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2026.06.05 07:43

황용현 칼럼 2026.6.5

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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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우리가 '다윗의 영성'(시1:1-3, '무엇을 하던지 형통 복')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 이전에 우리가 이미 '제자들의 영성'(마5:3-12, 8복, '십자가 복', '생명 살리는 복', '존귀함 받는 복')에 대해서도 공부했습니다. 모두가 'Ashre 복'입니다. 그런데 같은 'Ashre 복'이지만, 이 둘(2) 중 '8복'이 훨씬 고차원적 복입니다. 이 '복'을 받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물론 '다윗의 영성 복'(시1:1-3)도 받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입어야 가능합니다. 자신의 자유의지나 노력으로는 안됩니다. 될 것 같은데 안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 두(2) 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소원한다고 해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은혜를 받기위해, 이 'Ashre 복들'(시1:1-3; 마5:3-12)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 유명한 '산상수훈'(The Sermon on the Mount, 마5-7장)을 하셨습니다. 그의 공생애 시작 때였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대상 이었습니다. 이들이 아직 크리스천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유대교 교인들이었습니다. 구약의 모세 율법을 중시하였던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받을만한 그릇이 아직 예비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이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들이 수용하기 무척 힘든 가르침이었습니다. 특히 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대교의 가르침인 모세 5경과 상반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듣기에 아주 불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꾹 참으면서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이 '산상수훈'의 첫 가르침이 '8복'(마5:3-12)이었습니다. 이 '8복' 가르침이 유대교의 가르침과 상반된 내용이었습니다. 복의 내용이 정반대였습니다. 더욱이 '모세의 복'(주전1500, 신28:1-14)은 물론, '다윗의 복'(주전1000, 시1:1-3)과도 상충되는 '복'의 내용이었습니다. 수용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내보냈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들이 수용하던 안 하던, 계획하셨던 '가르침'('산상 수훈')을 다 하셨습니다(마5-7). 그후 이들이 로마제국을 복음화 하면서 순교 직전에 가셔야,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이 '산상수훈'(마5-7)에서, 그 핵심 메시지가 바로 '8복'(마5:3-12)입니다. 그리고 이 '8복' 중, #8번째 복이 바로 '최상위 복'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죽음의 복'(마5:10-11)입니다. '예수님 모델 복'(빌2:5-11)입니다. '생명 살리는 복'(요12:24-26)입니다. '영광 받는 복'(요12:26; 빌2:9-11)입니다. 그런데 유대교 배경을 가졌던 제자들에게는, 이 '최상위 복'을 소화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는 '모세의 복'(신28:1-14)과 '다윗의 복'(시1:1-3)과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이 계속해서 이 #8번째 '십자가의 죽음의 복'이, '최상위 복'임을 가르치셨습니다. 이들에게 '소금과 빛'의 예화를 드셨습니다. "너희들이 땅(로마제국)의 소금이다(현재형,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소금은 죽어야 맛을 내며,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마5:13)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소금이 죽으면, 이 소금이 '빛'(부활, 생명)으로 변한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세상(로마제국)의 빛이 된단다"(현재형,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라고 하셨습니다. 이로서 "너희들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단다"(마5:14-16)라고 하셨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소금'이 되고, 그리고 '빛'이 된다는 것입니다. '소금과 빛'입니다. '빛과 소금'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소금'('죽음', '희생')과 '빛'('부활', '생명')의 종교이지, '빛과 소금'의 종교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유대교를 믿어오던 제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가르침입니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이들이 배워왔던 복의 개념과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소금이 되어 죽어야 빛이 된다니 말입니다. 빛이 먼저가 아니고, 소금이 먼저라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모세 율법을 폐기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의 얼굴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감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반응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들을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to fulfill) 하려고 왔노라. 율법의 일점 일획도 없어지면 안된단다. 율법이 반드시 필요하단다. 만약에 율법의 계명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거나 버릴 것을 가르치면, 이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 율법'의 일점 일획도 버리면 안된단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모세 율법'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이 '모세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고' 이 세상에 왔단다."(마5:17-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문제가 야기됩니다. 제자들이 '모세 율법'을 '완전 율법'으로 믿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 '모세 율법'은 '불완전 율법'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가벼운 율법'이라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이들에게 '완전 율법'('무거운 율법', '진짜 율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네(4) 가지 범죄 예를 드셨습니다. (1) 살인죄(출20:13; 마5:21-26), (2) 간음죄(출20:14; 마5:27-30), (3) 이혼죄(신24:1-4; 마5:31-32), (4) 거짓 맹세죄(레19:12; 마5:33-37)입니다. 이 네(4) 가지 범죄들을 가지고, 예수님이 '모세 율법'과 '완전 율법'을 비교 설명해 주셨습니다. 상기 두(2) 율법을 비교하시며 '재해석'해 주셨습니다.

 

그 '재해석' 내용이 이러합니다. (1) '모세 율법'('불완전 율법', '가벼운 율법') 하에서의 '살인죄'를, '완전 율법'에 의해 '재해석' 하셨습니다. "이 '완전 율법' 하에서는, 살인죄를 이렇게 정의한다.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도 살인이며, 형제를 raca(아람어, 영. empty head, 골빈 사람, 어리석은 사람)라고 하는 자도 살인 행위를 한 자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 모두 지옥으로 던져져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다면 이 '완전 율법' 하에서는, 인류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살인자가 되며, 지옥으로 던져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세 율법'('불완전 율법', '가벼운 율법') 하에서는 실제 살인자만 살인 죄인입니다. 제한된 소수만 살인 죄인이며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이어서 예수님이 '간음죄'에 대해, '완전 율법' 하에 '재해석' 하셨습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약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또한 만약에 네 오른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잘라 던져 버리라. 네 지체 가운데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 네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재해석' 하셨습니다. 이는 인류 모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눈과 손이 없는 불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지옥으로 던져져야만 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불완전 율법', '가벼운 율법') 하에서는 실제 간음 죄인만 지옥행입니다. 제한된 소수일 뿐입니다.

 

상기의 두(2) '재해석'에서 보듯이, '완전 율법' 하에서 우리 인간 모두는 '죄인들'이며, 지옥으로 던져져야만 합니다. 모든 인간은 지옥으로 던져져야만 합니다. 구원받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이렇게 '완전 율법'이 대단히 무섭습니다. 대단히 무거운 율법입니다. 인간이 지키기에 절대 불가능한 율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보다 훨씬 가벼운 율법을 모세에게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 율법'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불완전 율법', '가벼운 율법'(마5:17)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불완전 율법'('모세 율법', '가벼운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존재들입니다. 바울이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모세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 그러니 이 '모세 율법' 만으로도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된단다(롬3:20, 10:1-5; 행13:39). 하물며 '완전한 율법' 하에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의인'('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전무하다. 그 방법도 전무하다. 인간의 노력이나 선행으로도 절대 불가능하다(사64:6)"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죄인들'('육혼영 죄', 창3:5-6) 입니다. 스스로 이 '죄'를 용서받고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 율법'을 지키면, '의인'('천국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심지어 이보다 훨씬 더 가벼운 '모세 율법'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의인'('천국 백성') 되려면, 누군가가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인간 실력으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피조물들)의 도움으로도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가능합니다. 그가 피조물이 아닌, '창조자' 이시며(창1:1; 요1:1-3), '만유의 통치자' 이시며(마28:18; 요3:35),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자' 이시며(신30:15,19), '전능자' 이시며(창17:1; 계15:3), '전지자' 이시기(시147:5; 마10:30; 롬8:29) 때문입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저주')를 십자가에서(신21:23) 대신 뒤집어쓰셨습니다(시22:1; 마27:46). '소금'(마5:13)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우리의 '대속자'(Redeemer, 시19:14; 사41:14; 롬3:24; 갈3:13; 엡1:7; 벧전2:24)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의인'('천국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치 이 '완전 율법'을 준수한 자들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큰 은혜'('큰 용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율법('모세 율법')을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고, 오히려 '완전케 하려' 왔노라" 하셨던 것입니다(마5:17).

 

우리는 이 예수님 때문에 '모세 율법'('불완전 율법', '가벼운 율법')은 물론, 전혀 불가능한 '완전 율법'까지도 준수한 자로 여김 받은 자들입니다. '대속자'(the Redeemer, 롬3:24) 이시며, '진리'(the Truth, 요14:6)이신 예수님의 '은혜'('용서') 때문입니다. 이 진리이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이 '완전 율법'은 물론, '모세 율법'에서 자유케 되었습니다(요8:32). 놀랍게도 삼위 하나님이 이 '자유 계획'을 이미 '청세 전'에 디자인하셨다는 사실입니다(고전2:7; 롬16:25-26; 딤후1:9; 벧전1:19-20). 이것을 바울이 '하나님의 신비'라 했습니다(고전4:1). 우리는 이 예수님(진리) 때문에, 상기의 '두(2) 율법들'('완전 율법'과 '불완전 모세 율법')에서 '자유된 자들'입니다(요8:32). 다시 말해 은혜로 '용서받은 자들'입니다. '용서받은 죄인들'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제자들'('유대교 배경자들', '모세 율법주의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5장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이 이 가르침을 이렇게 결론 지셨습니다. "너희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는 가르침을 이미 받은 자들이다('모세 율법에서, 출21:23-25; 레24:20; 신19:21). 그런데 이제 나는 너희에게 명령한다. 악한 자(동료 기독교인들)를 대적지 말아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8-42).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마5:9)의 덕목이며, 시각('독수리 시각')라고 하셨습니다. 이어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모세 율법'에서는 네 이웃(크리스천들)을 사랑하고(수평계명),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신23:6; 시139:21-22)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영적 아들들', 마5:9,45)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크리스천들)을 사랑(헬. agaphate, 명령형, 무조건 사랑, 마5:44)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까지 해주어라(마5:44)"라고 도전하셨습니다(마5:43-44). "이같이 한즉, 너희들이 바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헬. huioi tou patros, 마5:45)이 되리라."(마5:45)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신붓감 되는 상위 계층'을 일컫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덕목을 가진 자들이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명령이 제자들에게는 물론, 우리에게도 엄청 부담이 됩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입니다. 교회안에서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며, 문제를 일으키는 분을 용서해주며 기도까지 해주라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질서(고전14:40)와 공의(신32:4; 살후1:5)의 하나님이신 데 말입니다. 당연히 치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입니다. 당연히 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상기의 두(2) 종류의 치리 방법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 영적 유아들/어린아이들/사춘기들/청년들 치리 방법('모세 율법적 치리 방법', '대다수')과 (2) '아버지의 아들들'('무조건적 아가페 용서와 사랑 베풂 치리 방법', '소수')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대다수 크리스천들은 상기 (1)의 치리 방법('모세 율법적 치리 방법')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아들' 수준으로 성장되어, (2)번째 치리 방법을 삶에 적용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이들에게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약 2년 가까이 제자훈련 받았던 베드로도 아직까지 (1)에 머물러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18:21-35). 동료 제자들을 용서하는 데에 힘들어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아버지의 아들'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베드로에게 '용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가 세(3)번이나 예수님을 부인케 하셨습니다. 이에 그가 통곡하며 울게 만드셨습니다(마26:69-75). 그후 예수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시며 그에게 사명까지 주셨습니다(요21:15-17).

 

그가 예수님의 용서를 몸소 체험 받았습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까지 세움 받았습니다(행2:14-36). 그를 로마제국 복음화에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그가 그의 저서(주후64, 베드로 전서/후서)에 기록했습니다. 그후 그는 로마에서 순교 당했습니다(주후65). 그가 용서받고 은혜로 사명까지 받았기에 이 순교가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대로, 그가 '소금'이 된 후, '빛'이 되었습니다(마5:13-16). 분명 그가 'Ashre 복' 받은 분이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삶에 적용하였던 '용서받은 죄인' 이었습니다. 그는 이 '용서 훈련'을 통해, 주변의 모든 크리스천들을 자비의 시각으로 보며(마5:7), 용서해 주며,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주었던 분이었습니다. 이렇게 용서받은 분들에 대해서는, 그가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예수님의 몫이었습니다(롬12:17-21).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수준(마5:9,45, '독수리 시각자', '신붓감')으로 업그레이드된, 크리스천 영성이며 덕목입니다.

 

저의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 국내외의 AMI 팀들과 그리고 독자분들 모두가 이 베드로처럼, 이 '하나님의 아들들'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마5:9,45) 받는 복된 자 되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변의 크리스천들을 '율법의 눈'(영적 유아/어린이/사춘기/청년)으로 보지 말고, '은혜의 눈'('영적 하나님의 아들')으로 보는 자입니다(롬12:3-16). 이런 분을 바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영적 예배자라 하셨습니다(롬12:1-2). 또한 예수님이 이런 자를 '화평케 하는 자'라 하셨습니다(마5:9).

 

이런 분이 바로 ' Ashre 복' 받은 분들입니다. 우리가 왜 이런 분이 되어야 하나요? 이는 우리가 재림전 '이방인 숫자를 채우는 사명 감당자'(마24:14; 롬11:25)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들림 받아(살전 4:17),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신부들'(계19:7-10)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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