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난 칼럼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같은 크리스천들인데, '두(2) 짐승'과 그 똘마니인 '중국 공산당'을 보는 시각이 서로 다른가요? 이에 대한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신학적 배경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기독론'과 '종말론'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런다 보니 이 세상과 그 속에 있는 악을 보는 시각도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함께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입니다. '칼빈주의 크리스천'은 '예정론'(롬8:29-30; 엡1:3-4)과 '하나님의 주권론'(롬9:6-23)과 '전적 은혜론'(롬1:7; 계22:21)을 따릅니다. 반면 '알미니안주의 크리스천은' '만인 구원론'(롬10:13)과 '인간 책임론'(벧전5:8)과 '자유의지론'(수24:15)을 따릅니다. 저는 이 두(2) 이론이 서로 공존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중 '본체'와 '지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빈주의가 '큰 바퀴'('본체')라면, 알미니안주의는 이 큰 바퀴에 물려 있는 '작은 바퀴들'('지체들')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유명인사들을 보면, 이들이 자신의 의지적 선택에 의해 사역자로 임명되지 않았음이 발견됩니다. 모두가, 한 분도 예외 없이, 여호와(예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임명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 예레미아는 그가 어머니의 태에서 형성되기 전에, 이미 선지자로 예정되었다고 했습니다(렘1:5). 바울도 자신이 어머니의 태에 있었을 때에 사도로 택함 받았다고 했습니다(갈1:15). 그러면 이들의 자유의지는 어디 있나요? 이들이 로봇이었나요?
이들이 결코 로봇이 아니었습니다. 불리움 받은 후, 사역 전반에 걸쳐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발동했습니다. 이때마다 성령님이 도우셨습니다. 불리움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말입니다. 성령님이 어떻게 이들을 도우셨나요? 세미한 영의 음성으로, 꿈으로, 비전으로, 말씀으로, 감동으로, 환경으로, 인간 관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입니다. 이럴 때마다 이들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순종했습니다. 예정의 '큰 바퀴' 안에서 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예정적으로 불리움 받았지만, 그의 자유의지로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서 가나안에 도착하였습니다(창11:31-12:5). 모세도 예정적으로 불리움 받았지만, 최소한 다섯(5)번이나 바로왕에게 안 가겠다고 하였다가, 여호와(예수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순종했습니다(출3:1-4:13). 바울도 예정적으로 불리움 받았습니다(행9:1-16). 그는 유럽으로 건너가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니안 비전'을 본 후, 자신의 자유의지를 예수님께 순종했습니다(행16:6-11).
오늘 우리나라 교계에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공존합니다. 그런데 이 두(2) 구룹이 서로 배타적인데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극단적 칼빈주의자들'과 '극단적 알미니안주의자들' 입니다. 서로가 이단이라고 정죄합니다. 요즈음 유튜브에 올라오는 한 유명 목사님이, 칼빈주의는 이단이며, 구원이 없는 사탄 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이 동조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이 가르침으로 영적 어린아이들을 실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연자 맷돌 말씀이 생각납니다(마18:6).
알미니안 주의자들이 '인간 책임론'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합니다. 성경을 이성적 방법으로 해석하려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창1:26-27), 인간의 이성이 소중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담 타락으로(창3:5-6), 인간의 이성도 함께 타락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이성이 '타락된 이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타락된 이성으로 진리를 찾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에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뒤따라 주어야 합니다(요14:16-26).
그러기에 알미니안 주의자들은 '인간이성'과 '인간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야고보서 2:17 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입니다. 이들이 이 말씀을 큰 틀에서 보지 않습니다. 구원의 필요조건이 '예수님의 보혈'인데, 불온전한 인간 행위에 둡니다. 인간 책임론입니다. 그러기에 항상 이들에게 스트레스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의 잣대에 맞지 않으면 비평하며 비난하며 정죄합니다. 얼굴을 보면 평강이 안보입니다. 항상 전투적입니다. 항상 심각합니다. 같은 크리스천끼리 세상 법정에 고소하지 말라고 했는데(고전6:1-8), 이들은 서슴치 않고 크리스천들을 고소합니다. 오늘날 성도들끼리의 고소 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척 실망합니다. 혼돈스러워 합니다.
이들은 친좌파 세력들을 무찔러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면 우리나라가 두(2)짐승과 그 똘마니인 중국 공산당에 의해 망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흥망성쇠가 우리(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모두)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물리적으로 광장에 나와서 외쳐야 한다고 합니다. 요즈음 탄핵 반대 대형 집회들(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합세하여)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집회들을 이끄는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장로교(칼빈주의) 소속 목사들임이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알미니안 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인간 책임론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이들이 종북 좌파들과 북한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참여하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비난합니다.
이런 가운데 저는 요즈음 성경적 전쟁에 대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골리앗과의 싸움을 묵상합니다. 이때 다윗이 외쳤습니다. "전쟁은 여호와(예수님)께 속했다고 했습니다"(삼상17:47, 칼빈주의). 전쟁의 승리가 덩치 큰 골리앗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강한 군대 모압이 유대나라를 공격할 때입니다. 여호와(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란다. 나에게 속했단다. 그들이 비록 너희들 보다 크고 강해도, 결코 이들을 두려워 말아라"(대하20:15, 칼빈주의). 다윗도 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는 전쟁에 있어서, 강하고 능력 있으신 분(mighty Lord)이시기에, 적군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단다. 인간이 전쟁하는 것이 아니란다"(시24:8, 칼빈주의) 입니다.
이 사실을 기드온에게도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므낫세 지파 중 가장 가난했고,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삿6:15). 여호와(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분이었습니다(삿6:17). '여호와의 샬롬'을 경험한 분이었습니다(삿6:24). 이런 그에게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과 전쟁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적군들의 숫자가 엄청 많았습니다. 그 숫자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메뚜기떼와 바다의 모래 같다고 했습니다"(삿7:12). 이들의 숫자가 13만 5천명이었습니다(삿8:10-12). 한편 기드온 군사는 3만 2천명 뿐이었습니다(삿7:3).
여호와(예수님)께서 기드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 군대 숫자가 너무 많다. 그래서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과의 전쟁을 허락하지 않겠다. 만약 승리하면, 너희들이 자신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했다 라고 할 것이다(알미니안주의). 그러므로 너희 군사 중, 이들과의 전쟁을 두려워하는 2만 2천명을 떠나 버리고 1만명만 남게 하되, 이것도 많으니 300명만 남기고 다 떠나게 하라"(삿7:1-8) 였습니다. 놀랍게도 이 적은 숫자로 적군 13만 5천명을 다 죽였습니다(삿8:10-12). 신기하게도 이들이 전쟁으로 죽은 게 아니고, 내부 총질하여 모두 죽었습니다(칼빈주의). 이는 전쟁이 여호와(예수님)께 속한 것임을 보여줍니다(삼상17:47; 대하20:15, 칼빈주의).
오늘날 우리가 '두(2) 짐승'과 그 수하의 '중국 공산당과 북한 공산당'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입니다. 이들이 우리나라의 각계 각층을 이미 뇌물로 포섭하여 점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이들과 싸워서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쟁에 능력 있으신 여호와(예수님)"께서(시24:8), 대신 싸워 주셔야 합니다(칼빈주의). 기드온 시대에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워 주셨듯이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나라가 '동방의 이스라엘'이기 때문입니다(사41:8-9). 재림전 '추숫꾼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우리나라가 절대로 필요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우리나라가 '동방의 이스라엘'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황 목사님, 너무 지나치게 오버(over)하시는 것 아닙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제가 무엇이라 대답할까요? 저는 이사야서(주전739-680)를 묵상하면서, '멀리 동방의 해 뜨는 나라'에 대해, 그가 예언한 성구들을 심도 있게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의 예언적 성구들이 이러합니다.
"멀리 동방에서 내 뜻을 이룰 독수리 같은 자를 부를 것이다"(사46:11). "북쪽 태양이 뜨는 곳으로부터 한 민족을 부를 것이다"(사41:25). "동방에서부터 한 의인을 부를 것이다"(사41:2). "이 민족을 사용하여 유대인과 이방인 복음화를 이룰 것이다"(사55:5-6). "이 민족이 바로 동방의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사41:8-9) 등 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이 '예수님의 디자인'이기에, 이사야에게 예언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디자인이, 당시 목이 곧은 선민사상이 강한 유대인들이 결코 소화할 수 없는 예언이었습니다. 어떻게 동방의 해 뜨는 이방나라가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가 입니다. 동방과 서방의 기준이 되는 위치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우리나라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멀리 있는 동북쪽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이스라엘이 된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을 하게 하신 후, 계속해서 이어서 다음의 말씀을 이사야(유대인들)에게 하게 하셨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이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 생각보다 높음이라"(사55:8-9) 입니다. 우리나라가 '동방의 이스라엘'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게 하신 후, 이 말씀을 하게 하셨습니다. 목이 굳은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들에게 하셨습니다. 이는 이사야를 포함한 유대인들이, 이 예언을 수용하기 힘들 것을 아시고, 미리 이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후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주후 49, 예루살렘교회 수장)가, 이 예언을 재확인했습니다(행15:13-18).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 재림이 가까운 시대인 오늘날, 이 예언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북쪽 해 뜨는 극동지역 조그마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세계 제2위의 선교대국'이 되었습니다.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여호와(예수님)의 예정적 주권적 디자인의 성취입니다. 신기하게도 히브리어로 '주께서 부르는 자'의 표현이 'KOREA'(코레아)입니다. 히브리어 'KARA'가 '부른다' 입니다. 우리나라 이름이 국제 사회에서 '코레아' 입니다.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우리민족이 재림전 '추수꾼 민족'임이 틀림없습니다. 그 이름이 '코레아'('주께서 부르는 자')이기에 입니다. 여호와(예수님)의 '눈동자 민족'(신32:10)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민족 가운데에 '남은 자들'('신붓감들', 사1:9; 롬11:5))을 많이 숨겨 놓으셨습니다. 이런 가운데 '두(2) 짐승'과 그 똘마니인 중국 공산당이 이 '추숫꾼 민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 시대에 미리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KOREA'('주께서 부르는 자')를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위로의 말씀이 이러합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강건하게 하리라. 정녕 내가 너를 도우리라. 정령 내가 내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높이리라. 보라 네게 노했던 모든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그들은 하찮은 것같이 될 것이요, 너와 싸우는 자들은 망하리라"(사41:10-11).
황 용 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