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장  

2025.03.24 12:36

황용현 칼럼 2025.3.21

조회 수 1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요즈음 우리가 두(2) 짐승 시리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어렵고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모두 동의하며 소화할 수 있는 이슈가 아닙니다.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이 요한에게 말씀하셨습니다(주후85, 요일2:18-28). 우리의 의지나 노력이나 이성만으로는 안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황 목사님, 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이란 표현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물으시면 제가 어떻게 대답할까요? 이 사실을 저는 이사야서(주전700, 사61:1-2)에서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영화장면 같습니다. "이 장면이 바로, 장차 예수님 자신이 성육하셔서, 아버지로부터 기름부음 받으실 것을 예언하신 장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반드시 기름부음을 받으셔야만, 그가 능력을 받게 되고 이로서 3년 공생애를 수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예언적 장면입니다." 이는 장차 예수님이 성육신 하실 때, 신성을 100% 비우시고(헬. keno-o, 영. emptied, 빌2:7), 100% 인성을 지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가 3년 공생애를 수행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게 '기름부으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사야에게 미리 예언적으로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 예언대로 실제로 예수님이 성육신 하시어 '아버지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언제 어떻게 받으셨나요? 그의 공생애 시작 직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으실 때였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께 임했습니다"(마3:16). 이때부터 신성을 비우셨던 예수님에게, 능력이 임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사실을 이미 700년전, 이사야에게 예언케 하셨습니다. 이 예언대로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비둘기 같이 아버지가 보내시는 성령님이 임했을 때, 그에게 "지혜의 영, 명철의 영, 묘략(계획)의 영, 재능(능력)의 영, 지식의 영, 주를 경외하는 영"(사11:2)이 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상한 자 고쳐주는 영, 포로된 자 자유케 하는 영, 갇힌 자 놓아주는 영"(사 61:2)까지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이 업그레이드 되셨습니다.

 

이렇게 100%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 이때에 자신의 영성을 업그레이드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영성을 업그레이드 받으신 후, 그가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첫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눅4:16-22). 유대인 회당에서 였습니다. 이곳에서 그가 유대인들에게 상기 이사야서(사11:1-2, 61:1-2)를 읽으시고, 이 말씀이 이제 성취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들에게 그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 라는 말씀입니다(눅4:16-24). 이때 예수님이 자신을 선지자라 하셨습니다(눅4:16).

 

이렇게 예수님이 자신이 디자인하신 대로, 때가 되어(전3:1),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이를 누가(Luke)는 예수님이 '성령 충만' 받으셨다 라고 표현했습니다(눅4:1). 이로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 할 수 있으셨습니다. 그후 3번이나 받으셨던 사탄의 시험도 이길 수 있으셨습니다(마4:1-12). 산상수훈 설교도 할 수 있으셨습니다(마5-7). 문둥병자 치유도 할 수 있으셨습니다(마8:1-4). 파도를 잠잠케 할 수도 있으셨습니다(마8:23-27). 귀신들을 쫓아낼 수도 있으셨습니다(마8:28-34). 물위를 걸을 수도 있으셨습니다(마14:22-36). 그가 십자가상에서 죽을 수도 있으셨고(마27:50), 부활할 수도 있으셨습니다(마28:6). 승천할 수도 있으셨습니다(행1:10-11). 이 모두가 그가 성령님으로 '기름부음' 받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 그가 이 체험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전수시키셔야만 하셨습니다. 이들이 '지상사명'(행1:8, 로마제국 복음화)에 순종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전지하신 예수님(롬11:33)이 미리 아셨습니다. 자신의 제자들이 이 '지상사명'에 순종하려면, 이들이 자신처럼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야만 이들이 영성을 업그레이드 받아, 로마제국 복음화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의 '유월절 만찬' 때(고난주일 목요일 저녁)에, 이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언급하셨습니다. 이것을 자신이 아버지께 부탁하여, 자신을 통하여 제자들이 이것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14:16). 이 약속 때 예수님이 사용하신 표현이 특이합니다. "다른 보혜사"(헬. allos Paracletos, 영. another the Helper) 입니다. 헬라어 allos(다른)는 '본질이 같으나, 기능의 다름'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같은 성령님(헬. Pneuma, the Holy Spirit)이시나 기능이 다른 성령님 이십니다.

 

이 예수님의 표현에 의하면, 본질적으로 같은 성령님 이시지만, 기능적으로 두(2) 부류의 보혜사가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보혜사'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그러면 기능적 두(2) 부류의 보혜사가 무엇일까요? 그 첫째가 (1) '구원을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요7:39, 20:22) 입니다. 그리고 그 둘째가 (2) '사역자 되도록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요14:16; 행1:5,8)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른 보혜사'라는 표현을 하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보혜사'란 헬라어로 'Paracletos' 입니다. 'Para'는 '우리 옆에 계시는 분', 'Cletos'는 'Be Invited, 초청 받으시는 분, 수동태) 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 옆에 계신 분을 초청해야 합니다'. 오순절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3천명)이 회개하고 구원을 위한 보혜사 성령님을 받았습니다(행2:14-41). 한편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 후, 이 '구원을 위한 보혜사 성령님'을 이미 받았습니다(요20:22).

 

이미 구원받은 제자들이 할 일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 복음화입니다. 이들이 '사역을 위한 보혜사'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다른 보혜사'(요14:16)라 하셨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이사야(사61:2)와 요한(요일2:20,27)에게 말씀하시길, '기름부음'이라 표현하셨습니다. 이 '기름부음'을 오순절때 120명(행1:15)이 받았습니다. 실은 예수님이 600여명에게 이것을 받으라고 명령하셨는데(고전15:3-8), 이중 120명(약20%)만 순종했습니다. 이들이 이 '기름부음' 받음으로, '성령 세례'(행1:5) 받고, '성령 충만'(행2:4) 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120명 모두가 로마제국 복음화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발견됩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이중 소수만 앞장서서 로마제국 복음화에 사용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2제자들 중 베드로와 요한(행2:14-5:42), 7집사들(행6:5-7) 중 스테반(행7:1-60)과 빌립(행8:5-40), 그리고 바나바(행4:34-37, 11:22, 13:1)와 구레네 시몬(행11:20, 13:1) 등입니다. 이들 120명 모두가 같은 때에 같은 장소에서 '기름부음' 받았는데, 상기 소수들만이 선교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나머지분들은 간접적으로 참여했다고 생각됩니다. 이 사실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기름부음'이란 단어를 사용하셨나요? 입니다. 본래 이 표현은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을 임명할 때 사용하셨던 표현이었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임명할 때(삼상10:1), 다윗을 왕으로 임명할 때(삼상16:13; 삼하2:4), 솔로몬을 왕으로 임명할 때(왕상1:39), 심지어 고레스를 왕으로 임명할 때(사45:1)에 이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을 임명할 때에도 입니다. 아론과 그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임명할 때입니다(레6:20; 민3:3). 여기에 더하여 선지자를 임명할 때에도 입니다(겔16:9). 예수님도 자신을 선지자라 부르셨습니다(눅4:24). 심지어 최고위 그룹 천사장 임명하실 때에도 이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겔28:14). 게다가 바울과 바울팀들을 지칭하여 부르기를, '기름부음 받은 자들'이라 했습니다(고후1:21). 놀랍게도 예수님이야 말로, 상기 세(3) 직분을 모두 종합적으로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을 이렇게 호칭합니다. 그가 (1) 왕중의 왕(딤전6:15) 이시며, (2) 대제사장(히10:21) 이시며, (3) 선지자(눅4:24) 이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헬. krisma, 영. anoint)을 아무에게나 허락하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명자로 예지(foreknew)되고 예정(predestined)되고 불리움 받은 자(called)들(롬8:29-30)에게만 주어지는 '특별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부님와 성령님으로부터 사명자로 임명 받으시고,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명칭이 바로 '그리스도'(헬. Kristos, 영. Christ, 구원자로 기름부음 받은 분)인 것입니다. 성부님과 성령님을 '그리스도'라 부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처럼, 기독교인 중 사명자로 '특별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허락하신 것이 바로 '기름부음'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크리스천 중, 이 '특별 은혜' 받은 사명자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그 가이드라인이 바로 기름부음 받으신 예수님의 삶의 모델에서 발견됩니다. 예수님이 세(3)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1) '성화된 예수님의 영성'에서 입니다. "지혜의 영, 명철의 영, 묘략(계획)의 영, 재능(능력)의 영, 지식의 영, 주를 경외하는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영성을 보여주셨습니다(사11:1-2; 눅4:18). 두번째가 바로 (2) '복음 전도자 예수님의 영성'에서 입니다. "상한 자 고쳐주는 영, 포로된 자 자유케 해주는 영, 갇힌 자 놓아주는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영성을 보여주셨습니다(사61:1-2; 눅4:18). 세번째가 (3) '상위직 권력자 되신 예수님의 영성'에서 입니다. "왕중의 왕(딤전6:15), 대제사장(히6:20, 10:21), 선지자(눅4:24)로, 기름부음 받은 영성을 보여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1) 성화된 영성, (2) 전도자 영성, (3) 통치자 영성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름부음의 영성' 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기름부음 받은 영성가'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우리의 삶에서 이 '예수님의 세(3) 영성 모델'이 발견되어야 합니다. 이런 모델자 되기는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특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단번에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발전적입니다. 단계적입니다.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입니다. 평생 죽을 때까지 추구해야 하는 영성입니다. 우리는 이 모델를 추구하다 온전히 이루지 못한 채 죽어 천국에 갑니다. 그곳에서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이런 분이 통치자 반열에 설 수 있습니다(계21:24, 22:5).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이 통치자 반열에 들어오라고, 예수님이 몸소 통치자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100% 인간이 되시어 '기름부음'을 통해, 이 '성화 과정'과 '전도자 과정'과 '통치자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이 '성화 과정'을 예수님께서 이사야에게 기록하게 하셨습니다(사11:1-2).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성화로만으로 만족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성화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사61:1-2). '복음 전도자' 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예수님 자신이 '복음 전도자'로 우리에게 모델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처럼 '복음 전도자'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지상 사명'을 다섯(5)번 내리셨습니다. (1) 눅24:47, (2) 막16:15, (3) 마28:19-20, (4) 요20:21, (5) 행1:8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복음 전도자가 되려면 '다른 보혜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요14:16). 이것이 바로 '기름부으심 받기'(사11:2, 61:2; 눅4:18; 요일2:20,27) 입니다.

 

이것 받으면 '성령 세례' 받게 되며(행1:5), '성령 충만'으로(눅4:1; 행2:4), 성화되어(사11:1-2), 복음 전도자로(사61:1-2; 행1:8) 발전되게 되어 있습니다. 산고시대에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됩니다(요일2:18-27). 예수님 재림 때에 부끄러움 당하지 않게 됩니다(요일2:28). 예수님의 신붓감이 됩니다(계19:7-10). 천년왕국에서 통치자가 됩니다(겔46:2; 마24:47; 계2:26, 20:4,6). 신천 신지에서 통치자가 됩니다(계21:24, 22:5).

 

요즈음 우리가 '두(2) 짐승'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모두가 소화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최소한 '성령님의 기름부음' 받기를 소원하거나, 이것을 받아야만 가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두(2) 짐승'의 정체성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왜 자신의 재림전에 이놈을 디자인 하셨는지도 알게 됩니다. 이놈이 바로 '신붓감 후보생들'에게 재림의 임박성을 알려주는 표지판이며, 경고등이며, 신호탄이며, 촉진제임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산고를 잘 견딜 수 있게 됩니다(마24:13).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는, 이놈을 없애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곧 이놈이 불못에 던짐 받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계19:20). 뿐만 아니라 이놈이 예수님의 '눈동자 민족'(신32:10; 시17:8)인 대한민국을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아무리 건드려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계 제2위의 선교대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JABA와 NKABA를 열심히 하도록 이끄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애국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두(2) 짐승'을 보는 시각입니다.

 

황 용 현 목사

unnamed-4.png

 

?

  1. 황용현 칼럼 2025.3.28

    Date2025.03.28 Views5
    Read More
  2. 황용현 칼럼 2025.3.21

    Date2025.03.24 Views14
    Read More
  3. 황용현 컬럼 2025.3.14

    Date2025.03.14 Views34
    Read More
  4. 황용현 칼럼 2025.3.7

    Date2025.03.07 Views61
    Read More
  5. 황용현 칼럼 2025.2.28

    Date2025.02.28 Views54
    Read More
  6. 황용현 컬럼 2025.02.21

    Date2025.02.26 Views62
    Read More
  7. 황용현 칼럼 2025.02.14

    Date2025.02.18 Views70
    Read More
  8. 황용현 칼럼 2025.02.07

    Date2025.02.07 Views111
    Read More
  9. 황용현 칼럼 2025.01.31

    Date2025.01.31 Views100
    Read More
  10. 황용현 칼럼 2025.01.24

    Date2025.01.24 Views117
    Read More
  11. 황용현 칼럼 2025.01.17

    Date2025.01.20 Views110
    Read More
  12. 황용현 칼럼 2025.01.10

    Date2025.01.14 Views157
    Read More
  13. 황용현 칼럼 2025.01.03

    Date2025.01.03 Views128
    Read More
  14. 황용현 칼럼 2024.12.27

    Date2024.12.30 Views101
    Read More
  15. 황용현 칼럼 2024.12.20

    Date2024.12.23 Views137
    Read More
  16. 황용현 컬럼 2024.12.13

    Date2024.12.13 Views200
    Read More
  17. 황용현 칼럼 2024.12.06

    Date2024.12.06 Views217
    Read More
  18. 황용현 칼럼 2024.11.29

    Date2024.12.02 Views166
    Read More
  19. 황용현 칼럼 2024.11.22

    Date2024.11.25 Views183
    Read More
  20. 황용현 칼럼 2024.11.15

    Date2024.11.15 Views16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