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아미신학교 강의를 주님의 은혜로 잘 마쳤습니다. 전국의 16개 주에서 전임 사역하는 사역자들 40여명을 모시고 섬겼습니다. 3년과정 신학학사 공부입니다. 이미 두(2)팀, 120여명이 지난 6년간 공부를 마치고 졸업했습니다. 이번에 세(3) 번째 팀입니다. 1년에 3번씩 비엔티안 본부에 모여, 2주간 숙식을 함께하며 집중 말씀 공부합니다. 이들을 주변 산악지대 미전도족속들을 향해 파송합니다. 이번 주제는 '기독교는 무엇인가?’이며, 삼위일체론, 기독론, 창조목적학교론에 대해 집중 공부했습니다.
제가 1주일 맡아 강의합니다. 나머지 1주일은 저의 제자들인 현지인 지도자들이 강의합니다. 이 학교 운영에 배동환 선교사님과, 이사장 장재관 장로님의 헌신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AMI 동역자들인 본국의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본국에 있는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로 이 사역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주는 C국의 AMI팀들을 섬깁니다. 계속 기도로 동역 부탁합니다.
"황용현 칼럼 2022”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이 책을 구입하여 전도용으로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전도에 힘쓰시는 분들을 보면서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귀한 동역자들이구나! 정성들여 힘들게 글을 쓴 보람이 있구나! 저자인 저와 편집자인 이령미(마리아) 선교사님을 향한 격려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만들어야지 하는, 동기부여 해주는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이책이 독자들에게, 시각 업그레드와 시대 분별력을 가지도록 도와드리는 길라잡이가 되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자로 업그레드되는 데에 도움되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 주 저의 설교 주제가 이러합니다.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나?"(마16:20)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명령입니다. 무엇을 말하지 말라고 하셨나요?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입니다. 누구에게 하셨나요?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에게입니다. 특히 지도계층 인물들인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서기관들, 제사장들에게입니다.
왜 말하지 말라고 하셨나요? 궁금합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이 무엇이길래 이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셨나요?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이 고백이, 이들이 믿고 있는 유대교의 유일신관(성부 일위 신관)과 정면 대치되는 '신성모독'(blasphemy)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 고백을 듣는 즉시, 예수님을 신성모독 자로, 저주받아야 할 자로(신21:23) 낙인 찍고, 모세의 율법에 따라(레24:16), 즉시 십자가에 죽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 죽으려 오셨지만(시22:1; 사53:4-6), 아직 죽으실 때(전3:2)가 아니었습니다. '3년의 공생애 기간'이 필요하셨습니다. 이 기간 제자훈련도 시키셔야 하며, 이들에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가르치셔야 하고,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도 가르치셔야 합니다. 지상계명(마22:37-39)과 지상사명(마28:19-20; 행1:8)도 내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3년이 필요하셨습니다. 최소한 3년 기간 이 가르침을 하시고, 이들이 온전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제자의 모습을 갖출 때,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을 디자인하셨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무엇이길래, 유대인들이 이렇게 촉각을 세우며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나요?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이 고백 속에 '삼위일체 신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입니다. 이는 그가 '성부하나님과 동등'(equal, 요5:18)하신, '제2위 하나님'이라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유대인들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신관입니다. 당시 이 고백을 했던 베드로와 제자들도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도 유대교인입니다. 분명 이들도 종교적 갈등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 갈등을 예견하셨던 예수님이, 제자들을 포함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두 번에 걸쳐 예비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의 표적'(마12:39-40,16:4)입니다. 예수님이 이 표적을 이들에게 설명하십니다. "요나처럼 내가 3일간 땅의 심장(음부, 지옥)에 내려갔다가, 부활할 것이다." 이 예언대로 그가 실제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3일간 무엇을 하셨나요? 순교 1년전, 베드로가 이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복음 전하셨다고 했습니다(주후64, 벧전3:19,4:6). 그러면 의문이 생깁니다. 지옥에 들어간 자들에게 구원의 기회를 또 한번 주시는가요? 사탄의 자녀들이라도, 그곳에서 회개하면 구원 받을 수 있겠네요. 이런 질문을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탄의 자녀들이 있는 지옥에 내려가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품'(눅16:22)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곳이 바로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복음을 듣거나 접하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임시로 가는 곳'입니다. 창세 이래 이런 자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사건 전에 살았던,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모든 자들입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천년간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 되었지만, 대부분이 복음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들 나라에 복음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제3세계 나라들은 복음 받은 지 고작 100-200년 정도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미전도족속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면 황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도할 필요가 없네요. 예정된 분들 모두 구원받을 텐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전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 안해도, 전능하신 예수님(창17:1;계15:3)이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음 전하라고 우리에게 '지상사명'(마28:19-20; 행1:8)을 주셨나요?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는 우리를 '동역자'(partnership) 삼으시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이 '동역자'(partnership) 직분은 은혜로 받습니다. 특권입니다. 구원의 요건이 아닙니다. 제자의 요건입니다. 성령님이 제자 후보생들의 자유의지를 발동시켜, 이 동역자 직분에 참여하도록 도우시며 이끄십니다(요14:16; 행1:5,8). 이런 분들을 계층사회(직분사회, 마5:19; 딤후2:20-21)인 낙원에서 높이십니다. 독자 모두에게 이 '동역자' 은혜 임하길 간구합니다. 우리 AMI 팀들은 이미 이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질문이 있습니다. 왜 유대인들이 지난 2천년 교회시대에 예수님을 배척하여 왔는가요? 이들이 완악해서인가요? 하나님의 디자인인가요? 예,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언제 이 디자인을 하셨나요? 영원 때(창세전, 아담창조 전, 유대인 만들기 전, 엡3:9)에 디자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디자인을 숨겨놓으셨습니다. 언제까지 숨기셨나요? 바울이 고린도전서(주후55, 고전2:7)와 에베소서(주후60-62, 엡3:9)를 집필할 때까지입니다. 무척 긴 시간 감추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신비'(the Mystery of Christ, 주후60-62, 엡3:4)라 했습니다. 이 내용이 이러합니다. "유대인이 눈이 감기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베드로의 신앙고백)로 보지 못할 것이다. 반면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이방인은 볼 것이다. 하나님이 이 눈감김 디자인을 영원부터 예비하셔서, 지금(주후60-62)까지 감추셨다가, 이제야 나에게 계시해 주셨다"(엡3:4-11)라고 기록했습니다. 기가 막힌 바울의 깨달음입니다.
실은 바울이 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개종(주후35)하고 20년 동안은 몰랐습니다. 고린도전서 집필할 때 깨달았습니다(주후55, 고전2:7). 그는 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예수님이 이미 구약의 유명인사들에게 예언적으로 말씀하셨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모세에게 예언케 하셨고(주전1406, 신32:20-21). 그후 다윗에게도(주전1000, 시69:22-23), 이사야에게도(주전700, 사6:9-10) 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로마서를 집필할 때, 예수님이 그에게 이 세(3)분에게 가르치셨던 '그리스도의 신비' 내용을 깨닫게 하셨습니다(주후57, 롬11:8-9). 그리고 3년 후에, 이것을 '그리스도의 신비'라 명명했습니다(주후60-62, 엡3:4). 이때가 바로 바울이 '청소년 독수리'로 입문하는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바울에게 더욱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다음의 비유를 드셨습니다(주후57, 롬11:13-25). 이것이 바로 '참 감람나무'(Good Olive Tree)와 '돌 감람나무'(Wild Olive Tree)의 비유입니다. 이스라엘을 '참 감람나무'로 비유했습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이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영양분과 수분으로 성장합니다. 많은 가지들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가지들이 꺾임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장차 받을 5대 저주(curses)를 비유하십니다.
이 비유대로, 주후 70년에 '참 감람나무 가지들'(이스라엘)이 꺾였습니다. 5대 저주가 임했습니다. 이 5대 저주란 이러합니다. (1) 이스라엘 나라 패망, (2) 예루살렘성전 파괴, (3) 디아스포라, (4) 영적 눈감김, (5) 반유대주의 입니다. 이렇게 '참 감람나무의 가지들'이 꺾임 받았습니다. '저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루터기'(stump, 사6:13; 단4:15,23,26)는 남겨 두셨습니다. 이것을 '남은자들'(remnants, 사1:9,11:11; 렘23:3; 슥8:12; 롬11:5)이라 합니다.
신기하게도 이 꺾임 받은 자리에, '돌 감람나무 가지들'(이방인 상징)을 접붙임(be graffed in) 하였습니다. 이 나무가 '돌 감람나무 가지들'로 무성합니다. 주후 70년 이후, 교회시대의 모습입니다. 이방인으로 가득찬 교회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이방인들이 복음화되는 시기입니다. 이 이방의 숫자를 채우는 일이 곧 '세계선교'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예언케 했습니다. 자신의 재림이 가까워올 때쯤 되면, 구원 받기로 예정된 이방인 숫자가 급격히 차게 될 것이라 합니다. 이렇게 이방인 숫자가 거의 차게 되면, 이와 함께 '그루터기'로 있어왔던 유대인중 일부가 싹을 내며 자라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롬11:25). 이런 유대인을 '메시아닉 유대인들'(Messianic Jews)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공중재림(살전4:14-17; 계7:9-17) 전, 이 '메시아닉 유대인들' 숫자가 144,000명이 된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계7:4-8). 그러나 오늘날 가짜 유대인들이 엄청 많습니다. 두(2) 짐승(계13:1-18)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예수님의 공중재림 전, 반드시 이 숫자가 차야합니다. 그래야 공중재림이 있습니다. 계시록 7장에서 그 순서를 보여줍니다. 메시아닉 유대인(계7:4-8) 숫자 채움 이후에, 공중재림 이야기(계7:9-17)로 연결됩니다. 신기하게도 공중재림 참여자들의 모습을 보면, 이방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없습니다.
이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7년 환난을 통과합니다. 두(2) 증인 중, '참 감람나무'입니다(계11:3-4). 이들이 유대인 복음화에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사64:1-12,65:1-16; 겔38-39). 이들이 순교당할 것이며, 그후 부활하여(계11:3-12,20:4), 공중 혼인잔치(계19:7-10)에 참여합니다.
7년 환난기간, 모든 유대인이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는 아직 예정된 이방인 모두가 회개하지 않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회개'와 '이방인 복음화'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서로 연계되어 비례'합니다(롬11:25-26). 그러므로 천년왕국 기간, 이방인 복음화가 계속 됩니다. 유대인 복음화도 계속 됩니다(사25:8-9,61:4-11,62:10-12). 천년왕국 마칠 때, 유대인 충만한 숫자와 이방인 충만한 숫자가 차게 됩니다(롬11:26).
안타깝게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종말론의 차이로 유대인에 대한 이해가 다릅니다. 이로 인해 서로 상반된 견해를 가집니다. 상대를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배워온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시각의 차이가 무섭습니다. 독자 모두는, 후천년주의(신세계 질서주의)를 제외한, 세(3) 복음주의 종말론 사상 모두를 이해하며, 수용해주는 독수리 시각자 되었으면 합니다.
무천년주의 종말론자들 중 대부분이 '반유대주의자들' 입니다. 144,000을 문자 그대로, 유대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것을 '기독교인 전부를 상징하는 많은 숫자'로 봅니다. 이중 어떤 분들은, 이것을 메시아닉 유대인으로 보는 사람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시각의 차이, 신학의 차이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렇게 신학 논쟁하다가, 모두 이 세상 떠납니다. 낙원에서 예수님 앞에서, 무슨 변명을 할지 궁금합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