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에 "이제부터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3:39)라는 주제로 공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시리즈 32번째였습니다. 본문 말씀이 이러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고난주 화요일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 의미가 이러합니다.
이는 곧 시작될 교회시대부터(승천후, 예루살렘교회부터) 시작하여, 유대인들이 눈이 감기어, 본래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예수님이신데, 이 사실에 눈이 감기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이미 이들이 구약시대 전반에 걸쳐, 여호와 하나님을 성부 하나님으로만 믿어왔습니다. '일위(성부)(one Father God only) 신관' 입니다. '성령'은 단지 '성부의 부속물'로 취급했습니다. '성자' 개념은 아예 없습니다. 예수님 예언에 의하면, 이들 유대인들이 신약시대에도 계속하여 이 '일위 신관'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헬. kairos, 영. time, 전3:1)가 되면, 유대인들이 드디어 눈이 뜨이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다시 말해 그때가 되면, 자신들의 하나님(Elohim, 창조자, 창1:1)이, '일위'가 아니고, '삼위 하나님'(Trinity God, Triune God) 이심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또한 '구약의 여호와'가 이 삼위 중, '성자 예수님' 이심을 깨닫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이 예언대로, 성경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삼위 하나님'으로 표기되어 있는데도(창1:1, 1:26, 3:22, 11:7; 사6:8), 이들이 눈이 감기어 분간을 못했습니다. 신약에도 마찬가지입니다(마3:16, 28:19; 고후13:14; 요일5:7). 분명 '삼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보지를 못했습니다. '주권자 하나님'(롬9:6-23)의 철저한 디자인 이었습니다.
'삼위 하나님'이란, '성부', '성자', '성령'을 말합니다. 이 삼위는 서로 계급의 상하가 없습니다. 동위, 동등하시며, 동질이시며, 동량이십니다(요5:18, 10:30; 빌2:6). 모든 것을 '공동 소유' 하십니다(요16:15). 결정 사항을 '공동 회의'에서 하십니다. 성부가 단지 기능적 최상위자로 의장, 공포자, 파송자 역할을 하십니다. 그가 성자를 이 세상에 파송 하셨으며(요3:16), 성자를 통해 그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십니다(요14:6).
성령은 '능력 베푸시는 분' 입니다. 성육신하신 성자를 도우셨습니다. 신성을 완전히 비우시고 100% 인간이 되신 성자께(빌2:7), 능력을 베푸셨습니다. 성자가 이 능력 받으시기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성자는 100% 인간인 '인자'(the Son of man, 요3:13)가 되셨기에, 장차 당하실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 괴로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성령이 천사를 보내어 도우셨습니다(눅22:43).
신성을 비운, 100% 인간이셨기에, 잠시 지적 한계도 경험하셨습니다. 재림하실 정확한 그날과 그 시간을 인간 예수로는 모른다고 하셨습니다(마24:36). 그는 잠시 천사보다 조금 낮아 지셨습니다(히2:9). '이 세상 죄'를 지신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습니다(요1:29). 그는 무죄 하시고(벧전2:22), 죄를 알지도 모르시며(고후5:21), 흠 없는 어린양(벧전1:19) 이십니다. 그가 승천(행1:9)하신 후, 다시 '100% 신성자'로 복귀하시어, 보좌에서 영광 받으시는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계5:13).
성부는 피조물들과 직접 관계하지 않으십니다. 창조에 있어 성부는 '계획자'로, 성자는 '수행자'로, 성령은 '능력 부여자'로 역할 분담하십니다. 성자는 공동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직접 '수행하시는 분' 입니다. 성자가 피조물들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창조하셨으며(시8:6), 말씀으로 창조하셨으며(시33:6), 권능과 지혜로 창조하셨습니다(렘10:12). 이런 차원에서 예수님이 만유의 창조자 이십니다(요1:3). 또한 인간의 역사를 직접 운행하시며(시103:19), 인간의 친구도 되십니다(요15:15).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원자 이십니다(마1:21).
그러므로 예수님이 자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의 소유주 이시며(시24:1), 통치자 이시며(시67:4), 만물을 자신의 발아래 두시고(히2:8), 자신의 장중에 두시고(시104:24-25), 다스리는 분이십니다(마28:18). 창조목적학교의 교장이십니다. '이 세상 7천년 창조목적학교' 폐교식 때, 그가 이 학교를 성부께 바치십니다(고전15:24).
이 예수님이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최초로 나타내신 이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히. YAHWEH Elohim, 영. YAHWEH God, 야웨 하나님, 창2:4) 입니다. 이것이 '성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의 뜻이 "Covenant God, 보혈 흘리시기로 법적 계약하신 하나님" 입니다. 창세전 예정하신 십자가 사건, 즉 '하나님의 신비'(고전2:7; 롬16:25-26; 엡1:3-14)를 확인해 주는 이름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십계명의 제3계명' 때문에(주전1446, 출20:7) 이 이름을 발음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모음을 없애고, YHWH로만 표기했습니다. 성경에 이 이름이 나올 때, 발음하지 못하고, 머리 숙여 경외만 표했습니다. 그후, 주전 2-3세기 경,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어 Adonai(영. Almighty God, 전능자 하나님) 입니다.
그후, 주후 7-10세기 경, 맛소라 사본(Masoretic Text)에서 이 발음하지 못했던 YHWH('Covenant God')을, 발음할 수 있게, Latin어 Jehovah(여호와, 계약하시는 분)로 표기했습니다. 이제 'YAHWEH'가 'Jehovah'로 새로 표기되어 발음할 수 있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한편 발음할 수 있는 Adonai(Almighty God, 전능자 하나님)이름에도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주전 722년부터, 해외에서 디아스포라로 살고 있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몰랐습니다. 그리스어에만 능통했습니다. 이들이 히브리어 구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애굽의 Alexandria 도시에 사는 70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이들을 위해 '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을 했습니다(주전284-247).
이 새롭게 번역된 '그리스어 구약'을 '70인역, Septuagint'라 합니다. 여기에 이 학자들이 히브리어 Adonai를, 헬라어로 Kurios(영. The Lord, The Master, 주님)로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King James Version, NIV, 한글 개역성경 등에, '야웨', '아도나이', '여호와'를 '주님'으로 번역 되었습니다. 이 '주님'이 바로, '야웨 하나님'(창2:4), '예수님'(마1:21) 이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곧 '예수님' 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앞으로 있을 교회시대에, 유대인들이 이 '예수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모르게, 눈 감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잘잘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디자인' 입니다. 예수님의 '생명 살리는 원칙'(요12:24) 때문입니다. 유대인이 '잠시 눈이 감겨 죽어야', 99%의 '예정된 이방인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명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이 스케쥴에 따라, 12제자들과 바울팀 등 초대교회의 소수의 유대인만 잠시 눈뜨게 하여, 이방인들을 복음화시키게 한 후, 주후 70년 이후부터 교회시대 거의 전반에 걸쳐 완전히 눈 감기게 되었습니다.
이 스케쥴에 의하면, 교회시대에 유대인이 예수님 믿으면 안됩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찰 때까지 눈 감겨져야만 합니다. 이 디자인을 성취하시기 위해, 유대인이 예수님 믿지 못하게, 교회가 '반유대주의'(anti semitism)를 하게 하셨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 정교회들, 개신교 주류 교단들입니다. 결코 이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들어와서, '친유대주의'(pro semitism) 기독교인들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1,900년만입니다. 이들로 인해, 유대인중 예수님께 호감을 가지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요? 하나님이 예정하신 이방인의 숫자가 차가고 있다는 싸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롬11:25-26). 이와 비례하여, '메시아닉 유대인'도 조금씩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중재림(살전4:16) 전까지의, 예정된 이방인의 충만한 숫자가 차면, '144,400명의 메시아닉 유대인'(계7:1-8)의 숫자도 차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급속도로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숫자가 차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모두가 성경적 유대인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숫자가 차가고 있음은 확실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예정된 이방인 숫자가 차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닥쳐오고 있는 온갖 산고의 태풍에 매몰되지 말고, 태풍을 치고 올라가는 독수리도 되었다가, 또 내려오는 참새도 되었다가, 병아리도 되는, 전천후 사역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태풍 가운데, 우리는 직접 간접으로, 이 이방인 숫자 채우기와, 유대인 숫자 채우기에 참여하는 지혜로운 사역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들림 받는 신부의 life style 입니다(마24:37-25:46).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