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2026.02.06 08:32

황용현 칼럼 2026.2.6

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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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아내에 대해 상고하려 합니다. 그녀는 당대 동방에서 가장 큰 자의 아내였습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최상위에 있었던 분의 아내였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신앙적으로도 아주 경건했던 분의 아내였습니다. 가정적으로도 행복했던 분이었습니다. 슬하에 일곱 아들들과 세 딸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들들의 생일 잔치를 성대히 마련하여, 주변분들과 즐거운 파티를 해왔던 여인이었습니다(욥1:1-4). 평범한 상위층 크리스천 가정 주부의 예표였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홀연히 온 재산이 없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곱 아들들과 세 딸들까지도 잃었습니다(욥1:13-19). 남편 욥도 폐인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심한 종기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욥2:7-8). 그런데 욥의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사탄의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건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받은 쇼크(shock)는 말로 표현 못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자랑했던 재물과 권력이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렸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사랑했던 자녀들도 몽땅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여기에 의지했던 남편도 피부병으로 초라한 모습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녀가 정성 들여 섬겨왔던 여호와(예수님) 하나님을 향해 분노를 발했습니다. 남편에게도 섭섭함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녀가 남편 욥과 하나님을 저주했습니다. "당신이 아직도 당신의 온전함을 간직하려 하느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라고 했습니다(욥2:9). 그녀가 욥이 죽기를 원했습니다(욥19:17). 자살하라는 명령처럼 보입니다. 이는 단지 그녀가 당시 받았던 스트레스와 좌절과 분노의 표출을 이렇게 했을 뿐이었습니다. 자살하라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도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께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자살하지 않게 하십니다. 가룟 유다는 자살했습니다(마27:5).

 

이때 욥이 그녀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가 말하듯이 말하는도다. 무슨 말을 그리하느뇨?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서 좋은 것을 받았을진대, 나쁜 것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라고 했습니다. 분명 욥이 독수리 시각자였습니다. 반면 그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이로니 합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고, 한 몸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창2:24; 마19:6), 어떻게 서로 상반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욥과 그 아내가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보는 시각이 서로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반대였습니다. 욥은 '고차원적 시각자'였고, 그 아내는 '저차원적 시각자'였습니다. 욥은 독수리 시각으로, 그의 아내는 두더지/병아리/참새 시각으로 이 고난을 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부부간인데, 이렇게 생각이 서로 다른가? 입니다. 이들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는가? 입니다. 이것이 결코 우연인가요? 아니면 여호와(예수님)의 디자인인가요? 저는 이것이 '예정적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를 사용하여 욥을 더욱 겸손케 만들기 위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남편을 '돕는 배필'로 창조 되었습니다(창2:18). 그녀가 욥의 '돕는 배필'이었습니다.

 

자녀들 모두는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죽이지 않고 옆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녀가 '돕는 배필'이기 때문입니다. 욥의 겸손 훈련도구입니다. 욥을 겸손 훈련시킨 후, 그녀를 통해 또 다시 아들 7명, 딸 3명을 주셨습니다. 이 세 딸들이 이전의 세 딸들보다 훨씬 미녀들이었습니다(욥42:12-15). 이렇게 그녀를 사용하셨습니다.

 

욥이 Double blessings 받았습니다. 그녀도 함께 받았습니다. 욥처럼 장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고난기간 받았던 '쓴뿌리'(히12:15)를 달고 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명 그녀는, 남편 욥에게 '성질 부렸던 일'('하나님 저주하고 죽어라', 욥2:9)을 후회했을 것이며, 부끄러워했을 것이며, 미안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쓴뿌리'가 그녀를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가 이 '쓴뿌리'를 지닌 채, 천국으로 갔다고 생각됩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예수님)께서 아내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유형입니다. (1) 평범한 주부로, 이름 없이 남편을 뒷바라지한 여인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처 사라를 비롯하여,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다윗, 솔로몬, 선지자들, 12제자들, 바울, 바나바, 디모데, 누가, 두기고, 실라 등의 아내들입니다. 이들 아내들에 대해서는 성경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이 아내들을 숨기셨습니다.

 

두번째 유형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연관된 여인들입니다. (2) 예수님의 성육신 족보에 이 여인들 이름이 있습니다. 라합(마1:5), 룻(마1:5),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마1:6), 요셉의 처 마리아(눅2:7)입니다. 이와 함께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자베스(눅1:41)와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리며 수십년 기도해 왔던 여선지자 안나(눅2:36-38)도 있습니다. 이 여인들 모두는 예수님의 탄생과 연관된 분들입니다.

 

세번째 유형입니다. (3) 민족 지도자로 추앙 받았던 여인들입니다. 에스더(주전486-465, 에2:7)와 데보라(주전1250년경, 삿4:1-5:31) 입니다.

 

네번째 유형입니다. (4) 예수님 3년 공생애 때, 예수님을 지근거리에서 섬겼던 여인들입니다. 마리아(마가의 모친, 바나바의 여동생, 골4:10), 막달라 마리아, 살로메, 수잔나,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와 요안나(마28:1;눅24:10) 등 입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누나들인 마르다와 마리아(요11:1-2) 입니다.

 

다섯번째 유형입니다. (5) 바울의 선교사역을 도왔던 여인들입니다. 루디아(빌립보교회 개척, 행16:14-40), 브리스길라(바울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분, 행18:1-22; 롬16:3-4), 뵈뵈(로마서 배달자, 롬16:1), 루포의 모친(시몬의 아내, 바울의 영적 모친, 막15:21; 롬16:13)과 로이스와 유니게(디모데의 외할머니와 모친, 딤후1:5) 등 입니다.

 

여섯번째 유형입니다. (6) 욥의 아내 유형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다가 어려운 일 당할 때, 잠시 실족하는 여인입니다. 그러다가 환경이 좋아지면 믿음이 회복되는 여인입니다. 환경에 따라 믿음이 오락가락하는 여인입니다. 이런 여인을 통해 사역자 남편이 겸손훈련 받습니다. 이런 여인들도 이렇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한 후, 그녀의 남편이 받는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는다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여인을 귀히 여기라 했습니다(벧전3:7). 욥의 아내를 향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상기와 같이 여호와(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을 다양하게 사용하십니다. 이들의 분량(롬12:3-8)과 그릇의 재료(딤후2:20-21)와 모양에 따라서 입니다. 여호와(예수님)의 주권 속에서 입니다(롬9:6-23). 오늘날 AMI 라는 깃발 아래에, 상기에 거론한 다양한 기능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여인들이 많습니다.

 

AMI 교회에서, 교회 안팎의 ABA 프로그램에서, 그리고 영상으로 입니다. 여인들의 헌신이 대단합니다. 프로그램의 주요 직책들을 이 여인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작은 책'(7대신학과 5대신비, 계10:10)을 먹었거나 먹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내민족과 타민족에게 나눠주고 있는 분들입니다. 분명 '신붓감들'입니다. 보배스러운 헌신자들입니다. 자랑스러운 저의 동역자들입니다. 저에게 이런 주옥 같은 여성 동역자들을 주심에 항상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여성들의 도움을 받으시며 사역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오늘날 모든 남성 사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여성 '신붓감들' 때문에 남편들도, 덤으로 생명의 은혜를 상속받기를(벧전3:7)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노아에게와 같이(창7:7), 온가족이 함께 이 생명의 은혜를 상속받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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