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공생애 삼(3)년 기간(주후27-30), 유월절(the feast of Passover, 레23:4-5)을 네(4)번 지키셨습니다(요2:13, 5:1, 6:4, 13-17). 예수님께서 네(4) 번째 유월절을 지키시고,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마26:30). 이곳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닭 울기 전에 나를 세(3)번 부인하리라"(마26:34). 그러나 베드로가 장담했습니다. "설령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습니다(마26:35).
그리고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로 가셨습니다(마26:36). 예수님의 마음에 고민과 슬픔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아버지께 '세(3)번의 기도'를 드렸습니다(마26:36-46). 첫번째 기도가 이러했습니다. "내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였습니다.
당시 예수님이 지셔야 할 잔이 무엇이었나요? '네(4) 가지 잔'입니다. 그 첫(1)번째 잔이 '손 발 옆구리 찔림의 잔', '보혈의 잔', '원죄해결의 잔', 곧 '구원자(the Savior, 사53:5; 마1:21; 롬5:9; 엡1:7) 되시는 잔'입니다. 두번째 잔이 '징계의 잔', '저주의 잔', '화목제물의 잔', 곧 '대속자(the Redeemer, 롬3:24)와 '화목자'(the Atonement, the Propitiation, 시22:1; 사53:5; 롬3:25; 요일2:2) 되시는 잔'입니다. 이 두(2) 잔으로 우리가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요일3:10)가 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2) 잔'을 마셔야만, 우리가 구원받고,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전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고전2:7; 롬16:25-26). 이 디자인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성육신 하시어, 이 '두(2) 잔'('구원자 잔'과 '대속자 잔')을 마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권'을 부여하셨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예수님의 은혜'입니다(엡2:8-9). '구원과 대속의 은혜'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 이 '구원과 대속의 은혜' 받은 자들에게, '성화의 은혜'까지 베푸셨습니다. '다음의 두(2) 가지의 잔'을 더 마시셨습니다. 이것이 '세(3)번째 잔'과 '네(4)번째 잔'입니다. 이 '세(3)번째 잔'이 '예수님 자존심 상처의 잔'입니다. 그리고 '네(4)번째 잔'이 '예수님 채찍에 맞으시는 잔'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3)번째 잔'을 드시면서, 우리에게 소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범하는 '자범죄들'을 회개하며 씻기를 소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자들을 위해, '세(3)번째 잔'을 마시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를 소원하는 잔'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상기 #1 잔, #2 잔에 의해 구원과 대속 받은)이 회개의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쓴뿌리'(사탄의 성품, 히12:15)가 자리잡게 됩니다. 전지하신 예수님(히4:13)이 미리 아셨습니다. 이 '쓴뿌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화를 방해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성화를 도와드리기 위해, 예수님이 '네(4)번째 잔'('쓴뿌리 제거 잔')을 마시셨습니다. 이 잔이 바로, '채찍의 잔'입니다.
상기의 '세(3)번째 잔'과 '네(4)번째 잔'을, 예수님이 실제로 어떻게 마시셨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세(3)번째 잔'에 대해 살펴봅시다. 이 '세(3)번째 잔'이 바로 '상처의 잔'(사53:5)입니다. '예수님 자존심 상처의 잔'입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자범죄들'(iniquities, daily sins, 사53:5)을 씻어 주시기 위한 잔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엄청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 로마 총독 빌라도, 로마군인들, 심지어 베드로로부터(마26:34) 엄청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이들로부터, 예수님이 벌레취급 받으시며, 비방거리 되시며, 멸시와 조롱과 비웃음거리 되시며(시22:6-7),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벗기며, 이것들을 제비 뽑는 수모도 당하셨습니다(시22:18).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에게 엄청난 자존심 상처를 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냐? 예수님이 그렇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에 가야바가 말합니다. 저가 하나님을 모독하였도다. 사형에 해당된다"고 하였습니다(마26:63-67).
이에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며, 손바닥으로 때리며, 너 그리스도야, 너를 때리는 자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예언하라"(마26:67-68)라고 조롱하며 모독했습니다. 이때 설상가상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3)번 부인합니다(마26:69-75). 장담했던 베드로가, 이미 유대인들로부터 받아왔던 예수님의 자존심 상처 위에, 그 아픔을 더해 드렸습니다. 설상가상이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사형시키기 위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깁니다(마27:1-2).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채찍질하게 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명령합니다(마27:26). 빌라도도 역시 예수님에게 자존심 상처를 엄청 가합니다(마27:11-25). 로마군인들도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가시관 면류관을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주며, 예수님 앞에서 무릎 꿇고 조롱하며, 유대인 왕 만세 하며 침을 뱉으며,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마27:27-33).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머리 팻말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죄명을 붙였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 예수님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머리를 흔들며 그를 모독하며 조롱했습니다(마27:35-44).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밤11시경), 곧 내일 새벽부터 자신이 이 '자존심 상처의 잔'을 마셔야 함을 미리 아셨습니다. 만유의 창조자이시며(골1:16), 통치자이신(마28:18; 요3:35) 자신이, 하찮은 피조물들로부터 이런 수모를 당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자신이, 곧 이 '세(3)번째 잔'을 마셔야 함을 미리 아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 '자존심 상처 잔'을 마셔야만 하나요? 이는 '하나님 자녀들의 성화'를 위한 잔이기 때문입니다. 첫(1)번째 잔과 두(2)번째 잔으로,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성화의 잔'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 살면서, 매일 매일 '자범죄들'(daily sins)을 짓게 됩니다. 이것을 씻어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이들의 회개를 도와드리기 위해, 예수님이 이 '세(3)번째 잔'('자존심 상처의 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마시기에 무척 힘든 잔입니다. 피조물들로부터 엄청난 수모를 당해야만 하는 잔입니다. 예수님이 이 수모스러운 잔을 마시면서,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moment by moment, minute by minute, 매일 자범죄들을 회개하라. 그러면 깨끗케 해줄께"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매일 매일 회개하는 자(겸손한 자)를 얼마나 이뻐하실까요? 맞습니다. 무척 이뻐하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엄청 쓴 잔을 마시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자범죄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이들의 마음속에 '쓴뿌리들'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게 됩니다(히12:15). 이 '쓴뿌리'가 바로, '사탄의 성품들'입니다. 대표적 사탄의 성품이 '질투심'(타락한 루시퍼의 성품)입니다. 이 질투심에서 파생되는 성품들이, 바로 미움, 원수맺기, 용서못함, 이간질, 분리심, 속임, 거짓말, 비난, 파괴심, 경쟁심, 욕심 등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면, 자연 정신적 육체적 문제로 이어집니다. 근심, 걱정, 불안, 초조함, 좌절, 스트레스, 우울증, 패배의식 등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용서와 자비와 평강을 가지기 힘들어 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를 포함한 모든 크리스천에게 이 '쓴뿌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매일 '회개의 삶'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이 '세(3)번째 잔'('자존심 상처의 잔')을 마시셨습니다.
이제 '네(4)번째 잔'입니다. '채찍의 잔'(사53:5)입니다. 이 잔이 바로 '성화의 잔' 입니다. 빌라도가 로마군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채찍질(stripes)하게 했습니다(마27:26). 예수님이 이사야(주전700, 사53:5)에게 보여주셨던 환상(vision)이 실제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 자녀들의 성화를 애타게 바라시는 예수님의 소원이 이 '채찍의 잔'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쓴뿌리 제거 잔'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쓴뿌리' 제거 도구를 주셨습니다. 성화의 도구입니다. 일반 칼이 아닙니다. '양날 달린 예리한 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엡6:17; 히4:12; 계1:16). 이 칼이 우리의 혼과 영, 관절, 골수를 찌르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능력을 제공해 줍니다(히4:12). 이 칼이 우리 속에 깊이 뿌리내린 '쓴뿌리들'을 잘라냅니다. 이 칼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요? 요한이 먹었던 '작은 책'(계10:10)입니다. AMI에서 제공하는 (1) 삼위일체론/기독론, (2) 하나님 나라론, (3) 종말론, (4) 인간론/두 짐승론 입니다. 이것을 먹어야,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쓴뿌리들'이 조금씩 잘려 나갈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것을 먹기 위해, 노트 정리하며, 공부하며, 암기하며, 열심히 ABA/JABA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단순히 듣고만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공부해 보니, 우리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하, 십자가가 단순 구원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고, '전인적 구원 프로그램'(Holistic Salvation Program)이구나" 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장면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3)번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상기에서 언급한, 예수님의 첫번째 기도 내용이 우리를 약간 혼돈케 합니다. 이 기도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상기 '네(4) 가지의 잔'을 마시기를 꺼려하시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내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if it is possible),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let this cup pass from me)"(마26:39) 입니다. 예수님이 상기의 '네(4) 잔' 마시기를 주저하시는 장면입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나약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나요? 그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이미 창세 전에 디자인된 것인데 말입니다(고전2:7,4:1; 롬16:25-26). 왜 예수님이 돌연 이 디자인 성취에 머뭇거리셨는지요? 게다가 예수님이 구약 사(4)천년 동안, 10번의 '어린양 신학'(그림자, 본보기, 히8:5)으로 이를 자세히 설명해 주셨는데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삼(3)년 공생애 기간에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자세히 유대인들과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는데 말입니다. 눈높이 현장교육으로 서서히 발전적으로 단계적으로 보여주셨는데 말입니다. 네(4)단계로 입니다. (1) 공생애 시작하실 때(주후27, 요1:29, 2:14,19), (2) 공생애 초기에(주후28, 마12:39-40, 16:4; 요6:53-55), (3) 공생애 중기에(주후29, 마16:21-22, 17:22-23; 요11:25-26), (4) 공생애 말기에(주후30, 요12:24,32-33; 마26:2,28; 요16:19) 말입니다.
이 예수님의 나약성을 우리가 어떻게 소화할 수 있나요? 이는 예수님이 본래 100% 하나님이셨지만, 신성을 비우시어(헬. keno-o, 영. empty) 100% 인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빌2:6-7). 그가 33년간 인간으로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셨으며(고후5:21), 죄 없으신/흠 없으신 어린양이셨습니다(벧전1:19, 2:22). 그러나 그가 100% 인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33년간, 인간의 모든 성정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배고파 하시기도 하셨으며, 목말라 하시기도 하셨고, 피곤해 하시기도 하셨으며, 주무시기도 하셨고, 우시기도 하셨고, 슬퍼 하시기도 하셨고, 민망해 하시기도 하셨고, 화 내시기도 하셨고, 괴로워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가 신성을 완전히 비우셨기에, 사람들과 성령님과 천사의 도움이 필요 하셨습니다. 특히 겟세마네에서 제자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세(3)분의 핵심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들의 도움과 격려와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인 이들이 예수님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문제 해결에만 급급했습니다(마26:40-41). 예수님께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지난 3년간, 십자가 사건이 있을 것을 직접 간접으로 미리 말해주었는데도 말입니다. 인간은 결코 믿을 존재가 아님을 시사해 줍니다. 인간은 결코 믿고 의지할 존재가 아니며, 오히려 그의 연약함을 이해해주고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임을 시사해 줍니다.
예수님이 믿고 의지할 분이 아버지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3년 공생애 기간, 예수님이 항상 아버지께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에게 성령님과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과 천사의 도움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병 고치시고, 귀신과 사탄/마귀를 쫓으시고, 자연도 정복하시고, 기적과 이적을 일으키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부활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첫번째 기도하셨을 때에는, 성령님과 천사의 도우심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100% 인간이신 예수님이, 앞으로 닥칠 상기 '네(4) 가지의 잔'을 마시기에, 무척 부담스러워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될 수 있으면 피하시기를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기도를 들으신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한 천사를(an angel) 보내셨습니다. 이 천사가 예수님께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strengthening Him, 눅22:43). 예수님이 힘을 받으셨습니다.
그후 예수님의 기도가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힘 받으신 예수님이 '두번째 기도'를 하셨습니다. "오 나의 아버지여,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26:42)입니다. 기도의 내용이 첫번째 기도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천사에 의해 힘을 받은 예수님의 기도가 이렇게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3)번째 기도를, 두(2)번째 기도와 동일한 내용으로 하셨습니다(마26:44).
이 겟세마네 동산 사건에서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살면서 예수님처럼, 성령님과 천사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위한 성령님'은 받았습니다(요20:22).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시는 성령님'이 필요합니다. 이 성령님을 '보혜사'(헬. Paracletos, 영. the Helper, 요14:16)라 합니다. '지상사명 수행'에 절대로 필요합니다(행1:5,8). 제자들이 오순절에 다락방에서 이 '보혜사'를 받았습니다(행2:1-13).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처럼 천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돕는 천사를 '보호천사'(guardian angel)라 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예수님)를 경외하는 자'(fearer of Jesus, 시34:7, 91:11)에게만 임합니다. 다시 말해 수직계명, 수평계명, 지상사명을 순서대로 지키는 자에게만 임합니다. 여호와(예수님)를 경외하는 자가 '참 지식인'(잠1:7)이며, '참 지혜자'(잠9:10)입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자격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작심 3일하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존재들입니다"(마26:41). 보혜사 받기 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나약한 존재들인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마10:2; 롬8:29-30). 이들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게 하면서 제자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이들로 하여금, 여호와(예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만드셨습니다.
이들에게 보호천사를 붙여 주시고, 능력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기 '네(4) 가지의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로마제국 복음화에 '한 알의 죽은 밀'이 될 수 있었습니다(요12:24). 이들이 수직계명, 수평계명, 지상사명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베푸신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은혜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처럼, 제자들처럼, 상기 '네(4) 가지의 잔'을 마실 수 있도록, 보호천사의 힘주심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재림전 추수꾼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주여, 저를 포함한 독자 모두에게, 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멘.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