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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2025.03.14 07:05

황용현 컬럼 202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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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일본 목회자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일본 목회자 17명과 한인 선교사 22명이 참석했습니다. 일본에서 20-30년 목회를 하시는 일본인 씨니어 목회자들도 여러 명 참석하셨습니다. 이 분들이 진지하게 겸손히 말씀을 대하는 모습에서 우리가 오히려 감동받았습니다. 겸손한 모습이 이들의 몸에 배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들만이 아닙니다. 젊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겸손한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훌륭한 분들을 섬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주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기에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재일본 한국 선교사님들도 보내 주셨습니다. 모두가 씨니어 선교사들입니다. 20-30년 일본인들을 섬겨온 분들입니다. 어떤 분은 40여 년입니다. 일본화 된 분들입니다. 복음 전하기 무척 힘든 여건하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을 섬겨오고 있는 귀한 예수님의 신실한 종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보배로운 주님의 종들을 섬길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감격스럽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 합니다.

 

특히 이번 세미나 준비에 주역을 담당하셨던 최태자 선교사님의 헌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50여년 일본인들을 섬겨 오신 베테랑 선교사입니다. 이번 세미나 통역도 담당하셨습니다. 저와 오래동안 교제해온 선교사님 이십니다. 저에게 자주 일본 목회자만을 위한 세미나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이에 작년 9월부터 기도로 준비해 왔습니다. 우리가 지난 2년간 진행하고 있는 J-ABA(이 프로그램안에 목회자들과 선교사들도 계시지만)와, 별도로 목회자들만을 위한 세미나의 필요성을 깨닫고, 이번 제1차 목회자 세미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주실지 기대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두짐승 시리즈" #2를 공부했습니다. 그 주제가 이러 했습니다. "왜 짐승이라 부르며, 두 짐승을 디자인하셨나? (계13:1,11) 였습니다. 제가 설교 시작하면서 질문 던졌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두 짐승'을, 하필이면 '짐승'(beast)이란 표현을 쓰셨나 였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공부하다 보면, 짐승이란 표현이 여러 곳에 다양한 의미로 기록되어 있음이 발견됩니다. 단지 이 '두 짐승'을 부를 때만이 아님이 발견됩니다. 그러기에 다소 혼돈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성경을 섭렵해 보니, 짐승 표현이 구약에 약 180회, 신약에 약 48회(이중 요한계시록에만 33회) 기록되어 있음이 발견됩니다. 이 짐승 표현들이 모두 같은 의미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6가지로 분류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6가지를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보았습니다.

 

첫번째가 이러합니다. '일반 동물을 지칭할 때' 입니다. 그 성경 구절들이 이러합니다. 창세기 1:24, 7:2, 31:18; 신명기 14:4 입니다. 두번째는 '멸망 받는 사탄의 자녀들을 지칭할 때' 입니다. 그 성경 구절들이 이러합니다. 시편 49:12,20; 전도서 3:17-21; 에스겔서 21:31; 베드로후서 2:12,17 입니다. 세번째는 '스랍 천사들(seraphim)을 지칭할 때' 입니다. 그 성경 구절들이 이러합니다. 에스겔서 1:10; 계4:6-7, 8-12, 6:1-8 입니다. 네번째는 '그룹 천사들(cherubim)을 지칭할 때' 입니다. 그 성경 구절이 이러합니다. 에스겔서 10:14-15 입니다.

 

다섯번째는 '제국들(empires)을 지칭할 때' 입니다. 그 성경 구절들이 이러합니다. 다니엘서 7:1-7, 15-28; 계17:10-12 입니다. 여섯번째가 '적 그리스도들(anti christs, 두 짐승)을 지칭할 때' 입니다. 그 성경 구절들이 이러합니다. 요한계시록 13:1-18 입니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공부하려는 짐승이 바로 이 여섯번째인 '두 짐승' 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놈입니다. 이놈이 바로 '산고들'(마24:8)을 일으키는 놈입니다. '인 재앙'(계6:1-8:1)과 '나팔 재앙'(계8:2-14:20)과 '대접 재앙'(계15:1-18:24) '산고들' 입니다.

 

이중 '인 재앙' 마친 후, '예수님의 공중재림'(살전4:14-16)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산고인 '대접 재앙' 마치고, 예수님의 '지상재림'(계19:11-16)이 일어납니다. 신기하게도 이런 '아픈 산고' 후에, 반드시 '기쁜 소식'(예수님 재림 소식)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고의 원칙' 때문입니다(창3:16). '산고'(마24:8)가 반드시(마24:6) 있어야, 그후 '기쁜 소식'(출산, 예수님 재림)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늘날 이 '산고들'을 일으키는 놈을 누구로 정하셨나요? 누구인지를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놈이 바로 '두 짐승' 입니다(계13:1-18). 이놈이 바로 사탄의 똘마니입니다(계12:3, 13:1,11).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사탄과 그 똘마니들을 창조하시고 사용하시느냐 입니다. 이 질문이 우리 모두의 질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반드시 이 질문을 던져야 하며, 이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해결 받아야 합니다. 아니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이 세상 사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게 됩니다. 의문만 가득 차게 되고, 스트레스만 가중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피부로 잠깐 감정만 터치(touch)할 뿐이 됩니다. 기도하기도 싫어 지고, 기도한다고 해도 형식적이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지만 이게 잘 안되고, 기분 좋을 때만 감사하게 됩니다. 아니면 불평, 불만, 근심, 걱정으로 살게 됩니다. 비 크리스천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왜 이럴까요? 그 요인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악을 허락하시고 도말하시지 않으시는가 입니다. 특히 오늘날 '두 짐승'이 우리 주변에서, 활개치며 까불고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이들을 없애 달라고 광장에 나갑니다. 매일 기도합니다. 금식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악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립니다. 무척 스트레스 받습니다. 어떤 분들은 밤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놈 때문에 크리스천 삶이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두 짐승'의 횡포들 때문입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 세상 통지자'이신 예수님(마28:18; 요3:35)이, 이들의 악행을 방관하시나요? 아니면 허락하셨나요? 이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요? 우리의 이성이나 상식으로는 답을 찾기 힘듭니다. 오히려 갈등만 증폭시킬 뿐입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서만 찾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말씀에서만 입니까? 이는 그가 바로 이 세상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요1:3), 이들을 직접 통치하시는 분(마28:18; 요3:35)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 뿐이십니다.

 

이 창조자 예수님이 창조의 목적을 피력하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자신을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골1:16). 자신이 영광 받으시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사43:7,21). 이를 위해 사탄도 창조 하셨습니다(창3:1). 파괴자도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사54:16). 어두움도 창조하셨다고 하셨습니다(사45:18). 그러니 사탄의 똘마니 중 하나인 '두 짐승'(계13:2,11)도,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 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기독교의 아이로니이며, 파라독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영광 받으시면, 성부님과 성령님도 함께 영광 받으십니다(요10:30; 벧전1:11; 요일5:7).

 

또한 사탄과 그 똘마니들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함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이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시키기 위함 입니다. 이를 위해 '이 세상 7천년 창조목적학교'(교장이 예수님)에서, 이들을 교감(사탄)과 나쁜 교사들(사탄의 똘마니들과 두 짐승과 사탄의 자녀들)로 임명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오늘날이 바로, 이 학교의 4년제 대학 졸업반 시대입니다. 이들의 사명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는 머지 않아 예수님 지상재림(계19:11-16)이 올 터인데, 이 지상재림 직전에 '두 짐승'이 불못에 던져지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계19:20). 이때가 바로 '6천년 이 세상'('사탄의 자녀 통치시대', '두 짐승 통치 시대')이 마무리되는 때입니다. 이때가 멀지 않습니다.

 

그 후 '천년왕국'(사11:6-12:6, 65:17-66:13; 계20:1-6)으로 이어집니다. 이 시대가 바로 '예수님의 신부 통치시대'(겔46:2-15; 마24:47; 계2:26, 20:4,6) 입니다, 이 천년왕국 마칠 때, 사탄과 그 똘마니들(계20:10)과 사탄의 자녀들(계20:11-15)을 불못에 던집니다. 용도 폐기됩니다. 창조목적학교가 폐교됩니다. 이 학교를 예수님(교장)이 아버지께 바칩니다(고전15:24).

 

이 세상 7천년이 길어 보이지만, 예수님의 시각에서는 단지 7일입니다(시90:4; 벧후3:8). 영원세계의 차원에서는 단지 하나의 점(dot) 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는 이 학교의 학생입니다. 이 세상에서 70-80년 사는(시90:10), 먼지(dust)같은 존재입니다(시103:14).

 

이것이 다윗(주전1010-970)의 고백이었습니다. 이분도 이렇게 살다가 이 세상 떠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자녀는 한낱 풀과 같고 그 아름다움이 꽃과 같이, 잠깐 있다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고백했습니다(시103:15-16). 이 고백을 이사야(주전739-680)도 했고(사40:6-8), 베드로도 했습니다(주후64, 벧전1:24). 이들 모두가 잠깐 이 세상(창조목적학교)에 살면서,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받고, 더 좋은 본향(히11:16)으로 귀환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열거된, 아벨부터 열거된 구약시대의 기라성 같은 믿음의 선진들 모두가, 잠시 학생 신분(방문자, 순례자, 히11:13)으로 이 학교에 다니다가, 때가 되어(전3:1) 더 좋은 본향으로 귀환했다고 했습니다(히11:16).

 

우리도 이들 믿음의 선진들을 따라, 때가 되면 이들이 살고 있는 본향으로 가게 됩니다. 이 믿음의 선진들이 이 세상 창조목적학교 다닐 때, 사탄과 사탄의 똘마니들과 사탄의 자녀들을 통해 온갖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오늘날 특히 사탄의 똘마니 중 하나인 '두 짐승'에 의해, 온갖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이놈이 바로 예수님이 특별히 '신부 후보생들'을 위해 베푸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떤 선물인가요? 이 '신부 후보생들'을 향한 '표지판' 선물이며, '신호탄' 선물이며, '경고등' 선물이며, '촉진제' 선물입니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 수 있나요? 보혜사 성령님(요14:16)이 이 사실을 깨닫게 도와 주십니다(요14:26). 우리는 앞으로 계속 공부할 '두 짐승' 시리즈 학습에 있어, 이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니면 소화할 수 없습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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