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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2025.04.18 07:18

황용현 칼럼 202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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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나라가 차기 대통령 선거(6월 3일)로 갈등속에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닥친 시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이 시련을 보는 시각이 다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 간에도 다릅니다. 시대 분별력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면 AMI는 어떤 시각으로 이 시대를 보는가요? 라고 질문하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요? AMI는 이 시대가 바로 '두(2) 짐승에 의한 산고시대'(마24:8)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이 산고가 반드시(마24:6) 일어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산고시대에 살고 있는 신붓감들(모든 크리스천이 아님)에게, 이 산고를 끝까지(예수님 지상재림까지, 계19:11-17), 잘 견디라 하셨습니다(마24:13). 저와 우리 팀들이 이 산고로 마음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이 예수님의 말씀안에서 산고를 잘 견디고 있습니다.

 

단순히 견디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깨어 있어, 재림을 준비하며, 이 재림을 외치라고 하셨습니다"(마24:42-25:46).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NK 사역, 일본 사역 등 30여개의 민족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사역들을 하는 데에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기름부음(사11:2, 61:2; 눅4:18; 요일2:20)을 부어 주셔야만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가 이 기름부음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 없습니다. 우리의 실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은혜로 기름부음 받고, 온갖 믿음의 시련가운데 로마제국 복음화 사역을 했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믿음의 시련과 비교도 할 수 없는 환난이었습니다. 이럴 때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소망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받은 소망의 약속입니다. "너희 시련 받고 있는 자들아, 영광의 소망 안에서 즐거워하라. 이 환난이 인내를 낳고, 이 인내로 인격을 낳고, 이 인격으로 소망을 이루게 된단다"(롬5:2-4) 였습니다. 또한 베드로에게 주신 소망의 약속도 이러했습니다.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단련될지라도, 없어져 버리는 금보다 훨씬 더 귀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된단다"(벧전1:7) 였습니다.

 

이 믿음의 시련이 이들 시대만의 시련이 아니었습니다. 2천년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였습니다. 재림전에는 이 시련이 더욱 심할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날 공산권,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권에 있는 크리스천들의 시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왜 상기 공산권,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권에서 기독교인들이 핍박당하나요? "예수님 이름 때문입니다"(마24:8). 예수님 이름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사44:6; 요14:6; 행4:12).

 

그러면 오늘날 누가 앞장서서 이 "예수님 이름에 공격을 가합니까?" 이 공격자가 바로 '두(2) 짐승'입니다(계13:1-18). 이놈들이 상기 공산권, 이슬람권, 불교권, 힌두권을 손아귀에 두고 조종합니다. 종교다원주의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단일종교를 시도합니다. 이 세상을 자신들이 통제하는 사회로 만들려 합니다. 이것을 '신세계 질서'라 합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여기에 로마카톨릭과 WCC와 심지어 WEA까지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오늘날 이 '예수님의 이름'에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두짐승 시리즈'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주제를 공부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재림전 우리를 괴롭히는 이 '두 짐승의 책략'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능력있게 외칠 수 있습니다. 이런 외치는 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공중재림 때, 살전4:14-17; 계7:9-17)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벧전1:7; 계19:7-10). 예수님의 신부들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두(2)짐승'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이 '두 짐승의 본향'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이제 이 두 짐승의 모습과 그 기능적 이름들에 대해 공부하려 합니다. 그 첫째 짐승의 모습이 이러합니다. 머리가 7개이며, 그 위에 10개의 뿔이 있습니다. 그 뿔 10개에 10개의 왕관이 씌워져 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사탄(붉은용, 옛뱀, 마귀, 계12:9, 20:2)의 모습과 같습니다(계12:3). 이 첫번째 짐승이 바로 사탄의 똘마니임이 입증됩니다. 한편 이놈의 7개의 머리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습니다(계13:1). 그의 얼굴은 표범 같고, 그의 발은 곰 같고, 그의 입은 사자 같습니다(계13:2).

 

놀랍게도 오늘날 중국 공산당 나라가 '용의 나라' 입니다. '붉은 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두 짐승의 하수인임을 여실히 입증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용의 세력'에서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나라가 '세계 제2위의 선교대국'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의 소수의 '남은 자들'에 의해, 이 '세계 추수사역'이 진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계가 아무리 부패되고 변질되더라도, 이 '소수의 남은 자들'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나라를 보호하실 것입니다(시91:1-16; 사1:9; 롬11:5). 아니면 재림전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세계복음화'(마24:14)에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요한이 이 '붉은용'이 가지고 있는 3가지 통치권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1) 능력(power)과 (2) 왕좌(throne)와 (3) 권세(authority) 였습니다(계13:2). '만유의 통치자이신 예수님'(마28:18; 요3:35)이, 이 '붉은용'(사탄)에게 이 3가지 통치권을 제한적으로 주셨습니다(요12:31). '이 세상 6천년 기간'(아담 타락에서 예수님 지상재림 기간) 입니다. 창조목적 학교 교감으로 입니다.

 

'천년왕국'(계20:1-7) 시작 전, 이 사탄을 무저갱에 1천년간 가둡니다(계20:2). 천년왕국은 '예수님 신부들의 통치기간' 입니다(계19:7-10, 20:4,6). 이 기간 사탄의 똘마니들과 사탄의 자녀들도 크리스천들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 신부들의 통치를 받습니다. 천년왕국 마치면서, 사탄을 잠깐 무저갱에서 출옥케 하여 마지막 추수 전쟁을 일으키게 한 후, 그와 그의 똘마니들과 시탄의 자녀들을 불못에 던집니다(계20:7-15). 이 세상 7천년 창조목적 학교가 폐교됩니다. 예수님(교장)이 이 학교를 아버지께 바치십니다(고전15:24).

 

예수님의 공중재림전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이야기입니다. 이 3가지 통치권을 가진 '붉은용'(사탄)이, 첫번째 짐승에게 자신의 통치권 중 하나인 '능력'(power)을 부여합니다(계13:2). 제한된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이러합니다. (1) 미혹케 하는 능력(계12:9), (2) 거짓말하는 능력(요8:44), (3) 대항하는 능력(벧전5:8), (4) 파괴하는 능력(사54:16), (5) 분리하는 능력(마4:1), (6) 도둑질하는 능력(요10:8), (7) 강도질하는 능력(요10:8), (8) 신성 모독하는 능력(계13:5) 등등입니다.

 

또한 사탄(붉은 용)이 첫번째 짐승에게 '이 세상 왕좌 자리'(throne, 계13:2))도 부여합니다(요12:31). 제한된 왕좌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신의 '권세'(authority)까지 부여합니다. 제한된 권세입니다. (1) 공중 권세(엡2:2), (2) 모든 종교 통치 권세(시96:5; 고후4:4), (3) 흑암의 권세(행26:18), (4) 사탄의 자녀들로부터 경배 받는 권세(계13:4, 8) 등입니다. 이 사실을 요한이 보았습니다(계13:2). 놀랍게도 오늘날 이 첫번째 짐승이 요한이 본 대로, 이 3가지 제한된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이들이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예수님 지상재림(계19:11-17) 직전에, 이들이 불못에 던짐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계19:20).

 

이렇게 요한이 '첫번째 짐승'에 대해 보았습니다. 그의 모습과 다양한 이름들이었습니다(계13:1-10). 그후 '두번째 짐승'에 대해서도 보여주셨습니다(계13:11-18). 이 '두번째 짐승'이 '어린양'처럼 생겼습니다. '두뿔'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용과 같이' 말했습니다(계13:11). 신기하게도 그가 '첫번째 짐승의 권세'(authority)를 행사했습니다(계13:12). 뿐만 아니라 그가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시하기를, "첫번째 짐승을 경배하라"라고 명령까지 하였습니다(계13:12). 이놈이 바로 '가짜 어린양' 입니다. '종교적 적그리스도' 입니다.

 

그러면 '진짜 어린양'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이십니다. 그가 바로 (1) '흠 없는 어린양'(벧전1:19) 이시며, (2) '이 세상죄를 지신 어린양'(요1:29) 이시며, (3) '유월절 어린양'(출12:5; 고전5:7) 이시며, (4)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사53:7) 이시며, (5) '보좌에서 영광 받으시는 어린양'(계5:13) 이십니다.

 

요한이 이 '가짜 어린양의 기능적 이름들'을 요한계시록에 다양하게 묘사하였습니다. (1) 666(계13:18), (2) 큰 음녀(계17:1), (3)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자(계17:2), (4)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된 자(계17:4), (5) 그의 금잔(포도주, 예수님의 보혈)에 가증스러운 것들과 더러운 것들로 가득한 자(계17:4), (6) 그의 이마에, 신비라 써 있고, 큰성 바벨론이라 써 있고,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기록된 자(계17:5), (7) 첫번째 짐승을 타고 있는 자(계17:37), (8) 여왕이라 불리움 받는 자(계18:7), (9) 더러운 영의 소굴,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에 사는 자(계18:2), (10)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자(계17:18) 등등입니다.

 

이렇게 요한이 상기 '두 짐승의 모습과 다양한 이름들'을 보았습니다. 그가 '작은 책'(계10:10)을 먹은 후였습니다. 아무리 그가 이 '작은 책'을 먹었지만, 이 '두 짐승'에 대한 이야기가 그에게는 '신비스러운 이야기' 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 두 짐승 이야기를 '신비'라 하였습니다. '첫번째 짐승의 신비'와 '여자(두번째 짐승)의 신비'라 했습니다(계17:7).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에게는 이제, 이 신비가 더 이상 신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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