창조목적의 중요성과 절대성'을 보여주기 위해, 조교로 선택받은 복입니다. 이 복프로그램이 이미 창세전에 디자인 되어 있었음을, 요한에게 보여주었습니다(계12:1-2,5). 그런데, 이 디자인을 유대인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깨닫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물론, 신약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것을 해석하는데 어려워했습니다. 계12:1 해석하는데, 온갖 이론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돈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었습니다. 전 3년반, 6번째 나팔 불 때였습니다. 요한에게 천사의 손에 있는 '작은 책'을 먹도록 명령했습니다. 요한의 영성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영의 양식' 입니다. 요한에게 이 '작은 책'을 먹게 하여 영성을 업그레이드 시켜준 후, 다시 예언케 했습니다(계10:1-11).

그 첫 예언이 '제3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예언' 입니다. '이슬람 성전'은 측량하지 말라는 예언입니다 (계11:1-2). 그리고 두(2)번째 예언이 '두 증인(two witnesses)에 대한 예언' 입니다(계11:3-12). 이때가 바로 전 3년반 후기인, 6번째 나팔을 불 때입니다. 그리고 7번째 나팔을 붑니다(계11:12). 전 3년반 때의 마지막 나팔입니다. 이때에 요한에게, '하늘에서 나타나는 큰 이적'(a great wonder in heaven)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전에 디자인하신 '이스라엘의 조교팀 복 프로그램' 입니다(계12:1).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조교팀의 복 프로그램'을 주신 것이, 이들이 잘나서도, 운이 좋아서도, 또는 우연도 아니며, 이것이 바로 '삼위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인 창세전 디자인'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의 이성이나 논리로는 소화 할 수 없습니다. 요한도 소화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가 '큰 이적'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큰 이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한 '여인'의 나타남입니다. 이 '여인'의 모습이 특이합니다. 해(sun)로 옷 입고, 발 밑에 달(moon)을 두고 있으며, 머리에는 열두 별(12 stars)이 있는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여인이 장차 니므롯(창10:8)에 의해 나타날, 바벨론 종교(창11:9)와 연관 있는 여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해 줍니다. 이것이 바벨론 종교의 세(3)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니므롯이 태양신이며, 그 부인 세미라미스가 달신이며, 그 아들 담무즈가 별신입니다. 12별이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상징입니다. 경이롭게도 이 창세전 디자인 그대로, 이스라엘의 12지파 모두가, 구약과 신약 역사 전반에 걸쳐,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거나, 또는 바벨론 신들과 혼합하여, 이들을 섬기는 배교행위(apostasy)를 범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럴 때마다, 역기능적 조교팀들인, 아브라함의 아랍계 후손들, 즉 하갈 후손들(창25:12-18), 그두라 후손들(창25:1-4), 에서 후손들(창36:1-43)을 사용하시어, 이스라엘을 혼쭐을 내게 하셨습니다. 이 아랍팀들이, 이스라엘에게 창조목적의 중요성과 절대성을 교육시키는 역기능적 교육방법의 도구들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입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이 이미 창세전 디자인 되었다는 사실(계12:1)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이 세상이 예정된 하나님 자녀들을 향한 창조목적학교이며, 우리가 학생이며,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이 이 학교의 조교팀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들 유대인과 아랍인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은혜로 조교팀으로 택정받은 '조교팀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계약하신 '첫(1)번째 복' 입니다(창12:2).

아브라함에게 계약하신 '두(2)번째 복'이 무엇인가요? '교장 탄생의 복' 입니다(창12:3). 이것도 아브라함께 주셨지만, 실제로 창세전 디자인입니다. 창세전에 이 해(sun)를 입은 여인(이스라엘)이, 아이를 배고 산고로 울부짖으며 아파하는 모습을 요한에게 보여주셨습니다(계12:2). 그녀가 사내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사건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평범한 아이가 아닙니다. 모든 민족을 철장으로 다스리는 왕이시라고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계12:5). 예수님이 왕중의 왕이십니다(딤전6:15; 계17:14,19:16). 창세전 디자인입니다. 우리가 이미 공부했던, '하나님의 신비'(고전2:7; 롬16:25-26; 계10:7)와 '그리스도의 신비'(엡3:4)가 이 예언 속에 숨겨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이 예언을 성취하는 스토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스라엘 400년 노예의 삶과 출애굽 스토리(창15:13-16; 출12:1-36), 이삭 모리아산 바침 스토리(창22:1-19), 예수님의 유다 후손 이야기(창49:8-10), 예수님 십자가상의 저주 이야기(신21:23; 시22:1; 사53:4-5; 마27:46; 요2:21,19:30)등 모두가, 이 여인(이스라엘)이 아이를 배고 산고로 울부짖으며 아파하다가, 드디어 사내아이를 출산하는 이야기입니다. '교장 탄생의 이야기' 입니다.

이제 우리가 계시록 12:1-2,5의 '큰 이적 환상' 속에, '아브라함의 두(2)복 스토리'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기록한 스토리입니다. 그가 '작은 책'을 먹은 후였습니다. 일곱(7)째 나팔을 분 후였습니다. '전 3년반 마치는 때' 였습니다. 아직 '후 3년반' 시작하기 전입니다. 지금까지의 예언 모두가 요한이 '6째 나팔 기간', '작은 책'을 먹은 후, 다시 했던 예언들입니다. 그 예언들을 재정리 합시다. '제3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는 예언(계11:1-2)과 '두 증인'에 대한 예언(계11:3-12)입니다. 그후 일곱(7)째 나팔을 붑니다(계11:15). 그리고 첫 예언이 바로 '해(sun)로 옷 입은 한 여인' 환상입니다(계12:1). 일곱(7)째 나팔기간 행했던 첫 예언입니다. 요한이 이 '작은 책'을 먹은 후부터(계10:10), 다시 예언을 시작하여 계시록 22장까지 그의 예언이 계속됩니다. 그가 '작은 책'을 먹었기에, 영성이 조금 업그레이드 되었기에, 이해하기 힘들고 해석하기도 힘든 예언들을 받아 기록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병아리 시각'에서 '참새 시각자'로 변모되었습니다. '그릇'이 약간 커졌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22장까지 기록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작은 책'의 위력이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은 책'이 '요한의 그릇' 싸이즈를 조금 크게 만들어 주었고, 그를 '병아리 시각'에서 '참새 시각자'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요한이 먹었던 이 '작은 책'이 무엇일까요?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저세상, 이세상, 저세상 시나리오'가 담긴 책이라 믿고 싶습니다. 특히 '이세상 7천년 창조목적학교의 구조'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요한이 이 책을 먹고, 영성이 어느 정도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처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은 책'을 먹고, 계시록 12장을 받았을 때, '두(2) 단계의 아브라함의 복'인 (1)'조교팀의 복'과 (2)'교장 탄생의 복'을 어느 정도 어렴풋이 알았을 것입니다. 이 '두(2) 복들'이 자신이 환상으로 본, '해(sun)로 옷 입은 여인'을 통해 성취될 것도 어렴풋이 알았을 것입니다. “황목사님, 왜 '어렴풋이'란 단어를 사용하십니까?” 독자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가 이 메시지를 받았을 때가 주후 95년입니다. 그가 '병아리 시각'에서, 어느 정도 '참새 시각자'가 되었더라도, '이세상 7천년'을 한 눈에 볼 수 있었겠나요? 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는 볼 수 있는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독수리 시각자'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7천년'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독수리 시각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독자들은 이런 '독수리 시각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은혜로 '남은자 반열'('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신부 반열')에 들어온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황목사님, 내가 은혜로 '남은자 반열'에 들어온 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간단 합니다. '남은자의 성품'을 가지고, 주변의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분량대로 안아주며', '우상을 섬기지 않으며', 예수님을 '최우선 섬기며', 그분을 '최우선 사랑하며', '추수꾼 역할을 신실히 감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는, 분명 '남은자 반열'에 들어온 자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단지 '7천년'을 한눈으로 본다고 해서, '남은자 반열'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안되겠습니다. 이 '7천년 시각'은 단지 남은자 반열에 들어오는 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요한이 먹었던 '작은 책'보다 더 업그레이된, 이보다 더 '큰 책'을 먹고 있는 자들입니다. 요한이 '작은 책'을 먹은 후, 기록만 했던 계11-22의 숨겨진 심오한 신비들을, 이제 우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소화하며 해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남은자 반열'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좋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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