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AMI 가족 여러분, 그리고 황용현 칼럼 독자 여러분, 성탄을 은혜스럽게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카나다 토론토에서 가족들과 명절을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변을 보면, 성탄절이 이미 변질되어 있음이 발견됩니다. 이 변질된 성탄을 대부분의 교회가 여과 없이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대 분별력 없이 말입니다. 성탄이 이미 세속화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런 세속화 물결이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 예견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재림전에 반드시(마24:6) 일어나야만 하는, 복음적 산고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우리가 '은혜'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용어를 타종교에서는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에서만 주로 사용합니다. 특히 기독교인 중, '칼빈주의'(하나님의 예지와 예정(롬8:29-30)과, 하나님의 주권을 우선하는 사상(롬9:6-23))를 신봉하는 분들이 주로 사용합니다. 반면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이 사상과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그 숫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알미니안주의'(인간 자유의지와 인간 책임을 우선하는 사상, 롬5:12) 입니다. 이들은 종종 '은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칼빈주의'와 다른 차원으로 사용합니다.
기독교에는 이 두(2) 사상이 공존합니다. '칼빈주의'가 큰 톱니바퀴('독수리 시각')이며, '알미니안주의'는 여기에 달려있는 작은 톱니바퀴들('두더지, 병아리, 참새 시각') 입니다. 바울이 이 두(2) 사상을 공유했습니다(롬5-8). 자세한 내용은 저의 저서들과 영상들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칼빈주의'에서 사용하는 이 '은혜'라는 용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Ken', 헬라어로는 'karis' 입니다. 이는 "주권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호의(은총, favor)" 입니다. 이것을 노아가 받았습니다(창6:8). 에스더도 받았습니다(에2:7). 바울도 받았습니다(롬1:7). 베드로도 받았습니다(벧후1:2). 요한도 받았습니다(계22:21). 이들이 자기네가 받은 이 은혜를, 자신들의 제자들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원을 이들의 서신들에 표현했습니다.
이들이 소원했던 이 '은혜'가, 어떤 은혜였나요? '독수리 시각' 받기였습니다. 이것이 자신의 제자들을 향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극히 소수만 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 '독수리 시각 은혜' 없이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두더지, 병아리, 참새 시각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들의 시각이 제한적이었습니다. 일상의 삶의 문제들만 보며 살았습니다. 이 문제들에 매몰된 삶이었습니다. 성화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인격과 품성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옛 모습, 옛 성품 그대로 지니고 살았습니다(엡4:1-6:10). 쓴 뿌리(히12:15)를 그대로 지니며 살았습니다. 괴로워했습니다. 진리(예수님, 요14:6)로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요8:32). 근심, 걱정, 미움, 불안, 초조, 불만, 욕심, 스트레스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이들이 이런 노예의 삶을 살다가 낙원으로 갔습니다. 크리스천들이었지만, '독수리 시각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아는 달랐습니다. 그가 '독수리 시각 은혜'를 받았습니다(창6:8). 120년 후에 일어날 홍수를 미리 보았습니다(창6:3; 히11:7). 그리고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창6:22; 히11:7). 그래서 예수님께서 노아를 '의인'(righteous man)이라 부르셨습니다(창6:9). 뿐만 아니라 그를 '완전한 사람'(perfect man)이라고까지 부르셨습니다(창6:9). 그가 '독수리 시각'을 가졌기에 이런 호칭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노아를 '완전한 사람'으로 부를 수 있나요?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요3:13; 빌2:7)만, '완전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말입니다(고후5:21; 벧전1:19, 2:22). 성경에는 예수님 외에 '완전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왕상8:46; 시14:3; 전7:20; 막10:18; 롬3:23; 요일1:8). 그런데 왜 여호와(예수님)께서, 이 노아를 '완전한 사람'이라 하셨나요?(창6:9). 이는 예수님이 '비교 차원'에서 이런 표현을 하셨다 라고 봅니다.
그를 당시 모든 사람들과 비교하셨습니다. 노아만한 영적 성숙한 분이 없었습니다. 당시 그 만이 여호와(예수님)와 동행(walked with Jesus)했던 분이었습니다(주전3058-2458, 창6:9). 365세에 들림 받았던 에녹도 여호와(예수님)와 동행했었습니다(주전3492-3127, 창5:22). 이렇게 여호와(예수님)와 동행했던 분들을 '완전한 사람'이라 호칭하셨습니다. 이 두(2) 분들을, 들림 받는 '신붓감들'의 예표(type, 롬5:14)로 삼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신붓감'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이며,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입장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야 '완전하신 신랑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또 황 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방주에 들어간 사건'은 무슨 예표인가요? 이는 장차 '들림 받아 공중에서 예수님 만나는 사건'(살전4:14-17)의 예표입니다. 놀랍게도, 노아의 직계가족 8명만이 방주에 들어갔습니다(창7:7). 노아 한 분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직계가족 모두가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독자분들에게 무엇을 시사해 주는지요? 독자 한 분의 의로움(방주 짓기, 재림 준비와 외침)으로 말미암아, 온 직계가족이 들림 받고,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예표입니다. 이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노아의 직계가족 모두를 방주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창7:7).
이렇게 이들이 방주에 들어갔습니다(들림과 공중만남 예표). 그리고 7일후에, 홍수의 물들이 땅을 덮었습니다(창7:10). 이는 7일간 홍수가 내려와 땅을 덮었음을 말해줍니다. 이것이 바로 장차 있을 '7년 환난의 예표'입니다. 이 사실을 보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들림'(방주에 들어감)이, 바로 '7년 환난(7일간 홍수가 땅을 덮음) 전'에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40일간의 홍수(창7:17)는 무슨 뜻인가요? '완전 파멸케 함'의 예표입니다(창7:17-24).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여호와(예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후회'하셨다 라고 하셨습니다(창6:6). 어떻게 예수님이 후회하실 수 있는가 입니다. 성경에는 분명 예수님이 결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말입니다(민23:19; 삼상15:29; 말3:6; 약1:17).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까요? 성경 번역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해결됩니다. 히브리어 원어를 잘못 해석해서 야기된 문제입니다. 이 단어의 히브리어 원어가 'nakham'입니다. 그 의미가 'to sigh'(한숨 쉬셨다, 깊은 숨 쉬셨다)와 'to pity'(가련하게 생각하셨다)입니다.
그런데 성경번역자들이 이 단어를 잘못 해석했습니다. 'repented'(회개, 후회하셨다, KJ), 'was sorry'(미안하게 생각하셨다, NASB), 'was grieved'(슬퍼하셨다, 마음 아파하셨다, NIV)로 입니다. 한글개역이 KJ를 따라 번역하여, '후회하셨다'로 했습니다. 예수님이 결코 후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민23:19; 삼상15:29; 말3:6; 약1:17). 예수님이 노아 홍수로 모든 생명체들이 멸망되는 모습을 보시며(창7:17-24), 가련한 마음(깊은 한숨을 쉬셨던 것임)을 표현하셨던 것입니다.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시키기 위한, 역기능적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속에서, 교장이신 예수님의 마음 아프심을 노출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 아프심을 가룟 유다를 향해서도 표현하셨습니다(마26:24).
그러면 노아 홍수 당시 인구가 몇명이었을까요? 아담타락(주전4114, 창3:5-6)에서 노아홍수(주전2458, 창7:17)까지가 약 1,500년입니다. 이 기간 평균수명이 약 1천년(창5:1-32)이었으며, 일부다처 시대(창4:19)였습니다. ChatGpt에 의하면 약 40억명에서 100억명이라 합니다. 인구전문가들에 의하면 80억명이라고도 합니다. 신기하게도 재림전 시대인 오늘날 인구(80억명) 숫자와 동일합니다. 문제는 홍수이후 부터입니다. 예수님 초림까지 2,500년입니다. 이 기간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인구 전문가들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인구가 단지 1억명이었다고 합니다. 그후 19세기에 20억명이 되었다가, 오늘날 80억명으로 증가되었다고 합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 당시, 노아 가족 8명을 제외한, 다른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고 있었을까요? 분명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숫자가 얼마인지는 모릅니다. 아주 소수라 생각됩니다(마7:13-14; 눅13:23-24). 안타깝게도 이들이 '홍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마24:37-39). 이들을 홍수로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죽은 이들을 예수님이 어디로 보내셨나요? 분명 지옥으로 보내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때가 주전 2,500년입니다. 예수님 십자가 사건 2,500년전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자녀로 예정된 자라도,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의 혜택 없이는, 구원받아 낙원으로 갈수 없습니다(사53:5-6; 롬3:23-24; 행4:12). 그러므로 구약시대 하나님 자녀로 예정된 자는, 직접 낙원으로 갈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기다리는 장소가 '아브라함의 품'(눅16:22, 좋은 환경의 음부)입니다.
또한 신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었지만,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미전도 족속들)이 많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복음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도 죽어서, 직접 낙원으로 갈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 스토리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아브라함의 품'에 보내집니다. 이 장소가 바로 '복음 세미나 장소'입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간 이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가셨습니다. '복음 세미나'를 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대상이 바로 노아 홍수때 죽어서 이 장소로 내려온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낙원으로 보내셨습니다(벧전3:18-20, 4:6). 이들 만이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구약시대 다른 분들도 이렇게 교육시키시고, 낙원으로 올려 보내셨습니다. 신약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자주 이곳에 내려가셔서 이렇게 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무소부재하신 예수님(사6:3; 렘23:24)이십니다.
신기하게도 예수님께서 감람산 설교에서, 이 '노아 홍수전 사건'이 바로, '자신의 공중재림전 사건'의 예표라 하셨습니다(마24:37-39). 이 예표를 '신붓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내용이 이러합니다. 7가지입니다. "(1) 노아의 8가족들이, 들림 받는 신부들의 예표다(창7:7). (2) 노아의 방주가, 공중으로 내려오신 예수님과 그의 보좌의 예표다(마25:31). (3) 방주에 들어간 후, 7일후에 홍수의 물들이 땅에 덮인 것이(창7:10), 환난전 들림과 7년환난의 예표다. (4) 홍수 경고가 오늘날 공중재림 경고의 예표다. (5) 홍수는 물의 심판의 예표며, 7년환난은 불의 심판의 예표다. (6) 홍수때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간 자들이, 공중재림시 들림 받지 못하고 7년환난을 통과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예표다. (7) 홍수때 아브라함의 품으로 내려간 자들이, 미전도족속 안에 있는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예표다." 입니다. 독자들은 이 상기 예표들을 숙지하셔야 합니다.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이 예표들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분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는 '은혜'가 없어서 입니다. 이렇게 '은혜'가 없으면서도 목사, 신학자, 선교사, 장로, 권사 직분을 가진 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같은 복음주의자들인데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은혜의 분량이 다르며(롬12:3-6), 그릇의 재료와 모양이 다르기 때문(딤후2:20-21)입니다.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같은 복음주의자들이지만,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이들은 이 세상에 시각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무관심합니다. 예수님의 재림 메시지들인, (1) 감람산 설교(마24-25)와 (2) 7인 재앙 설교(계6:1-8:1)와 (3) 두짐승 산고 설교(계13:1-18)에 무관심합니다. 아니면 이 말씀들을 변질시켜 전합니다. 기복 메시지로, 성공 메시지로, 격려 메시지로, 문제 해결 메시지로, 교회성장 메시지로, 치유 메시지로, 예언 메시지로, 심지어 애국 메시지로 입니다. 이에 동조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많아야 합니다. 천국이 계층사회이기 때문입니다(마5:19, 23:11; 고전15:41; 딤후2:20-21; 계21:24).
그런데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분들도 있습니다. 그 숫자가 아주 더 많습니다. 이들은 상기 사역자들처럼 말씀을 변질시켜 전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두 짐승의 가르침도 첨가합니다. 이 두 짐승의 가르침이 이러합니다. 종교다원주의, 종교통합주의, 세계평화주의, 신세계 질서 확립주의, 이 세상 유토피아 추구주의, 인본주의, 인권주의, 친 공산주의, 친 동성애주의, 친 AI주의 등 입니다. RC, WCC, WEA, FTT 팀들 입니다. 이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어서 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은혜의 차원'에서 세(3) 구룹의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1) '재림 대망 구룹'(복음주의자들, 하나님의 자녀들, 독수리 시각자들, 신붓감 후보들, 큰 은혜 받은 자들, 소수), (2) '재림 비대망 구룹'(복음주의자들, 하나님의 자녀들, 두더지/병아리/참새시각자들, 비신붓감들, 7년환난 통과자들, 작은 은혜 받은 자들, 다수), (3) '두 짐승 선호 구룹'(사탄의 자녀들, 비복음주의자들, 은혜 없는 자들, 최다수) 입니다. 이 세(3) 구룹이 이렇게 '여호와(예수님)의 은혜의 수준'에 따라 구분됩니다. 독자 모두는 이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노아처럼 여호와의 '큰 은혜'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노아가 이 여호와(예수님)의 '큰 은혜'('큰 호의')를 받았습니다(창6:8). 그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받은 여호와(예수님)의 호의(favor)였습니다. 이 호의로 그가 독수리 시각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 호의로 인해, 120년간 방주를 만들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직계 가족들도 덤으로 이 호의를 전수받았습니다. 그러니 그가 자랑할 수 없었습니다. 방주에 '안 들어간 분들'을,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처럼(창6:6) 이들을 향해 깊은 한숨을 쉬며 연민의 정을 가졌습니다. 그가 겸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받은 일방적 호의 때문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저에게 독자분들을 향한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노아와 그의 직계가족에게 베푸신 '큰 은혜'('큰 호의')가, 한 분도 예외 없이, 독자분들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방주에 '안 들어간 분들'('장차 환난 통과할 분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연민도 가지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이들을 깨우는 일(마23:42-43)에 전념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새해가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황 용 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