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산상수훈'(마5-7)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태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헬. anoiksas to stoma Autou, 영. having opened His mouth), 그들에게 가르치셨다(헬. edidasken autous, 영. taught them)"(마5:2) 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태가, 이 '가르치셨다' 라는 동사의 '시제'(헬. tempos, 영. tense)를, '미완료형'(영. imperfect tense)으로 기록했습니다. 일반 언어들에는 이 '미완료형' 동사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분명 있습니다. 헬라어가 아주 정교한 언어입니다. 특히 동사(영. verb) 부분에서 그러합니다. 그래서 신약 성서를 헬라어로 기록하게 하셨다라고 생각합니다.
헬라어에는, 동사에 여섯(6) 가지 변형이 있습니다. 이는 (1) 현재형(영. present tense, 단순 현재행위), (2) 미래형(영. future tense, 단순 미래행위), (3) 부정 과거형(영. aorist tense, 단순 과거행위), (4) 완료형(영. perfect tense, 행위가 과거에 끝났지만, 현재까지 영향 미침), (5) 과거 완료형(영. pluperfect tense, 행위가 과거에 끝났으며, 영향도 과거에 끝남), (6) 미완료형(영. imperfect tense, 행위가 과거에 끝났지만, 그 영향이 현재에도 미치고 있으며, 장차 미래에도 계속 미칠 것임) 입니다. 신기하게도 마태가 이 예수님의 '산상수훈' 가르침 동사를 '미완료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는 이 '산상수훈'의 가르침이, 과거 2천년 교회시대만이 아니고, 오늘날도 계속 적용되고 있으며, 장차 창조목적 학교 폐교 때까지 계속 적용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다'라는 동사를 '미완료형'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이 '산상수훈'을, 이 '가르치다'에 초점을 두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 '산상수훈'이 '교육 세미나'였습니다. '지도자 세미나'였습니다. 그 대상이 일반 크리스천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신붓감들', '하나님의 아들들', '남은자들') 이었습니다(마5:1). 'Ashre 복'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마5:3-12). '로마제국 복음화'를 감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소금과 빛'이 되어야만 하는 자들(마5:13-16)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크리스천들을 향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일반 크리스천은, 이 가르침에 별로 관심도 없을 것이며, 관심이 있다고 해도 이 가르침을 단지 상식적/윤리적/도덕적 수준으로만 이해하며 삶에 적용할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들 일반 크리스천들이 실제 이렇게 해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할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이 세(3)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6장, 7장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마태복음 5장을 공부했습니다. 이 마태복음 5장에, '신붓감들'('하나님의 아들들')을 향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 숨겨져 있음을 공부했습니다. 그 가르침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이 '신붓감'('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우선적으로 '8복의 사람'이 되어야 한단다. 이중 #8째 복('예수님의 모델 복', '생명 살리는 복', '소금과 빛의 복')이 최상위 복이란다. 이런 수준의 사람이 되면, 스스로가 자신이 '모세 율법'('불완전 율법', '가벼운 율법')도 준수하지 못하는 죄인인 사실을 깨닫게 된단다. 자신이 예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죄인'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단다. 이로써 겸손해 진단다(마5:3).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준 동료 크리스천들까지도 불쌍히 여기며(마5:7), 심지어 그를 사랑하며 축복해 주며 기도까지 해주게 된단다(마5:43-45). 이런 사람을 'Ashre 복 받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한단다"(마5:48) 입니다. 이렇게 하여 마태복음 5장의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이는 상당히 수용하기 힘든 가르침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기란 결코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이 이 가르침을 받고, 변화(성화) 받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된 때가 찰 때(전3:1-8)까지, 이들을 조금씩 서서히 온갖 시행 착오를 겪게 하시면서, 이 수준으로 변화(성화)시켜 주셨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하나님의 아들들', '신붓감들')로 예정되었기에(롬8:29-30), 이런 '성화의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한편 이런 '성화의 은혜'가 예정되어 있지 않은 분들에게는, 이 변화(성화)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마23:13-36, 24:4-5,10,23-28; 고전1:12, 5:1, 6:1-8; 빌4:2; 딤전1:20; 딤후1:15). 이것이 '예수님의 주권'임을 알 수 있습니다(롬9:6-23).
이렇게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을 마무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과 7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두(2) 장에서는, 앞의 5장을 바탕으로 하여,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가르침을 하셨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교회시대'('초림-재림')에, 교회안에 극명한 두(2) 부류의 지도자들이 있게 될 것이라고, 이 마태복음 6-7장에서 '예언'('디자인') 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마태복음 6장과 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7장 결론에서, 이 두(2) 부류를 이렇게 정의 내리셨습니다. (1)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지혜로운 사람', 마7:24)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어리석은 사람', 마7:26) 입니다. 모두가 집을 지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주초(영. foundation)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구별된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이런 두(2) 부류의 지도자들이 있을 것을 미리 예언(디자인) 하셨습니다. 이는 '이 세상'이 바로, '역기능적 교육 방법'으로 교육시키는, '창조목적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 두(2) 부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신붓감들')을 향한 예언적 말씀입니다. 경고적 말씀입니다. 그 내용이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들('산상수훈', 마5-7)을 '듣고'(헬. akouo, 영. hear), '행하는'(헬. phoieo, 영. do) 사람은, 자기집을 '반석'(헬. petra, 영. rock, 예수님 고전10:4)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a wise man')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백보좌 심판, 계20:11-12)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헬. themeliow, 영. lay the foundation of)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한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a foolish man')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크리스천 지도자들 중, 상기와 같이 두(2) 부류가 있을 것을 시사해 주셨습니다.
첫번째 부류가 '반석('예수님' 고전10:4, '7대 신학과 5대 신비') 위에 집을 짓는 분들'('지혜로운 분들')이며, 두번째 부류가 바로 '모래('두 짐승 가르침', '이단 가르침', '종교다원주의 가르침', '신세계질서 확립 가르침', '인본주의 가르침', '공산/사회주의 가르침', '인공지능 가르침' 등) 위에 집을 짓는 분들'('어리석은 분들') 입니다. 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분'이, 소위 크리스천 지도자들이라 하지만, 예수님의 '예언'('디자인')에 의하면, 실제로 '가짜 크리스천 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이 장차 백보좌 심판 때, 불못으로 던져질 것(계20:11-15)이라고 예수님이 미리 '산상수훈'에서 예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디자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목적 학교'의 역기능적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디자인된 사실을 수용하지 못하는 크리스천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들이 바로 '알미니안주의자들'('인간 자유의지 강조', '인간책임 강조', '인본주의 강조', '인간선행 강조', '인간노력 강조')입니다. 이들은 '8복'('Ashre 복')을, 은혜로 보다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받으려 애씁니다. 열심히 구제 생활하며, 선행하며, 기도하며 금식까지 합니다(마6:1-18). 많은 분들에게 자신들의 이 노력을 보여줍니다. 이들에게 자신들의 선행을 따르라고 도전합니다. 이것을 이들은 거룩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이들이 칭찬과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분들을 '외식하는 자들'(헬. hupokritai, 영. hypocrites, 위선자들, 마6:2)이라 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집 지은 자들'(마7:26)이라 하셨습니다. '화 있는 자들'(마23:15-36)이라 하셨습니다. '지옥 자식들'(마7:19,23)이라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들'(마7:26)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황 목사님, 왜 이분들이 크리스천들인데, 이런 저주를 받는다고 예수님이 예언하셨나요? 무척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신데 말입니다(요일4:16).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데 말입니다(요10:28). 독자들이여, 이 질문에 대해 제가 어떤 답을 해야 하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들이 '창조 목적'(사43:7,21; 고전10:31; 골1:16) '위반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구원이 무효 될 수 있습니다(출32:32-33; 마24:23-28; 고전9:27, 10:1-15). 하나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출20:5; 신4:24; 수24:19).
이들이 소위 크리스천 지도자들로서,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뜻을 이루고, 자신들이 인정받고 존경받고, 영광 받는 행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목적 위반 행위' 입니다. 이는 창조목적 학교에서 가장 엄중히 다루는 학과목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미리 주지시켜 주셨습니다.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가르치셨습니다(헬. edidasken, 영. taught, 미완료형, 마5:2). 앞으로 교회시대에 이런 '가짜 성직자들'('유명세를 타고, 존경받는')이 많이 출현할 것을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산고' 일환입니다. 예수님 재림전에는 이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교회에서 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외식하는 가짜 성직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며(마24:4-5), 실족시키고(마24:10) 있습니다.
이 '외식하는 자들'을 예수님이 '두 주인 섬기는 자들'(마6:24)이라 하셨습니다. 재물을 예수님보다 더 좋아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헬. dokos, 영. beam, 영적 어두움, 영적 소경)는 생각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눈에 있는 '티'(헬. karphos, 영, mote, 연약한 부분)를 가지고 판단하며 정죄한다고 하셨습니다(마7:1-5).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이런 일들이 일어났었습니다. 오늘날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안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이들이 양의 옷을 입고 있으나,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들이라 하셨습니다(마7:15). 이들이 교회안에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여 실족시킬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물론 너희 제자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주변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반석'('7대 신학과 5대 신비') 위에 집을 짓도록 도와주어라 명령하셨습니다(마7:15-25). 이것이 오늘날 AMI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ABA라 하는 무기를 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Online과 Offline으로 이 무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많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던 분들이, 반석 위에 집을 짓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래 위에 집 짓고 있는 많은 분들을 살려드려야 합니다. 이들이 살려달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독자들 모두는 이들이 ABA에 참여하도록 '소금과 빛'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전화 010 3281 4810). 이것이 바로 'Ashre 복' 받은 자의 덕목입니다(마5:3-12).
오늘날이 바로 '두 짐승'(계13:1-18) 활개치는 시대입니다. 이놈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알려주는 경고등이며, 표지판이며, 신호탄이며, 촉진제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예수님이 명령하셨습니까?(마24:37-25:46). 만방에 나아가서 이 '반석 신학'을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24:14, 28:19-20; 행1:8). 하나님의 자녀들이 미혹되어 실족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40여개국에 이 '반석 신학'을 외쳐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듣던 안 듣던 말입니다.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입니다. 여기에 동참하신 분들이여, 이 사명을 위해 우리에게 'Ashre 복'이 필요합니다. 사명을 위해서 입니다. 주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나의 욕심이나 뜻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나의 욕심은 바로 '우상숭배 행위'입니다(엡5:5; 골3:5).
황 용 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