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시리즈 #4입니다. "멋 있으신 삼위 하나님"(고전13:1-13)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전 시간에는 "기독교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다"(창1:1,26; 마28:19)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이 삼위 하나님이 고상한 인격을 지니신, 멋있는 분들임을 공부하려 합니다. 타종교의 신들에게서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성품입니다. 타종교의 신들과 결코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요일4:8,9,16). 이분들이야말로 사랑 그 자체이시며, 사랑의 본체이십니다. 성부 하나님도, 성자 하나님도, 성령 하나님도 모두가, '고상한 인격'을 가지신 사랑 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분들을 '사랑'이라 했습니다. 이 '사랑'이라는 명사 단어를 성경에서, 히브리어로 ahabah, 헬라어로 agape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신적 사랑'으로, 무조건적, 일방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 사랑입니다. 인간이 이 '신적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차원이 다른 사랑입니다.
이 '신적 사랑'이 무엇인지, 얼마나 큰지, 깊은지, 넓은지, 높은지를,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가름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고차원의 '신적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신적 영역'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나요? 하나님이 이 '신적 영역'을 우리 차원으로 내려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의 눈높이로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사랑의 관계성'을 보여주기 전,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신적 사랑'을 우리의 눈높이로 계시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입니다.
그가 이것을 우리의 눈높이로, 고린도전서 13장에 기록했습니다. "사랑은 (1) 오래 참으며, (2) 온유하며, (3) 질투하지 않으며, (4) 자랑하지 않으며, (5) 교만하지 않으며, (6) 무례히 행치 않으며, (7) 자기 유익을 구치 않으며, (8) 성내지 않으며, (9) 남의 잘못을 기억에 담고 있지 않으며, (10)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11) 모든 것을 참으며, (12) 모든 것을 믿으며, (13) 모든 것을 바라며, (14)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4-7)라고 기록했습니다. '신적 사랑'을 우리의 눈높이로 '상황화'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르치시기 전에,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먼저 '성령의 9가지 은사들'를 가르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8-10에 기록했습니다. 이 '9가지 은사들'이 이러합니다.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침, 기적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통역"입니다. 그 후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9가지 은사들'보다, '더 큰 은사들'을 간절히 구하라고 하셨습니다(고전12:31). 이 '더 큰 은사들'이 바로 삼위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의 은사'라 합니다. 이 '사랑의 은사'가 바로 '상기 14가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눈높이로 상황화시킨 '삼위 하나님의 역동적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상기 14가지 사랑의 은사들'이, 상기 '9가지 은사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합니다(고전13:1-3,8).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상기 '9가지 은사들'은 받아서, 우리 삶에 적용하며 사용할 수 있으나, '우위 은사들'(14개)은 받아서 제대로 지킬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것이 상기 '9가지 은사들'보다 '더 고상한 은사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아무리 우리 눈높이로 내려주셨지만, 우리가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 '14가지 은사들'이, 바로 우리의 눈높이로 상황화된 '삼위 하나님간의 역동적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감히 이런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사랑 장'(고전13:1-13)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지키지도 못할 이 '사랑 장'을 우리에게 주셨나요?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이 '사랑 장'을, 창조목적학교 학생교육용 교과목으로 주신 것입니다. 어떤 교육용인가요? '삼위 하나님의 인격'이 어떠한 지를 교육시키는 교육용입니다. 그리고 우리보고 '이분들의 인격'을 닮으라고 하십니다. 바울이 이 메시지를 받았지만 부담스러웠습니다. 바울 자신도 이 '14가지 인격'을 온전히 닮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대단히 부담스러운 메시지였습니다.
바울에게 가르친 내용이 이러합니다. "상기 14가지 사랑은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의 인격이다"(고전13:8). 이것은 "완전한 것이다"(고전13:10). "너희가 이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 너희는 이것을 어린아이처럼 희미하게 보며, 부분적으로만 알 수 있다. 나중에 낙원에 올라가야만, 너희가 삼위 하나님의 이런 멋있는 모습을 보며, 배우며 지킬 수 있다"(고전13:8-12). 이 말씀에 바울이 위로를 받았으리라 봅니다. 그에게 엄청 격려되는 메시지였습니다.
우리는 창조목적학교 학생으로, 이 '아가페' 사랑을 연습하러 이 세상에 왔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러 왔습니다. 이렇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나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랑'만 하다가 낙원에 갑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상기 '9가지 은사들'을 받아가지고, '이기적 발상'을 가지고 이것을 사용합니다. 불쌍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도 이런 발상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런 이기주의자들이기에 무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태생적으로 이런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자가 '지혜자'(시111:10; 잠9:10)이며, '8복의 사람'(마5:3-12)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상기 '14가지의 사랑'을 부분적이나마, 희미하게나마, 어린아이 수준이나마, 불온전하게나마, 하도록 성령님이 감동 주시며, 이끄십니다. 이러면서 항상 '마음의 가난함과 애통함'(마5:3-4)을 고백케 하며, 겸손케 만드십니다. 이러다가 낙원으로 갑니다. 바야흐로 이곳에서 삼위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 삼위 하나님의 이런 '멋 있는 사랑의 관계성'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례들이 있습니다. (1) 성부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높이시며 서로 존경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시는 장면을, 세례 요한(마3:17)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마17:5)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반대로 (2) 성자 하나님도 성부 하나님에게 똑같이 하시는 모습을, 제자들(마28:18; 요5:27; 요6:37-38,14:28)에게와 니고데모(요3:16)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한편 (3) 성자 하나님도 이런 모습으로, 성령 하나님을 높이십니다. 성만찬 때 제자들 앞에서입니다(요14:16-17,26). 그후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다시 이런 모습을 보이십니다(행1:8). 또한 이렇게 예수님으로부터 높임 받으신 (4) 성령 하나님이, 반대로 성자 하나님을 높이십니다(행1:8). 당시 제자들이 이 '멋있는 역동적 사랑의 관계'를 충분히 소화할 리 만무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저의 설교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이런 '멋 있는 삼위 하나님'을 모시고 섬기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타종교들과의 확연한 차이점입니다.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또한 '양태론'이 비성경적임을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이런 '역동적 사랑의 모습'이 우리의 딴딴한 마음을 녹여 주십니다.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여운이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불가능하지만 닮아가려고 애쓰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므로 우리가 서로 유익을 얻게 됩니다(고전12:7). 이 세상 사는 동안 행복해집니다. 스트레스에서 해방 받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분들의 성품을 닮았나에 따라 성화의 정도가 정해집니다. 저 세상에서의 신분도 결정됩니다. 저 세상에서 하나님의 존귀함과 사랑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유익도 만만치 않습니다. 시편 91편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자녀들로부터 존귀함 받습니다. 사탄이 가까이 오지 못하며 두려워합니다. 능력있는 복음 전도자가 됩니다. 지식과 명철과 지혜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됩니다. 시대 분별력을 주십니다. 독수리 시각을 주십니다. 제자의 타이틀 주십니다. 남은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로마서 8:28절의 세계관을 주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전천후 인격자로 만드십니다. 은혜와 자비와 평강으로 옷 입히십니다(딤전1:2).
우리가 힘들고 온전치 못하더라도, 상기 삼위 하나님의 '14가지 사랑의 은사들'을, 매일 매일의 삶에서 연습 하다 보면, 이런 유익을 주십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가난하며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습할 때입니다(마5:3-4). 이런 마음을 가지려면, 성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롬1:7)가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