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신학'(The Suffering Theology)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욥이 고난 받은 자의 대표적 인물로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이분이 자신의 '고난의 삶' 모델을 직접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이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빌립보서 2:5-11에 있습니다. 베드로도 이 사실을 기록했습니다(벧전1:11, 4:13, 5:1).
예수님이 바울에게 도전하셨습니다. "바울아, 너와 너희 팀들도 나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 되게 하여라"(롬8:18; 고후1:5-7; 빌3:10; 골1:24; 빌3:10; 딤후1:8, 2:3, 3:11) 였습니다. 야고보에게도 같은 도전을 하셨습니다(약5:10-11).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벧전5:9). 이들에게 욥의 고난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욥3:26, 9:23; 약5:11).
이들은 고난 당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시119:71). 고난 받을 때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보호천사들을 보내주신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시34:7, 91:11). 이들이 이 고난을 통해 ASHRE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마5:3-12; 벧전3:14). 이로써 이들이 장차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게 된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마5:10-12; 빌2:9-11).
또한 이들이 구약 시대의 믿음의 조상들 모두가, 이 고난을 통해 영성이 높아지고, 깊어지고, 넓어지고, 길어졌다는 사실(엡3:18)도 알았습니다(히11:1-40). 이중 대표적 인물들이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과 욥이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이 깨달음이 바로 이들에게 임했던 '예수님의 은혜' 때문임을 알았습니다(롬1:7; 계22:21). 이 은혜로 이들이 영성을 업그레이드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운이나 실력으로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영성을 업그레이드 받게 되었나요? 입니다. 이는 이들에게 허락한 고난을 통해 입니다. 이 고난이 이들을 겸손케 만듭니다(마5:3). 온유케 만듭니다(마5:5). 이 고난 방법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바로 인간의 나약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고난이 있어야, 창조자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생사화복 주관자이신 예수님을 찾게 됩니다. 무릎 꿇게 됩니다. 자신의 나약성과 한계성을 인정하게 됩니다. 까불지 않고 겸손해지며 온유해집니다.
고난을 주시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겸손과 온유케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이런 분들을 예수님이 자신의 종으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모세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민12:3; 마5:5). 다윗과 솔로몬과 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훈련을 통해 다윗과 솔로몬이 제1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욥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도와 제2성전 건축(스6:14-16)에 참여했습니다. 이 두(2)성전이 바로 예수님의 초림을 알리는 표지판이었습니다. 이들이 고난을 통해서 이 표지판을 만들어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이들이 이렇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란 누구를 말합니까? 모든 크리스천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전 추숫꾼 크리스천들을 말합니다. 신붓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외치는 자들입니다(마24:40-25:46). 일반 크리스천들은 이에 관심이 없습니다. 이들은 이 세상일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이 세상 악을 없애는데 더 관심이 있습니다. 애국 운동하여 자기 나라를 더 살기좋은 나라로 만드는 데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저차원 시각자들' 입니다. 이렇게 살기좋은 나라로 만든 후, 선교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다가 때가 되어, 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본향(히11:16)으로 갑니다. 크리스천의 애국운동 그 자체는 우상 섬김 행위입니다(출20:3-6). 창조목적 위반 행위입니다(사43:7,21).
그런데 예수님의 디자인에 의하면, 자신의 재림전에 온갖 산고들(마24:8)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0대 산고들이 반드시(마24:6) 판을 칠 것이라 하셨습니다(마24:3-36; 계6:1-8:1). 그러니 이 산고들이 반드시(마24:6) 판을 쳐야 합니다. 두 짐승 세력에 의해서 입니다(계13:1-18). 그러므로 이 세상이 점점 더 살기 힘든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이 세상이 이 예수님의 디자인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예수님의 디자인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주의 크리스천들 중에서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기좋은 장소로 만들려고 합니다. 악을 없애려고 합니다. 열심히 기도합니다. 반공운동, 반중운동, 애국운동, 부정선거 척결운동, 악의 세력 척결운동, 동성애 반대운동 등입니다. 이런 운동들이 필요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디자인하신 '산고들'을 노출시켜주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이 '노출 사역'을 다양한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하기도 합니다. 우리 AMI도 이 '노출 사역'을 칼럼과 설교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짐승 시리즈'에서 입니다.
문제는 이 '노출 사역'이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출시키는 목적이 재림전 크리스천들을 깨워서, 재림을 준비시켜, 외치게 하는데 있습니다(마24:40-25:46). 이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에너지를, 이렇게 노출하는 데에 사용해야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예수님의 부탁인 재림전 이방인 추수 사역(마24:14)에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예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추수꾼 크리스천을 '지혜로운 종'이라 하셨습니다(마24:45). '착하고 신실한 종'이라 하셨습니다(마25:21). 예수님의 기쁨(혼인잔치에)에 참여하는 자라 하셨습니다(마25:21,23). '들림 받는 종'(살전4:17)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건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반드시 '고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마24:9). 다시 말해 '예수님의 모델' 훈련(빌2:5-11; 요12:24)입니다. 아니면 추수꾼/신붓감들이 될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히12:3-11).
상기의 모세, 다윗, 솔로몬, 욥 모두가 이 '고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이 '고난 훈련'을 통해 겸손하고 온유해져서, 제1성전(주전959, 왕상6:38)과 제2성전(주전516, 스6:14-16)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2) 성전이 바로 초림 예수님을 향한 표지판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이 고난훈련을 시키셨던 예수님이, 자신도 몸소 이 고난 훈련을 자처하셨습니다(요12:24; 빌2:5-11). 그리고 실제 성전이 되셨습니다(요2:21). 스스로 '고난의 표지판'이 되셨습니다. 이로써 스스로 '생명 살리는 자'가 되셨습니다(요12:24). 이 '생명 살리는 자'가 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원칙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날 신붓감들은 '생명 살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고난을 경험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마24:9). 상기 모세나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욥이 받은 고난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고난이 있어야 합니다. 고난 없이는 신붓감이 될 수 없습니다.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과 욥이, 장차 예수님 공중재림 때 예수님과 함께 내려올 것입니다(살전4:14-16). 이들이 들림받는 신붓감들을 공중에서 만날 것입니다(살전4:17). 저를 포함한 AMI 팀들과 독자들 모두가 이 반열에 들어가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난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신부들이 장차 천년왕국에서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계20:4,6). 그후 신천신지에서도 왕노릇 할 것입니다(계21:24,22:5). 우리도, 주님의 은혜와 뜻이라면, 머지않아 들림받아 이들과 공중에서 만나게 되며,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이들과 함께 왕노릇 하게 될 것입니다. AMI 팀들과 독자 여러분들 모두가, 이 반열에 들어오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제가 매주 설교하며 칼럼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기도 제목입니다. 저의 소박한 소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임명 받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부단한 고난 훈련을 통해, 겸손한 자(온유한 자, 마5:3-5)로 성화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주전1040-970)의 삶을 봅시다. 그가 권력과 재물과 명성을 가진 유명 왕이었습니다. 슬하에 일곱(7)명의 아내를 가졌습니다. 교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하무인이었습니다.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좋아했습니다(삼하11:3). 우리야를 전쟁에 보내 죽게 하였습니다(삼하11:21).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습니다(삼하11:27). 그녀가 여덟(8)번째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네(4) 아들을 낳았습니다.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이었습니다(대상3:5). 솔로몬이 20여명의 다윗의 아들들 중 막내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솔로몬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마1:6).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에 솔로몬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의 족보가 어떻게 성립 되었을까 입니다. 밧세바가 아니었다면, 솔로몬이 태어날 수 없었으며, 예수님도 태어날 수 없는 구조이니 말입니다. 이 구조가 이미 창세전에 예정되었다면(마1:1-17), 우리가 이 밧세바 사건을 어떻게 조명해야 하나요? 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하! 이 밧세바 사건이 결코 우연이 아니고, 예수님의 철저한 '예정적 주권' 속에서 디자인된 것이구나!를 깨닫게 됩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이는 다윗을 겸손과 온유케 하기 위함입니다. 실제 그가 이 밧세바 사건으로 인해, 온갖 고난을 경험하면서, 아주 겸손하고 온유한 여호와(예수님)의 종으로 변모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그의 주옥 같은 시들(150편의 시편 안에 약 절반 가량이 다윗의 시들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고난 훈련을 통해 다윗이 이렇게 성화 되었습니다.
이 고난 훈련이 다윗에게만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모세(주전1526-1406)에게도, 여호수아(주전1485-1375)에게도, 욥(주전650-510)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이들에게만 아닙니다.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조들(히11:1-40)에게도 입니다. 심지어 신약의 예수님 제자들과 바울과 그 제자들에게도 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요. 오늘날 신붓감들에게도 적용됩니다(마5:3-12; 마24:9-10). 이는 이들을 겸손과 온유케 만들어, '예수님의 모델'(빌2:5-11)을 따르는 자들로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생명 살리는 자들'(요12:24)로 말입니다.
이는 죽어가는 사람들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재물과 재능과 소유와 시간을 기꺼이 감사하며 손해보며 희생하는 자들입니다. 이는 쌩머리로는 안됩니다. 은혜로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사11:1-2; 요14:16; 행1:5,8; 요일2:20,27)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자연히 조금씩 이 '예수님의 모델'인 '생명 살리는 자'로 변모되기 시작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AMI 안에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선교지 AMI 팀들 안에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이들 모두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분량과 그릇의 재료와 모양과 크기에 따라, 고난 훈련을 받아오고 있는 분들입니다. 욥처럼 이런 고백을 하는 분들입니다. "주신 분도 주시요, 빼앗아 가신 분도 주시니, 주의 이름을 송축하나이다"(욥1:21)를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주권(롬9:6-23)을 인정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욥에게처럼, 하나님의 때(전3:1-8)에, 자신들에게나 아니면 후손들에게, ASHRE 복을 Double로 주실 것입니다(욥42:10-17).
그러면 또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들이 이 '예수님의 모델'을 따르며, '생명 살리는 자들'로 변모될 수 있나요? 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이러합니다. 우리들의 시각이 변하여야 합니다. '저차원 시각'(두더지/병아리/참새 시각)에서 '고차원 시각'('독수리 시각')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자신의 자유의지적 노력으로는 안됩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방적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롬1:7; 계22:21). 7대 신학과 5대 신비가 담긴 '작은 책'을 먹어야 합니다(계10:10).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에게 팔(8)복(마5:3-12)의 ASHRE 복(MACARIOS 복)을 일방적으로 내려 주십니다. 서서히 조금씩 시각을 업그레이드시켜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저세상/이세상/저세상)를 보게 하십니다(마5:3,10).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본래 천국 시민(엡2:19; 빌3:20)이지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받기 위해, 잠깐 이 세상 창조목적 학교(7천년)에 입학한 학생들(나그네들, 순례자들, 히11:13; 벧전2:11) 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70-80년 기간(시90:10), 역기능적 교육방법으로 교육받고, 본향으로 귀환하는 자들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책'을 먹지 않아서 입니다. 안다고 해도, 이 사실을 삶에 적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이 종종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영원한 본향으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다 임종 직전에 깨닫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교회안에 이런 분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시각을 업그레이드시켜 드리는 사명입니다. '작은 책'을 먹도록 도와 드리는 사명입니다.
이 사명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상기 예수님의 종들처럼 '고난 훈련'을 받고,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가능합니다(사11:1-2; 요14:16; 행1:5,8; 요일2:20,27). 그래야 '생명 살리는 자'(요12:24)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의지로는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받을 때 가능합니다. 이 은혜가 AMI 팀과 독자 모두에게 임하길 간절히 간구합니다. 다음 주에 있을 설날에도, 이 예수님의 은혜가 온가족위에 듬뿍 내리시길 간구합니다.
황 용 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