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타락(아담책임)으로 인해(창3:5-6),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아담타락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창3:15, proto evangelion, 원시복음) 했던 것이 아닙니다. 신비스럽게도, 이 십자가 사건이 이미 창세전에 디자인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루시퍼 타락 전이며, 아담창조 전이며, 아담타락 전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하나님의 신비'(The Mystery of God, 고전2:7, 4:1; 롬16:25-26)라 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 소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비'(창세전 십자가 디자인)를 소화하기란, 생각처럼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 지식과 지혜와 분별력의 은사들을 받아야지만(고전12:7-10) 소화가 가능합니다. 크리스천이라 해서 이것을 소화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만 이것을 소화 할 수 있습니다. 다수는 단지 '원시복음'으로 충분합니다. 이들은 이 '원시복음' 믿음으로 구원받아 낙원으로 갑니다.
이 '창세전 십자가 사건'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십자가가, 단지 원죄(the original sin) 해결만을 위한 십자가 아닙니다. '전인적 구원'(holistic salvation)을 위한 십자가입니다. 이 사실을 여호와(예수님)께서 자신의 선지자들(다윗과 이사야)에게, 미리 본보기와 그림자(히8:5)로 보여주셨습니다. 여호와(예수님)는 자신의 뜻을 행하시기 전, 반드시 자신의 종들인 선지자들에게, 그의 비밀을 미리 보여주시고 행하십니다(암3:7).
그러면 다윗(주전1040-970)과 이사야(주전739-680)에게 미리 보여주신 비밀이 무엇입니까? 이 비밀이 곧 '창세전 십자가의 비밀'입니다. 다윗이 시편 22편에, 그리고 이사야가 이사야서 53장에, 이 비밀을 기록했습니다. 이 두(2) 장을 신학자들이 'The Messianic Chapters'라 부릅니다. 이 두 장 속에 예수님의 '전인적 구원 프로그램'이 담겨 있습니다. 단순한 '원죄 사함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그러면 다윗과 이사야를 통해 보여주신, '전인적 구원 프로그램'이 어떠한가요? 이 프로그램이 네(4) 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원죄(transgressions) 해결, (2) 저주(curses) 해결, (3) 자범죄(daily sins) 해결, (4) 성화(sanctification) 즉, 쓴뿌리(bitter roots, 히12:15) 해결입니다. 상기 네(4) 단계가 순서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세전(아담타락 전)에 디자인된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의하면, 장차 아담이 창조되어 영생을 소유했다가, 그가 타락되어 영생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것을 허물(transgression, 사53:5; 엡2:5) 또는 원죄(original sin, 롬5:12)라 합니다. 이 원죄가 모든 사람에게 전이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습니다(롬3:23, 5:12,15,19). 이 모든 사람 중,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요일3:10). 이들의 원죄가 해결받아야 합니다.
이 원죄해결 방법을, 예수님이 미리 다윗과 이사야에게 환상(vision)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환상입니까? "여호와(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손과 발에 찔림 받고(시22:16), 옆구리에 창으로 찔림 받는(사53:5) 환상입니다." 이렇게 찔림 받으시면, 물과 피를 흘리게 됩니다. 이 예수님의 보혈만으로만, 이 '원죄'(허물)가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시사해 줍니다(롬5:9; 엡1:7, 2:5; 히9:22).
그런데 '영적 눈이 감겨진 유대인들'(신32:20-21; 사6:9-10; 시69:22-23; 롬11:8-9)은 이 사실에 무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롬9-11). 아이로니 하게도 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 흘리는 일에 앞장섰습니다(마27:19-26). 이들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집요하게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말입니다(마27:23).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신 분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피의 대가를 자신이 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서원합니다. "그의 피의 대가를 자신들과 자신들의 후손들이 받겠다고 합니다."(마27:25) 이 서원대로 이들 유대인들에게 5대 저주(주후70)가 임했고, 이 저주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5대 저주란, (1) 나라패망, (2) 성전파괴, (3) 디아스포라, (4) 눈감김, (5) 반유대주의 입니다.
이들의 요구대로 빌라도의 명령에 의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손과 발이 못박히심 받았습니다(오전 9시, 마27:35; 눅23:33; 막15:24; 요19:18). 손과 발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오후 3시에 숨을 거두셨습니다(요19:30). 이들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요19:34).
이렇게 하여 예수님이 손, 발,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원죄'가 사함 받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이들의 '구원자'(the Savior)가 되십니다. '원죄 해결자'가 되십니다. 다윗과 이사야에게 보여 주셨던 '허물 해결자'가 되십니다. 이것이 첫번째 단계입니다.
두번째 단계는 이러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징계'(punishment) 받으실 것을 다윗(시22:1)과 이사야(사53:5)에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이 징계가 바로 '저주'(curse) 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저주' 받은 자는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여야 합니다(신21:23). 참수, 돌로 치기, 독약, 때리기, 교수형 등으로 죽는 사형수는 저주받은 자가 아닙니다.
이 모세의 율법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셨습니다. 저주받기 위해서 입니다. 실제 예수님이 오후 3시에 저주 받으셨습니다(마27:45). 이때 예수님이 예정된 하나님 자녀들의 (1) 과거 저주, (2) 현재 저주, (3) 미래 저주를 한꺼번에 다 뒤집어 쓰셨습니다. 감당하시기 무척 힘드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놀랍게도 예수님이 이 외침 하실 것을, 1천년 전에 이미 다윗에게 미리 환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주전1000, 시22:1).
이렇게 저주받는 순간 예수님이,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든 저주들'(과거, 현재, 미래)을 뒤집어쓰셨습니다. 이로서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자'(the Redeemer, 시19:14; 사41:14; 롬3:24)가 되셨습니다. '대속자'란 '나의 저주를 대신 뒤집어쓰신 분'이란 의미입니다. 이로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사53:5). 예수님이 '화목 제물'(the Sacrifice of Atonement, the Propitiator, 사53:5; 롬3:25; 요일2:2)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두번째 단계입니다.
이제 세번째 단계인 '자범죄'(iniquities, daily sins, 사53:5)에 대해 공부합시다. 상기 첫번째와 두번째 해결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실현된 복'(realized blessing)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과 혼'이 아직 온전히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장차 낙원에서 회복 받게 됩니다. '지연된 복'(delayed blessings) 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매일 매일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자범죄(daily sins)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이 자범죄들을 씻어야 합니다.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omniscient God, 히4:13)이 우리가 매일 매일 자범죄들을 지을 것을 아셨습니다. 이 자범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미리 예비하시고, 실천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다윗과 이사야에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보여 주신 것이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벌레 취급 받으시며, 사람들의 비방거리가 되시며, 멸시와 조롱과 비웃음 거리가 되시며(시22:6-7), 이들이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는(시22:18), 무례한 행위를 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자존심에 심한 상처(bruised, crashed)를 입힐 것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에게도 보여 주셨습니다(사53:5).
이 디자인대로, 실제 예수님이 엄청,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마26:63-66)는 물론, 유대인 종교지도자들로부터 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얼굴을 주먹으로 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며, 모욕과 조롱을 했습니다."(마26:67-68) 로마군인들도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옷을 벗기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주며, 무릎 꿇고 조롱하며, 유대인왕 만세, 예수님께 침을 뱉으며,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마27:27-33). 이들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예수님의 겉옷을 제비 뽑아 나누며, 십자가 머리 푯말에 유대인왕 예수라는 죄명을 붙였습니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까지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독하고 조롱을 했습니다(마27:35-44). 예수님이 무반응 하셨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예수님이 엄청,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셔야만 했나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자범죄들(iniquities)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사53:6). 우리가 상상해 봅니다. 이 예수님의 '자존심 상처'가 아마도, 자신의 손과 발과 옆구리 피흘림 고통과 버금가는 아픔 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moment by moment, minute by minute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분을 예수님이 무척 사랑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회개의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에 사탄의 성품들이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것을 쓴뿌리(bitter roots, 히12:15)라 합니다. 우리의 성화(sanctification)를 방해하는 놈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 이 성화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도와주셔야만 합니다. 이 사실을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사53:5). "자신이 장차 채찍(stripes)에 맞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치유(성화)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실제 예수님이 채찍을 맞으셨습니다(마27:26). 우리에게 성화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네번째 단계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보여주신, 이 네(4)가지 단계의 예수님의 십자가 스토리가, 단순한 원죄 구원이 아닌, '전인적 구원 프로그램'임을 깨닫게 됩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성화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사탄의 성품(쓴뿌리들)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대표적 사탄의 성품이 '질투심' 입니다. 이 질투심으로 야기되는 성품들이 있습니다. 미움, 이간질, 원수 맺기, 비난, 거짓말, 속임, 분리심 등입니다. 이런 성품때문에 온갖 심리적 병들이 생깁니다. 불안, 초조, 좌절, 스트레스, 근심, 걱정, 우울 등입니다. 이런 문제들에서 해방되라고 예수님이 미리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쓴뿌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방될 수 있나요? 쓴뿌리들을 도려내야 합니다. 어떻게 도려낼 수 있나요? 검으로 도려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검이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검입니다. 보통 검이 아닙니다. '양날 달린 검' 입니다(계1:16). 어떤 검보다 '예리한(sharp) 검' 입니다(히4:12). 이 검이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찌릅니다(히4:12). 그러므로 우리는 이 검을 먹어야 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먹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공부하고 암기하고 가르치며 묵상하는 것입니다.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검이 무엇인가요? 요한이 먹었던 '작은 책'입니다(계10:10). 이 책이 바로 (1) 삼위일체론/기독론, (2) 하나님 나라론, (3) 종말론, (4) 인간론/두짐승론 입니다. 이것들이 '양날 달린 검' 입니다.
이것들을 먹으면,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우리를 성화시켜 주십니다. '독수리 시각자'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십니다. '성경적 세계관자'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십니다. '영적 분별자'(헬. kritikos, 영. discerner, 히4:12)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신부후보생의 덕목 중 하나입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