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우리가 이란 전쟁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유대인)과 연결하여, 성경적 시각으로 이란 전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제가 설명했던 시각과 다른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특히 무천년주의자들과 후천년주의자들 입니다. 이들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특별한 민족과 나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보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이 이러합니다. "유대인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선민이었지만(신7:6-7),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마27:25). 이 저주가 주후 70년에 일어났다(마23:38)"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이들은 유대인을 "저주받은 민족으로, 이스라엘은 단지 하나의 일반 나라로 봅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과 유대인이 신약시대와 무관하며, 심지어 예수님의 재림과도 무관하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이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란 전쟁'을 주님 공중재림과 연계해서 보지 않습니다. 단지 일어나는 하나의 전쟁으로 봅니다. 이는 이들이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런 사상을 가진 교회와 크리스천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재림의 임박성에 무감각 합니다. 대신 이들의 관심이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복, 이 세상 성공, 삶의 문제 해결, 인권 존중, 가난하고 소외된 자 돌보기, 사회 복음화, 세계 평화, 이세상 낙원화 등입니다.
이들의 시각이 두더지/병아리/참새 시각입니다. 이들이 이런 제한된 시각을 가지고 애쓰며 선한 일 하다가, 때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들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는 독자들의 몫입니다. 이들이 소위 크리스천이라 하지만, 이 세상 7천년이, '창조목적 학교'임을 모르고, 이 세상을 본향처럼 생각하며 살다가 떠납니다. 떠날 때 안타까워합니다. 아쉬워합니다. 떠나기 싫어하는 분도 있습니다. 소위 크리스천이라 하는 분들인데 말입니다. 이런 분들이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를 가르치는 교회에 속한 크리스천들 중에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 입니다. '친 이스라엘(친 유대인, 유대인 우대) 주의자'는 아니지만,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이들이 창조목적 학교(이세상 7천년)에서 '조교 구룹' 역할하는 민족임을 믿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ABA와 저의 저서들과 설교와 칼럼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깨닫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시각이 커지며, 넓어지고 높아지며 깊어지며 길어지게 됩니다. 우리 AMI 팀들이 이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각을 우리가 '독수리 시각'이라 부릅니다. 은혜로 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각을 가지면, 오늘날 왜 예수님이 '이란 전쟁'을 허락하셨는지도 알게 됩니다. 이에 대해 제가 지난 칼럼에서 자세히 설명 드렸습니다.
'독수리 시각'을 가진 자는 'Ashre 복' 받은 자입니다. 욥 같은 분입니다(욥42:7-17). 구약시대의 믿음의 선진들 같은 분들입니다(히11:1-40).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팀 같은 분들입니다. 이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Ashre 복'(헬. Macarios 복, 8복, 마5:3-12)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이 잘났거나 운이 좋아서가 아니고, 전적으로(일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입니다(롬1:7; 엡1:7: 계22:21). 그 목적이 이들을 '소금과 빛'으로 만들어(마5:13-16), 로마제국 복음화에 사용하시기 위함 이었습니다. 이 원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Ashre 복' 주시어, '소금과 빛'으로 만들어, NK와 일본 복음화에 사용하시려 합니다.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입니다.
이 은혜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조금씩 '하나님 나라'(저세상/이세상/저세상)가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마5:3,10). 확실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합니다. 신기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 세상관(세계관)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인생관과 가치관에 변화가 오게 됩니다. 나의 의지로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입니다(롬1:7; 엡1:7; 계22:21).
성품과 인격이 조금씩 변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완악한 마음이 조금씩 가난하게(겸손하게) 변화되며, 질투심으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을 보며, 애통하는 마음(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놀라운 깨달음이며 변화입니다. 자신의 평소 실력으로는 이런 변화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이런 변화를 겪다가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내 자신이 온유한 성품으로 조금 변화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가족, 친구, 교인)이 이를 느끼며 말합니다. 이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배고파 하며, 성령님의 생수에 더욱 목말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성품의 변화(성화)를 경험하는 크리스천을, 'Ashre 복 받은 자'('8복')라고 하셨습니다(마5:3-6).
자신의 실력으로는 안됩니다. 운이 좋아서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령님의 이끌어 주심만(엡1:13; 벧전1:2; 벧후1:21)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니 내가 조금 변화되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변화시켜 주신 예수님께만 감사하며 영광 올려 드립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이끄십니다. 이것이 바로 'Ashre 복 받은 자의 영성' 입니다. 이런 자는 자신의 성품과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화(업그레이드)를, 자신의 실력이나 행운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다 라고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이런 변화에 감사하는 사람으로만 머물게 아니 하십니다. 행동하도록 하십니다. 주변의 하나님 자녀들(Ashre 복 받지 못한 분들)을 '자비로운 시각'(불쌍히 여김, 용서 베풂)으로 보도록 하십니다. '자비자'가 되도록 하십니다. 자신의 의지나 노력이나 실력으로 아닙니다. 은혜로 입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자비자' 되도록 이끄시며 도와주십니다(요14:16). 놀랍게도 이런 분들에게 예수님이 '자비'를 베푸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마4:7). 예수님이 나의 죄를 보시고,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조건부입니다. 내가 먼저, 이웃 크리스천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먼저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생머리로는 힘듭니다.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이 은혜 받은 자에게는 이 '자비자'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 '자비자 은혜' 받은 자에게 덤으로 '더 큰 선물'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더 큰 선물'이 무엇일까요? 이는 '쓴뿌리 청소 선물'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쓴뿌리들'(히12:15, 사탄의 성품들, 질투심, 미움, 용서 못함, 원수 맺음)을 제거해주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순수'(pure)하게 만들어 주는 선물입니다. 이로써 우리의 '영적 시각'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독수리 시각자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저세상/이세상/저세상, 마5:3,10)와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마5:8). 엄청난 큰 선물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AMI 팀들 중 많은 분들이 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는 수직계명/수평계명/지상사명에 더 충실하여, 열매 많이 맺기 위함입니다. 더 '큰 분량'을 가진 크리스천 만들기 위함입니다(롬12:3-8). '금이나 은 같은 보배로운 그릇' 만들기 위함입니다(딤후2:20).
이렇게 주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많은 자비를 베푸는 자를, 예수님이 '화평케 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이런 크리스천을 예수님이 말씀하시시기를, '하나님의 아들들'(헬. huioi Theo, sons of God, 소문자 s, 마5:9,45)이라 하셨습니다. 상당히 높은 위치입니다. 성경에서 크리스천을 6계층으로 나눕니다. (1) 영적 유아(헬. nepios, 영. infant, 고전3:1; 갈4:1), (2) 영적 어린아이(헬. paidion, 영. child, 마18:2; 요일2:18), (3) 영적 사춘기(헬. teknion, 영. adolescence, 요13:33; 요일2:12), (4) 영적 청년(헬. neaniscos, 영. youth, 요일2:13), (5) 영적 아들(헬. huios, 영. son, 마5:9,45; 롬8:14), (6) 영적 아버지(헬. pater, 영. father, 고전4:15) 입니다.
상기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상당히 높은 계층의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높은 계층의 존재가 되려면, 'Asher 복'을 받되, 단계적으로 '화평케 하는 자'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단계적이며 발전적입니다. 그 순서가 이러합니다. (1) 가난한/겸손한 마음, (2) 애통하는 마음, (3) 온유한 마음, (4) 의(예수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5) 자비 베푸는 마음, (6) 이 자비를 더 많은 분들에게 베풀기 위해, 쓴뿌리 제거 받아 순수한 마음 가지기, 그리고 (7) 화평케 하는 자(수직적 화평자, 수평적 화평자, 지상사명적 화평자)까지 업그레이드 되기 입니다. 7단계입니다. 여기까지 왔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분이 바로 'Ashre 복' 받는 크리스천 중, 아주 높은 위치에 있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높은 위치에 있게 되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그런데 이런 행복한 분이 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 수준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 지기' 입니다(마5:10-12, 16:24-28). 이는 예수님 이름 때문에 미움, 고난,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미움, 고난, 박해가 아닙니다. 예수님 이름 때문입니다. 이는 복음주의 메시지 전하다가 받는 미움, 고난, 박해입니다. 종교다원주의가 사탄의 미혹이라고 가르치며 외치다가 받는 미움, 고난, 박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모델'(빌2:5-11)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이름 때문에 미움, 고난, 박해 받는 것이 바로, 이 '예수님 모델'(빌2:5-11)의 첫 부분(죽음, 희생, 소금)입니다. 이것이 또한 '예수님의 생명 살리는 원칙'(요12:24-26)의 첫 부분(죽음, 희생, 소금)입니다. '예수님의 고난 신학'(사53:5-6)에서 첫 부분(죽음, 희생, 소금)입니다. 그후 부활(생명, 살아남, 빛, 복음화)이 따라오며, 그리고 영광(하나님의 아들, 마5:9,45, 상급, 존귀, 마5:10-12; 빌2:9-11; 계4-5)으로 마무리됩니다. 이것이 'Ashre 복' 받는 자의 과정이며 열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이 'Ashre 복'이 단지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는 수준이 아니구나! 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심과 부활과 영광'까지 연결된 복'이구나! 입니다. 이 'Ashre 복'이 예수님의 '십자가'(저주와 희생과 용서와 생명살림과 존귀함 받음)와 연계되어 있구나 입니다(요12:24-26; 빌2:5-11; 히12:2; 계4-5). 바울이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 모델'(빌2:5-11)이 바로 'Ashre 복'의 예표이구나 입니다. 그래서 그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다. 그는 100% 하나님이시지만, 그 신성을 비우시고 100% 인간이 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리셨다. 이로써 하나님(성부)께서 모든 피조물이 예수님 이름에 무릎 꿇게 하셨다"(빌2:5-11) 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예수님 모델'(죽음 + 부활 = 영광)이라 공부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이 '예수님의 모델'이 바로 십자가와 연계된 'Ashre 복'임을 말입니다. 단순 'Ashre 복'이 아닙니다. 단순 '예수님의 성품만 닮는 복'이 아닙니다. 여기에 '십자가가 포함된 복'입니다. 이것을 바울이 '예수님의 모델'이라 했습니다(빌2:5-11). '죽음 + 부활 = 영광' 모델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8복'(마5:3-12)에서 '십자가 Ashre 복'이라 하셨습니다. 이 복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8복'(마5:3-12)이며, '산상수훈'(마5-7) 입니다. 이 '십자가 Ashre 복' 가르침대로 사는 크리스천을,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신붓감', 마5:9,45)이라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십자가 Ashre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들림 받는 ‘하나님의 아들'('신붓감')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이 이 '십자가'로 인해서 높임 받으셨습니다. 이 '십자가'가 높임 받는 도구입니다. 예수님이 높임 받으시는 데에 이 '도구'(십자가)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높임 도구'를 제자들에게도 적용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16:24) 였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이 순종했습니다. 이들 만이 아닙니다. 바울과 그 팀들도 순종했습니다. 자신들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은혜로 입니다.
이로써 이들이 최소한 '하나님 아들들'(신붓감들)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분명 예수님 공중재림 때, 예수님께서 이들을 데리고 내려오실 것입니다(살전4:14-16). 이들을 혼인잔치(계19:7-10)에 참여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들이 들림 받는 '하나님의 아들들'('신붓감들')과 공중에서 서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살전4:17). 함께 혼인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아하, 들림 받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구나! '자신의 십자가'(죽음 + 부활 = 영광)를 져야 하는구나! 이러기 위해서는 '십자가 Ashre 복'을 받아야 하겠구나! 이는 예수님의 성품만 전수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구나!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미움, 고난, 박해를 받아야 하는구나! 그러면 부활(생명 살림)이 뒤따라 오는구나! 영광(높임)도 뒤따라 오는구나! 아하! 이것이 '예수님의 모델'(빌2:5-11)이며 '생명 살리는 원칙'(요12:24-26)이구나! 입니다.
저는 이것을 깨닫고, 부족하나마 제 삶에 적용하려고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30여개의 민족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 마음을 가지고 몽골에 갑니다. 특히 NK와 일본을 섬기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저와 함께 이 '예수님의 모델'에 참여합시다.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들'('신붓감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저의 기도입니다. 주여, 독자 모두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황 용 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