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2026.02.20 08:47

황용현 칼럼 2026.2.20

Ami
조회 수 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욥의 네(4) 친구들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이들의 이름들이 이러합니다. (1) 엘리파스(테만인, 욥4:1)와 (2) 빌닷(수아인, 욥8:1)과 (3) 소팔(나아맛인, 욥11:1)과 (4) 엘리후(부스인, 욥32:2) 입니다. 이들이 욥의 친구들이지만 욥보다 젊은 분들입니다(욥30:1,12). 이중 엘리후가 가장 젊었습니다(욥32:6). 욥(우스인, 욥1:1)과 동향인들이 아닙니다. 이들 모두가 여호와(예수님)를 믿는 자들처럼 말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욥이 동방의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큰 분임(욥1:3)을 알았습니다.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피하는 자임(욥1:1)도 알았습니다. 욥을 경건한 지도자로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속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욥에 대해 두(2)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이 욥에 대한 비보를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상당히 슬퍼했습니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욥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욥의 모습을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앞의 세(3) 친구들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각기 자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자기들 머리위에 재를 뿌리며 대성 통곡하였습니다. 이들이 욥과 7일간 함께하면서, 그를 위로했습니다(욥2:11-13).

 

욥이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욥이 이 세(3)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 모친의 태에서 죽어 나왔으면 좋을 뻔했다. 내가 어찌하여 태어났는지 모르겠다"(욥3:1-26)라고 자신의 괴로움을 이들 세(3) 친구들에게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욥의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본심은 이러했습니다. 이 세(3) 친구들이 방문하기 전입니다. 전 재산과 일곱(7) 아들과 세(3) 딸을 잃은 직후입니다. 그가 여호와(예수님)께 자신의 본심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신앙고백입니다. 그 내용이 이러합니다. "내가 내 어미의 태에서 맨몸으로 나왔으니, 내가 맨몸으로 돌아가리이다. 주신 분도 주시요, 빼앗아 가신 분도 주시니, 주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욥1:21)라고 자신의 속마음을 여호와(예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욥의 본심'이며 그의 '신앙고백' 이었습니다.

 

이 '욥의 본심'에서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아하! 그가 '독수리 시각자' 이구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하! 그가 '하나님의 주권'(롬9:6-23)을 철저히 인정하는 분이구나!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이 세상을 잠깐 방문한 '나그네' 이구나(히11:13; 벧전2:11)라는 사상을 가진 자임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런 어려운 고통 가운데에도, 그가 "주의 이름을 송축하는 모습"(욥1:21)을 보면서, 아하! 그가 창조목적 학교의 '우수학생' 이구나!라는 사실도 발견됩니다. 이것이 '욥의 영성'이었습니다.

 

이런 '욥의 영성'을 모든 크리스천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상기 세(3) 친구들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네(4)째 친구인 엘리후도 없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욥보다 훨씬 낮은 영성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욥을 위로하려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이 욥에게 인간적인 따뜻한 말로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꾸짖었습니다. 욥이 죄를 지었기에 이런 고난 받는다고 비난하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렇게 놀랍게도 이들이 위로 대신 욥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욥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다고 하면서, 회개하라고 꾸짖었습니다(욥4:18, 5:25-27, 8:6,18-22, 11:14, 22:21-30, 33:12). 욥은 이들의 꾸짖음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욥6:25-30, 16:17). 욥은 이들이 지혜로운 자들이 아님을 알았습니다(욥17:10). 이들이 자기보다 낮은 영성 소유자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꾸짖음이 오히려 욥의 고통을 가중시켜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욥의 영성이 네(4) 친구들 보다 훨씬 고차원이었습니다. 욥이 알았습니다. 이 네(4) 친구들이 자기보다 영성이 낮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들로부터 위로 받기보다, 오히려 이들이 자신에게 괴로움을 더 안겨줄 것도 알았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그러나 욥이 7일간(욥2:13) 꾹 참고 이들의 꾸짖음을 견뎌냈습니다. 여호와(예수님)의 은혜로 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욥이 이런 '영성'(상기 신앙고백, 하나님의 주권사상, 욥의 본심, 욥1:21)을 가질 수 있었나요? 입니다. 이런 신앙고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고백하는 크리스천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온 재산과 사랑하는 자녀들까지 모두 잃었는데 말입니다. 가정이 풍비박산 되었는데 말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라고 한 바울의 가르침(엡5:21-6:9)과 정반대 상황인데 말입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이런 절박하고 비참한 상황에서 어떻게 욥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나요? 입니다. 그가 돌았나요? 이성을 잃었나요? 미쳤나요? 분명 인간적, 이성적, 상식적 차원에서 볼 때, 욥이 비정상입니다. 다시 말해 '저차원적 시각'(두더지/병아리/참새 시각)에서 볼 때, 욥이 비정상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욥이 '고차원적 시각자'였습니다. '독수리 시각자'였습니다. '큰 그림'(Double Blessings, 제2성전 재건)을 미리 보았습니다. 왜 여호와(예수님)가 사탄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는지도 알았습니다. 그가 세(3)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이 여호와(예수님)가 자신의 주권으로 지금 나를 훈련시키고 계신단다(욥12:6-25)". "때가 차면 연단을 마치고 내가 정금같이 나오게 될 것이란다"(욥23:10-12)라고 자신이 독수리 시각자임을 이들에게 피력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것을 소화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들 네(4) 친구들이 욥을 비난했습니다. (1) 엘리파스의 비난입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신 분이시다(욥4:17). 죄지은 종을 책망하신다(욥4:18). 전능하신 분의 징계를 멸시하지 말라(욥5:17). 회개 기도해라(욥15:4). 욥아, 너는 사악한 죄인이다(욥22:1-20). 그러니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시고(욥5:25), 복을 주신다(욥22:21-30)"라고 비난하며 권고했습니다.

 

(2) 빌닷도 비난했습니다. "욥아! 죄를 고백해라. 너는 순수하지 않고 정직하지 않다. 만약 네가 순수하고 정직하다면,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하게 된다(욥8:6-7). 그러니 회개하라. 아니면 망한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은 버리지 않으신다"(욥8:18-20). 욥아! 너는 짐승 같구나!(욥18:3) 너는 악인이다(욥18:7-8). 너에게 기근과 멸망이 올 것이다(욥18:12). 너는 악인으로 음부로 갈 것이다(욥18:16-21)"라고 비난하며 저주했습니다.

 

(3) 소팔도 마찬가지로 욥을 비난했습니다. "욥아! 너는 말이 많구나!(욥11:2) 너는 순수하지 않구나!(욥11:4) 회개하라(욥11:14). 그러면 너에게 평안과 쉼을 주리라(욥11:18). 그는 화를 내면서까지 욥을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욥아! 너는 악인이며, 위선자다(욥20:5)"라고 말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알게 되지만, 상기 세(3) 친구들은 크리스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네(4) 번째 친구 엘리후는 사탄의 자녀였습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다음 칼럼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4) 엘리후는 '무지한 말'('지식 없는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the one who obscures my counsel, 예수님의 말씀을 가리고 애매하게 하는 자, 욥38:2, 42:3)였습니다. 사탄의 자녀였습니다. 상기 세(3) 친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용서받았습니다(욥42:7-10). 그러나 엘리후는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이들 네(4)명의 이 비난들이 욥의 고난을 가중시켰습니다. 욥을 위로한다고 방문한 분들이 오히려 그의 고난에 고통을 더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욥이 이들 세(3) 친구들 용납해주고, 이들을 안아주고 용서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용서가 여호와(예수님)를 기쁘게 했으며, 이로써 욥의 고난을 걷어 가시고, 그에게 Double blessings을 주셨습니다(욥42:7-10). 그런데 신기하게도 엘리후를 용서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가 사탄의 자녀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욥이 이 세(3) 친구들을 용서할 수 있었나요? 자신에게 엄청나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분들인데 말입니다. 위로하러 왔다고 하면서, 오히려 자신에게 쓴뿌리(히12:15)만 잔뜩 심어준 분들인데 말입니다. 욥은 그의 이성과 논리와 상식으로는 용서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해냈습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이 말입니다. 여호와(예수님)께서 이들을 용서하라고 하실 때, 한마디의 토씨도 달지 않고 순종했습니다(욥42:7-9).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는 욥이 예수님의 은혜로 '독수리 시각자'였기 때문입니다. '큰 그림'(제2성전 재건, 예수님의 초림)을 본 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그림'을 보게 되면, 작은 문제들과 작은 산들은, 그저 발밑으로 보면서 밟고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욥이 이 세(3) 친구들을 이런 시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자신을 훈련시키는 도구들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과 그 팀들도, 욥처럼 '큰 시각'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세상/이세상/저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며 보는 시각이었습니다(마5:3,10). 그러니 이들 모두가 용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이 이 큰 시각으로 살다가 본향(히11:16)으로 갔습니다. 바울이 자신이 이런 '큰 시각자'라는 사실을, 그의 저서인 로마서 8장-16장에 자세히 기록했습니다(주후57). 고난 중에 있었던 로마에 있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 시각을 가지고 살다가 본향에서 만나자라고 도전하였습니다.

 

그후 그가 빌립보서를 저술하면서(주후60-62), 고난 중에 있는 자신의 제자들인 빌립보 팀들에게도, 이런 큰 시각을 가지고 살다가 본향에서 만나자라고 도전했습니다. 그 도전이 이러했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하는 것을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알리게 하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보는 자는 이런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이 평강이 있습니다. 본향을 사모하는 자는 용서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용서의 삶을 사는 자에게는 이 평강이 있습니다. 욥과 바울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가 욥의 삶속에서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고난과 핍박과 자존심 상처속에서도, 항상 용서가 있었고, 감사와 평강이 있었습니다. 이 욥의 성품을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과 그 팀들이 전수받았습니다. 그리고 2천년 교회 역사속에서, 이 성품이 전세계의 '예수님의 신붓감들'에게 전수되어 왔습니다. 오늘날에도 전수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욥을 포함한, 이들 모두가 공중 혼인잔치(계19:7-10)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천년왕국(계20:4,6)과 신천신지(계21:24, 22:5)에서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저의 기도제목입니다. AMI 팀 모두와 독자들 모두가, 이 '신붓감 반열'에 들어오도록 말입니다. 이런 분 되시려면, 욥처럼 바울처럼, 용서의 삶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평강의 삶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합니다.

 

황 용 현 목사

unnamed.jpeg

 


  1. 황용현 칼럼 2026.2.20

    Date2026.02.20 Views6
    Read More
  2. 황용현 칼럼 2026.2.13

    Date2026.02.13 Views9
    Read More
  3. 황용현 칼럼 2026.2.6

    Date2026.02.06 Views15
    Read More
  4. 황용현 칼럼 2026.1.30

    Date2026.01.30 Views31
    Read More
  5. 황용현 칼럼 2026.1.23

    Date2026.01.23 Views40
    Read More
  6. 황용현 칼럼 2026.1.16

    Date2026.01.16 Views41
    Read More
  7. 황용현 칼럼 2026.1.9

    Date2026.01.09 Views34
    Read More
  8. 황용현 칼럼 2026.1.2

    Date2026.01.06 Views36
    Read More
  9. 황용현 칼럼 2025.12.26

    Date2026.01.06 Views34
    Read More
  10. 황용현 칼럼 2025.12.19

    Date2025.12.22 Views60
    Read More
  11. 황용현 칼럼 2025.12.12

    Date2025.12.12 Views65
    Read More
  12. 황용현 칼럼 2025.12.5

    Date2025.12.05 Views65
    Read More
  13. 황용현 칼럼 2025.11.28

    Date2025.12.01 Views80
    Read More
  14. 황용현 칼럼 2025.11.21

    Date2025.11.21 Views688
    Read More
  15. 황용현 칼럼 2025.11.14

    Date2025.11.14 Views102
    Read More
  16. 황용현 칼럼 2025.11.7

    Date2025.11.07 Views94
    Read More
  17. 황용현 칼럼 2025.10.31

    Date2025.10.31 Views90
    Read More
  18. 황용현 칼럼 2025.10.24

    Date2025.10.24 Views84
    Read More
  19. 황용현 칼럼 2025.10.17

    Date2025.10.17 Views121
    Read More
  20. 황용현 칼럼 2025.10.10

    Date2025.10.10 Views113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