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2026.03.06 13:22

황용현 칼럼 2026.3.6

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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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3) 친구들의 영적 수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분들이 욥의 친구들이지만 영성이 달랐습니다. 믿음의 분량(롬12:3-8)이 달랐습니다. 영적 수준이 달랐습니다. 욥을 위로하는 방법도 달랐습니다. 이들 모두가 욥을 위로 하기위해 왔지만, 오히려 그를 질타하는 방향으로 결말 지었습니다. 위로는 커녕, 욥을 정죄했습니다. 회개를 강요했습니다(욥5:27, 8:18, 11:4). 설상가상으로 욥에게 고통만 가중시켜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이 세(3) 친구들을 용서했습니다(욥42:8-9). 그러나 엘리후에게는 용서가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여호와(예수님)께서 욥의 친구 엘리파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욥이 고난 받고 7일 되는 날입니다. "내 진노가 너와 네 두 친구(빌닷, 소팔)를 향해 일어났나니, 이는 너희가 내 종 욥이 한 것같이, 너희가 내게 옳은 것을 말하지 않았음이라"(욥42:7)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욥은 예수님 앞에 옳은 말들을 했는데, 이 세(3) 친구들은 예수님 앞에 옳은 말들을 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의 모든 대화들을 예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3) 친구들이 욥에게 한 모든 말들을 예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무소부재하신 예수님 이십니다(사6:3; 렘23:24).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이 욥에게 한 말들 모두가 욥에게 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에게 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너희들이 내게 옳은 것을 말하지 않았음이라"(욥42:7) 하셨습니다. 실은 이들이 욥에게 말했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일상 대화를 듣고 계시는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 세(3) 친구들이 '옳은 말'을 하지 않았나요? 입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이들이 욥의 고난속에 숨겨진 '예수님의 뜻'(큰 그림)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왜 예수님이 사탄을 사용하시어, 욥에게 고난을 디자인 하셨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단지 외관상으로 보이는(욥의 고난 장면) 현상만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들이 두더지/병아리/참새 시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반응했던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당시 세(3) 친구들의 영적 수준입니다. 서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1) 엘리파스는 '영적 청년'(헬. neaniscos, 영. youth, 참새시각, 요일2:13) 이었으며, (2) 빌닷이 '영적 사춘기'(헬. teknion, 영. teenager, 병아리시각, 요13:33; 요일2:12) 였으며, (3) 소팔은 '영적 어린아이'(헬. paidion, 영. child, 두더지시각, 마18:2; 눅1:80; 요일2:18) 이거나, '영적 유아'(헬. nepios, 영. infant, 두더지시각, 고전3:1; 갈4:1) 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들의 욥을 향한 비난과 정죄의 말투와 내용이 서로 조금씩 달랐습니다. 말 표현도 달랐습니다. 영성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이,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합니다. 이는 이들의 이 욥을 향한, 비난과 정죄를 예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 비난과 정죄가, 욥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예수님 자신을 향한 비난과 정죄였다 라는 사실입니다. 욥에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는 욥 수준의 예수님의 종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는 부지중,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비난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성이 민감한 분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상기 세(3) 친구들이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았기에 이런 실수를 하였습니다. 엘리후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예수님)께서 이 세(3) 친구들에게 회개하기를 촉구하셨습니다. 욥을 향한 회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회개입니다. 그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방법이 이러 했습니다. "번제할 제물들을 가지고 욥에게 가거라. 그러면 욥이 너희들을 위하여 기도하리라. 그러면 용서해 주겠다"(욥42:8) 였습니다.

 

이들이 이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에 욥이 이들이 용서받기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욥도 이들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로써 여호와(예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욥42:9). 욥도 이들을 향해 용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용서 뒤에 욥의 용서가 뒤따랐습니다.

 

욥이 이들을 용서해 주어야만 합니다. 왜 이들을 용서해 주어여만 하나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 세(3) 친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욥으로 하여금 '주어진 사명'('제2성전 재건', '예수님 초림의 예표')을 다하는, 성숙한 사명자가 되도록 도와준 교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욥이 더욱 겸손해지고 온유해져, 더욱 여호와(예수님)를 경외하도록 도와준 교사들입니다. 이들이 이 사명 다하고 욥의 동역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끼리는, "7번만 용서하는 것이 아니고, 70번씩 7번 용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18:21-22). 아니면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 너희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경고하셨습니다”(마18:35). 예수님이 이 '용서 원칙'을 욥에게 적용하셨습니다. 욥에게 Double Blessings을 내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에게 맡겨진 사명(주전516, 성전 재건 사명)을 완수케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용서가 없으면, 욥의 영이 깨끗지 못하여, 그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용서가 일어난 후, 즉시로 욥을 그의 곤경에서 푸셨습니다. 욥에게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피부병이 없어졌습니다. 보호천사로 다시 진치게 하셨습니다. 사탄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탄이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부인에게 Double Blessings(육혼영)을 주셨습니다(욥42:10-17). 욥과 그의 부인이 더욱 겸손해졌고 온유해졌으며, 여호와(예수님)를 더욱 경외했습니다. 맡겨진 '성전 재건'(주전516) 사역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용서받은 세(3) 친구들도 이 '성전 재건' 사역에 동참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엘리후는 아니었습니다.

 

'용서의 권능'(power)이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AMI 팀들과 독자 여러분, 욥처럼 동료 크리스천들의 연약한 부분들을 인정해 주며, 이들로부터 받았던 상처들을 기억하지 말고, 용서해 주는 성숙한 크리스천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그래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이래야 험난한 두 짐승 시대에, 주어진 '추숫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으며, 주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무소부재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일상 대화를 듣고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매일 매일 순간 순간마다, 이 '무소부재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분이야 말로, 성령 충만한 성령 기름부음 받은, 영적으로 민감한 이 시대의 추숫감이며, 지혜자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Ashre Double Blessings을 주십니다. 바라옵기는 우리 모두가 이런 영적 성숙함과 민감함을 소유한, 'Ashre 복' 받는 자 되시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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