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가족과 함께 카나다 토론토에 있습니다. 2024년 마지막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한해가 유수처럼 지나갔습니다. 곧 다가올 2025년 새해도, 이렇게 유수같이 지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유수같은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강조했습니다. 이 세상이 악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엡5:16). 낭비하면 안됩니다. 헛튼 데에 시간 사용하면 안됩니다. 우선순위를 잘 설정하여 예수님이 가장 원하시는 데에, 우리의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마6:33). 이런 분을 예수님이 '지혜로운 자'라 하셨습니다(마7:24).
지난 2024년 한 해를 되돌아봅니다. 우리 대부분의 AMI Team들이, 시간을 지혜롭게 잘 사용했습니다. 바쁜 삶 가운데에서도, 만사 제쳐놓고 주일 설교말씀 공부와 CELL 모임에 시간 많이 드렸습니다. ABA 공부와 이 ABA 말씀을 나누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습니다. K-JABA와 J-JABA에도 헌신적으로 앞장서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습니다. NK 사역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선교 나갈 때마다 중보기도 사역에도 정성들여 참여했습니다. 이것만 아닙니다. AMI 문서 보급 사역, 댓글 사역, 영상 퍼나르기 사역 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AMI 팀들이여, 정말로 고맙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이야말로, 분명 '남은자 후보생들'이며, '신붓감 후보생들'입니다. '아름다운 사명자들'입니다. 새해에도 이 아름다운 사명 계속합시다. 아니 더욱 업그레이드하여 합시다. 저는 확신합니다. 새해에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더욱 업그레이드하여 이 사명 다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모두 기대합시다.
지난 성탄절에 제가 성탄 메시지 전했습니다. 설교 주제가 "왜 우리가 변질된 성탄절을 지키고 있는가?"(계10:8-11) 였습니다. 분명 오늘날 우리가 기념하는 성탄절이 변질되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이렇게 변질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이 사실에 무감각합니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기념하는 성탄절이, 성경적 성탄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은 성경에, 성탄절을 기념하라는 가르침이 없습니다. 구약에서 가르쳤던 모든 절기들과 먹고 마시는 것과, 달의 첫날과 안식일 등 모두가 장래 일들의 그림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들이라 했습니다(골2:16-17). 성탄절은 구약 절기가 아닙니다. 신약 때 만들어졌습니다. 5세기경 로마카톨릭 교회가 만들었습니다.
성경에 '부활절'은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한 정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성탄 기념'을 하루만 하지 말고, 1년 365일, 즉 매일 매일 하도록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100% 신성' 이심과, '100%인성' 되심을 매일 매일 확인하며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매일 매일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이 예수님의 정체성을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뜻'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라고, 예수님 '탄생날짜'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로마카톨릭 교회가 이 '예수님의 뜻'에 어긋난 행위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임의로 정했습니다. '12월 25일'입니다. 이날이 바로 바벨론 종교의 '아들신'인 '담무즈의 생일'입니다. 예수님을 '담무즈화' 했습니다. 교세 확장 수단이었습니다. 로마제국 국민들을, 별 부담 없이 쉽게, 로마카톨릭으로 개종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바벨론 종교에 물들었던, 5세기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날이 익숙한 성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날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쉽게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카톨릭 교회만이 아닙니다. 정교회들(그리스, 시리아, 애굽, 에티오피아, 러시아)도 성탄일을 정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이유로, 로마카톨릭과 구별하여, 1월 7일을 성탄일로 정했습니다. 이들이 성탄일자 정한 동기도, 또한 로마카톨릭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세 확장에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종교개혁가들'(주후1517, 루터, 칼빈, 즈빙글리)도, 이 12월 25일 성탄일에 동의했습니다. 로마카톨릭의 전통을 답습했습니다. 이들도 교세 확장에 염두를 두었기에 입니다. 그후 18세기에 들어와서, '일루미나티 구룹'(주후1776)에 의해, 이 성탄절을 더욱 변질시켰습니다. 상용화, 축제화, 파티화, 세속적 놀이화로 였습니다. 산타크로스, 크리스마스 추리, 루돌프 사슴, 크리스마스 캐롤, 새벽송, 선물 교환, 크리스마스 음악회, 연극회, 파티, 디너모임, 연휴 등 사회적 축제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늘날 이 축제가 기독교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인들의 축제로 발전되었습니다. 무슬림권, 불교권, 힌두권, 공산권 모든 나라에서도, 종교배경과 무관하게 이 크리스마스를 즐깁니다. 여기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별 분별력 없이, 이들과 함께 이 변질된 성탄절을 즐깁니다. 이들 모두에게 이 성탄절이 즐기는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로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심지어, 이것조차 기독교 냄새가 난다고 하여, 오바마가 법 제정하여, Happy Holidays로 바꾸었습니다. 그가 Merry Christmas라는 표현을 사용 못하게 금지했습니다. 놀랍게도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별 저항 없이 이 제정을 수용했습니다. 이에 복음주의분들의 후광을 받은 트럼프가, 다시 Merry Christmas로 환원하겠다고 합니다. 일련의 이런 모습을 볼때, 오늘날이 바로 '복음의 산고 시대'임이 재확인됩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축제일입니다. 하루만이 아니고, 1년 365일 축제일입니다.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 평화(수직적, 수평적)를 가져다주는 'Peace Christmas' 입니다(눅2:13-14). 세속적 축제일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이날이 바로 삼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날입니다. '하나님 영광 Christmas' 입니다(눅2:13-14). 사람이 즐기는 크리스마스가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날이 하루만이 아니고, 1년 365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회들이 속임 당하고 있습니다. '담무즈 생일날'을 성탄일로 착각하고, 이날 하루를 즐기는 축제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속임 당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깊은 영적 잠에 빠져 있습니다(엡5:13; 계3:1-6).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예수님(계15:3)이, 왜 이런 것들을 보시고 방관하십니까? 왜 예수님이 이들이 영적 잠에서 깨어나도록 도와주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무관심 하십니까? 예수님이 포기하셨습니까? 답답합니다. 스트레스 받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이 이미, 구약에서 '그림자'(고전10:6; 히8:5)와 '예표'(롬5:14)로 이 사실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세(3) 부류의 Hebrew인'(크리스천) 모습에서 입니다. 이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복음을 담는 그릇의 질과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로,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진흙 그릇" 등으로(딤후2:19-20) 말입니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서로 그릇이 다름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이며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말입니다(롬9:6-23).
구약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그릇의 다름을 다음과 같이 '세(3) 부류'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세(3) 부류가 이러합니다. (1) '출애굽한 광야의 Hebrew인들'(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자들,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없는 자들, 애굽의 음식과 전통과 문화를 더 좋아하는 자들, Sunday Christian, 명목상 크리스천, 영적 유아, 영적 어린아이, 영적 사춘기, 다수), (2) '출애굽후 광야에서 심하게 우상을 섬긴 Hebrew인들'(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짐 받은 자들, 출32:28, 32-33), (3) '남은자들'(우상타파하고, 은혜로 여호와(예수님)만 섬긴 자들, 사1:9; 롬11:5) 입니다. 상기 (1)에 속한 자들이 다수(70%) 입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입니다. 영의 눈은 떴지만, 두더지 시각, 병아리 시각, 참새 시각자들 입니다. (2)에 속한 자들은 교회는 다니지만, 구원이 없는 영적 시각 장애인들입니다. (3)에 속한 자들이 '남은자들'(신붓감, 지혜자, 하나님 경외자, 소수) 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Hebrew인 공동체)의 구조입니다. 이 구조를 출애굽한 이스라엘 역사에서 미리 '그림자'와 '예표'로 보여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의 크리스천 모습을 말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와 교인들이 변질된 성탄절을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의 '남은 자들'은 독수리 시각자들입니다. 오늘날 성탄절이, '두(2) 짐승'(계13:1-18)에 의해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성경에 기록된 '오(5)대 신비'를 압니다. 그리고 삶에 적용합니다. 주변에 가르칩니다. 이 '오(5)대 신비'는 이러합니다. (1) '하나님의 신비'(창세전 십자가 디자인, 고전2:7; 롬16:25-26; 계10:7), (2) '그리스도의 신비'(유대인 눈감김, 이방인 눈뜸, 신32:20-21; 엡3:4), (3) '천국의 신비'(이 세상 7천년, 창조목적 학교, 마13:11), (4) '불법의 신비'(사탄 디자인, 두(2)짐승 디자인, 마24:12; 살후2:7; 계13:1-18), (5) '산상수훈의 신비'(8복, 남은자의 삶의 지침, 마5-7) 입니다. 이 '다섯(5) 신비'를 아는 자는 여호와(예수님)를 경외하는 '지식자'(잠1:7)이며 '지혜자'(잠9:10) 입니다. 왜 예수님이 변질된 크리스마스를 허락하셨는지도 아는 자입니다.
상기 '오(5)대 신비'를 깨닫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단계적 발전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기독론의 대가인 사도 요한도 예수님 만난 후(주후27), 요한복음(주후68-70), 요한1, 2, 3서(주후85), 요한계시록 1-10(주후95)기록할 때까지, 상기 '오(5)대 신비'를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요한에게 '작은책'을 먹게 했습니다. 그의 입에는 달았으나 배에는 썼습니다. 이 책을 먹은 후(계10:8-11), 요한이 '새로운 업그레이드된 예언'(계11-22)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작은책'이 바로 '오(5)대 신비'입니다. 요한의 시각이 '독수리 시각'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우리도 상기 '오(5)대 신비'를 먹으면, 사도 요한처럼 영성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ABA에서 '이 오(5)대 신비'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많은 분들이 영성을 어느정도 조금씩 업그레이드 받고 있습니다. 이들의 간증들이 이를 입증합니다. 이들은 왜 성탄이 '변질되어야만' 하는지 압니다. 이들은 오늘날 왜 불법이 '성해야만' 하는지도 압니다(마24:6,8,12). 이들은 오늘날 왜 온갖 산고가 '난무해야만' 하는지도 압니다(마24:3-15). 그러기에 이들은 2025년 새해에, 어디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도 압니다(마6:33).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셔서, 이런 지식과 지혜를 받았다는 사실도 압니다.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들이 새롭게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이 '보물'('그리스도'와 '5대 신비들', '작은책')을 여러분들의 '질그릇'에 담고 있는 자들입니다(고후4:7). 이 '보물' 안에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지식과 지혜가 감추어져 있음을 아는 자들입니다(골2:3). 여러분들이 이 '보물'을 쉽게 먹지 않았습니다. 입에는 달았으나, 먹은 후 배가 쓴 것을 경험했습니다(계10:10). 사도 요한이 경험한 것입니다. 그가 이 '보물'인 '작은책'을 먹은 후, 드디어 계11-22장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계11-22장 내용이 바로 '저 세상, 이 세상, 저 세상'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이야기입니다. 사도 요한이 드디어 이 큰 그림을 한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요한이 독수리 시각자로 변모되었기에 입니다.
여러분들을 향한 2025년에 감당할 도전이 있습니다. 산고가 더욱 심할 터인데 말입니다. 주변 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터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님의 도우시는 힘과 용기가 더욱 필요할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질그릇에 보화를 담은 자들'입니다. 이 '보화'를 주변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성령님의 가르치심(요14:26)과 인도하심을 받아(행16:6; 벧전1:2), 이 사명에 매진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많은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어야 하는 사명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작은책'을 먹은 후, 사도 요한이 간구했던 축복(성경의 마지막 성구)이, 바로 2025년 여러분들을 향한 저의 축복 이어야 합니다. "아멘, 마라나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할지어다"(계22:20-21).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