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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2 14:17

황용현 칼럼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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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창세 전에 삼위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고전2:7; 롬16:25-26). 아담 타락으로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창3:15). 단순 인간 구원 스토리가 아닙니다. '전인적 인간구원 스토리' 입니다. 대상이 모든 인간이 아닙니다.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요일3:10).

 

'전인적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네(4) 분야에서의 구원입니다. (1) 원죄로부터 구원, (2) 저주로부터 구원, (3) 자범죄들로부터 구원, (4) 쓴뿌리로부터 구원입니다(사53:5). 이 구원 프로그램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100% 하나님이신 분이, 신성을 완전히 비우시고, 100% 인간이 되셨습니다(빌2:6-7). 그리고 우리에게 '생명 살리는 모델'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예수님의 모델'이라 합니다. 이것이 곧 "죽음 + 부활 = 영광" 모델입니다.

 

상기 '전인적 구원'에서, 예수님이 '죽음'을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이는 "죽음이 먼저 있어야 부활이 있고, 영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최우선입니다. 죽음 없이는 부활과 영광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죽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후 생명이 살아났습니다(요12:24). 그리고 예수님이 영광 받으셨습니다"(히12:2; 계4:9-11,5:8-14).

 

이는 '생명이 죽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죽음 없이는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요12:24).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인의 삶도 '죽음의 삶'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기독교인이 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마16:25).

 

예수님의 재림(기쁜소식, 생명 살리는 소식) 전에도, 반드시 산고(헬. odinon, 영. birth pains, 마24:8)라는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중 '복음의 산고'도 있습니다. 복음을 변질시키는 산고입니다. '번영 신학'과 '종교다원주의 신학'이 그 대표적입니다. 모두가 이 '예수님 모델 신학'에 위배됩니다. 십자가 '죽음 신학'에 위배됩니다.

 

'번영신학'을 살펴봅시다. 기독교를 이 세상 복받는 '이기주의 신학'으로 변질시킨 신학입니다. 이는 기독교인을, 보이는 이 세상만 바라보게 오도하는 신학입니다. 기독교인을, '두더지 시각자'로 만드는 신학입니다. 인기가 대단합니다. 이는 이 세상에 '두더지 시각 기독교인'이 대다수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영적 유아들'(헬. nepios, 고전3:1) 입니다. 이들은 죽기를 꺼려합니다. 그러니 생명 살리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롬1:7; 계22:21)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종교다원주의자'는 어떠합니까? 이들이야말로 교회안에 있는 '가짜 기독교인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입니다(마24:4-5,23-24). 이들은 '십자가 죽음' 없이, 세상 방법으로 이 세상을 낙원화 하려는 '후천년주의자들’입니다.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 추구자들’입니다. 이들이 '진짜 십자가 신학하는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이들이 '십자가 신학'과 정반대 행동을 합니다. 이들의 학설이 이단 학설입니다.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재림전 시대에,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자들까지도(even the elects, 마24:23), 이들의 가르침에 미혹(헬. pranao, 영. deceive, 마24:4)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미혹 사건이 예수님 재림 전에 반드시(헬. dei, 영. must, 마24:6) 일어나야 한다고 예수님이 예언하셨습니다(마24:23-28). 오늘날 이 미혹 사건이 전세계 기독교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유명 신학교들이 강타당하여 변질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일본 기독교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본 선교에 하나의 큰 거침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전 일본 선교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제국 복음화 할 때도,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가 유대교인들(빌3:2-3) 이었습니다. 같은 하나님 아버지를 믿지만, 기독론이 다른 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일어난 장애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바울팀이, 이렇게 변질된 기독론자들(유대교인들)의 방해를 받아가면서 복음(기독론)을 전했습니다. 이럴 때, 바울팀이 '예수님의 모델'(빌2:5-11)을 붙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들이 이것을 온전히는 붙잡지 못했지만, 그 모델을 푯대(헬. skophos, 영. mark, to fix the eye, 푯대에 시각을 고정시킴)로 삼고, 여기에 시각을 고정시키며 뛰었습니다. 바울이 목표 지향적이었습니다. 이 목표가 바로 '하나님의 고귀한 부름의 상' 이었습니다. 그가 이 '예수님의 모델'(죽음 + 부활 = 영광)에 따라, 이 '부름의 상'을 향해 좇아(헬. dioko, 영. press on), 쉬지 않고 달렸다고 했습니다(빌3:12-14).

 

일본 선교를 하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엄습해올, 일본 교계의 '후천년주의자들'은 물론, 일부 '무천년주의자들'로부터의 방해를 예상해야 합니다. 이럴 때 마다, 바울팀이 추구했던 모델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신기하게도 바울이 당시, 로마제국의 국교를 믿는 바벨론 종교인들의 반대보다, 유대교인들의 반대에 더욱 신경 썼습니다. 이렇듯 우리도 일본 국교인 신토교인들의 반대보다, 상기의 소위 기독교인들의 방해에 더욱 민감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일본 선교를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특히 재림시대인 오늘날, 일본인 하나님 자녀들에게, 예수님의 재림 메시지를 어떻게 전해야 합니까? 이에 대한 해답을 어디에서 찾아야 합니까? 예수님이 재림전 성도들에게 명령하셨던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1) 잘 견디어라(마24:13), (2) 깨어 있어라(마24:42), (3) 준비하라(마24:44), (4) 외쳐라(마24:45-25:46) 입니다. 이 경고의 네(4) 명령을 순서대로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서 일본 복음화가 진행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에 순종하는 성도를 귀히 여길 것입니다. 들림 받게 하여(살전4:17), 혼인잔치에 참여시킬 것입니다(계19:7-10). 순종하지 않는 성도는 7년환난을 통과하게 할 것입니다.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 미리 경고하셨습니다(마24:51,25:30).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일본선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노아의 때처럼, 소수만 이 경고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 예수님이 미리 말씀하셨습니다(마24:37-39). 이런 때 여러분들을 향한 저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AMI 팀 모두를, 이 소수의 신부 반열에 들어오도록 이끄는 사명입니다. 여러분들을 향한 저의 사명이 큽니다. 제가 이 사명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을 생명 살리는 자 반열로 이끄는 사명입니다. 저를 이런 사명자로 만드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저를 지난 27년 동안, '죽음 훈련 과정'을 거치게 하셨습니다.

 

이 과정이 바로, 예수님은 물론, 그의 제자들이 거쳐야만 했던 필수 '생명 살리는 과정'입니다. 이것 없이는 예수님이 우리를 '자신의 생명 살리는 동역자'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아니면 나의 합당한 생명 살리는 동역자가 되지 못한단다(마10:38-39; 눅9:23-26).”

 

저에게도 예수님의 크신 은혜로 이 과정을 겪게 하셨습니다. 지난 27년간입니다. 1997년입니다. 미국에서 편하게 교수생활 할 때입니다. 한국 방문했습니다. 당시 외국인 노동자 선교사역 하시던 목사님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이들이 저에게 요청했습니다. 신학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을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데,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영어로 하는 신학교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때 저는 한국을 잠깐 방문한 해외 교포(1968년 유학차 출국)였습니다. 한국에 신학교를 개설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이 요청을 듣자, 성령님이 저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네가 미국에 100불을 들고 들어 가지 않았느냐? 그후 10여년간, 네가 네 가족 생활비와 학비를 위해, 학생 비자를 가지고, 식당 접시 딱기, 뻐스보이, 웨이터, GM 자동차 노동자, 건물 청소부, 피짜 배달 등 온갖 3D일들을 하지 않았는냐? 네가 네 나라 한국에서는 엘리트이지만, 내가 너를 모세와 바울처럼 겸손 훈련을 시켰단다. 이제 너와 똑같은 자들을 네 앞에 보내줄 터이니, 이들을 섬기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이를 위해 너에게, 너를 돕는 자를 보내줄 것이다."였습니다.

 

이 성령님의 음성에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가족과 의논하지도 않고, 교수 자리도 계절학교 강의하기로 하고, 일방적으로 가방 하나 들고 한국에 왔습니다. 가족의 희생이 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약속만 의지하며, 가족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30여년이 지났습니다. 가족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 주셨고, 감당하기 힘든 크신 은혜도 베풀어 주셨습니다(신32:10; 시17:8).

 

예수님의 약속대로 저에게 돕는 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정진용 장로님과 조혜옥 목사님 부부입니다. 이들이 신학교 개설을 위한 땅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땅만이 아니고, 필요한 재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이곳에 천막과 콘테이너를 올려 놓았습니다. 30여명의(15나라 출신) 신학생들과 합숙하며, 말씀과 예배에 집중하며, 3-4년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이들 모두가 직장을 포기하고, 3-4년간 이곳에서 함께 숙식하며(심지어 가족에게 보낼 보조금도 지불해 주면서) 사랑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병원 권사님(조혜옥 목사님 모친)이 현재의 AMI 교회 건물을 건축해 주셨습니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며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개교 후 27여년간, 300여명(40여개 나라 출신)의 졸업생이 배출되었습니다. 이들을 풀타임 사역자로 하여, 본국으로 파송했습니다.

 

이들이 자기 나라로 귀국하여, 교회 개척과 신학교 개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생활비는 물론 사역에 필요한 재정을 도왔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저와 함께 조혜옥 목사님과 개척팀들이, 이들 졸업생들을 방문하여, 이들이 자리매김 잘하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에 닥친, 생명의 위협과 물질의 희생은 물론, 가족의 희생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미친듯이 정신나간 사람처럼, 지난 27년을 이들을 향해 섬겼습니다. 주변의 똑똑하고 제정신 가진 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들이 골이 비었거나, 제정신이 아니구나!"라 비웃었습니다. 지난 27년간, 이런 비웃음을 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저희들을 이렇게 죽음 훈련을 혹독하게 시키셨습니다. 이 훈련이 1-2년이 아니고, 무려 27년입니다.

 

30여개국에 산재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살리게 하셨습니다. 멀리 아프리카(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카메룬,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모슬림권 중동(터키, 요르단, 팔레스타인, 이란, 이라크, 쿠르드, 시리아), 모슬림권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탄, 카자흐스탄, 아프카니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힌두권 아시아(네팔, 인도, 스리랑카), 불교권/공산권 아시아(중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 미얀마), 모슬림권 아시아(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카톨릭권 아시아(필리핀), 중남미권(파라과이, 페루), 러시아(유럽권, 시베리아권, 아시아권) 등입니다.

 

상기 나라들을 향한 사역이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복음을 향한 반대와 방해입니다. 모슬림, 불교인, 힌두교인, 공산당, 심지어 동료 기독교인들로부터 입니다. 살해 위협, 투옥 위협, 혹한, 혹서, 열악한 예배환경, 열악한 세미나 환경, 열악한 교통, 열악한 현지 음식, 문화충격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신실하신 예수님이 머리털 하나도 해 받지 않게 지켜 주셨습니다. 기적입니다. 지난 날을 뒤돌아보면서, 저는 항상 이 찬송을 부릅니다. "오 신실하신 주”(Great is Thy Faithfulness, 393장) 입니다.

 

저는 이 AMI 선교를 전략적으로 했습니다. 문서와 영상에 투자 많이 했습니다. 상기 나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입니다. AMI의 모든 영적 자산들을 문서와 영상에 담았습니다. 30여개의 언어로 입니다. 결코 만만한 도전이 아닙니다. 세계 어느 선교기관에서도 도전하기를 꺼려하는 도전입니다. 감사하게도, 성령님께서 AMI를 도우셨습니다. 이것을 해내게 하셨습니다.

 

AMI 신학을, 이 30여개의 언어로 담았습니다. 상기의 현지어들로 바꾸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엄청난 땀과 헌신과 희생(죽음)이 요구되었습니다. 현지 번역자들의 희생과 헌신은 말할 것 없고, 이에 따른 물질의 헌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AMI 개척자들(국내외)의 믿음의 헌신이 이를 가능케 했습니다.

 

30여개의 언어로 70만-100만권(셀 수가 없음)의 AMI 신학 책자들이 출판되었습니다. 이에 버금가게, 세계 10대 언어로 구성된, 영상들도 만들어 졌습니다. 이 문서들과 영상들이, 지금도 미전도족속 지역을 포함한, 세계 전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이 우리의 사역을 국내에서는 잘 모릅니다. 우리가 국내에서 나팔 불지 못하도록 예수님이 막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세히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로 하여금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죽으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27여년간 죽어오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요즈음 AMI가 조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서 입니다. 우리를 27년동안 죽게 하셨는데, 이제야 조금씩 싹트게 하십니다. 한국어 구독자들을 보내 주십니다. AMI 교회에 6,500여명, KJ에 4,250여명(합10,750여명, 2024년 7월12일 현재) 입니다. 어려운 AMI 메세지이지만, 이를 정규적으로 공부하려고, 의사를 표현한 분들입니다. 잠재적 우리의 선교 파트너들입니다.

 

AMI가 전하는 메시지가 인기위주 보편성 있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수용하며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메시지가 아닙니다. AMI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선호하는 만인구원론, 인간책임론, 종교다원주의, 번영신학을 비성경적이라고 가르칩니다. AMI는, 예정적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강조합니다. 인본주의적 인간책임론을 배격합니다. 이 세상 번영신학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미전도족속 복음화를 강조하며, 실제 현장에서 이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유튜브 구독자들에게 이 사명에 동참하기를 도전합니다. AMI는 또한 예수님 재림의 급박성을 외칩니다. 재림전 산고의 당연성을 강조합니다. 재림전 크리스천들의 잘 견딤과, 깨어 있음과, 준비해야 함과, 외쳐야 함을 강조합니다(마24:13-25:46). 이것이 들림받는 신부의 요건임을 강조합니다.

 

AMI는 '창조목적 신학'(사43:7,21)에 초점을 둡니다.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세상이 창조목적 학교이며, 우리가 학생임을 강조합니다. 우수학생이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들이 천년왕국(계20:4,6)과 새하늘과 새땅(계21:24,22:5)에서 통치자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AMI는 'AMI 신학'에 들어온 모든 분들이 이 통치자 반열에 들어오도록 가이드해 드리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반면 AMI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성경적 해답을 제시해 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해답이 이러합니다. "우리는 천국시민이지만(엡2:19; 빌3:20), 잠깐 이 세상에 방문한 나그네이며, 순례자이다(히11:13; 벧전2:11). 우리는 머지않아 이 세상을 떠나 본향(히11:16)으로 가는 존재다. 우리의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며, 풀은 마르고 꽃도 없어진다(사40:6-8; 시103:15-16; 벧전1:24). 우리는 재림전 산고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생명이 주어졌을 때, 마지막 추수꾼 반열에 들어와 미전도족속 복음화에 전념해야 할 사명을 가진 존재다."

 

아이로니 하게도, 같은 기독교인이지만, 이 기독교인 정체성에 민감한 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으며, 둔한 상태에 있습니다(계3:1-6). 안타깝습니다. AMI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영적으로 잠자며, 둔한 기독교인들을 깨워주며, 민감하도록 도와주는데 있습니다. 상기 유튜브 구독자들의 댓글에서 이 사실이 발견됩니다. 많은 댓글 보내는 분들을 통해 우리의 사명이 재확인됩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황 목사님, AMI가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나요? 라고 묻는다면, 제가 무엇이라 대답할까요? 저의 대답은 이러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지난 27년간, AMI와 그 개척자들의 죽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들의 죽음 위에, 싹을 조금씩 돋아나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을 향한 싹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일본의 싹들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라나게 하실 지 무척 궁금합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일본 사역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며, 똑똑해서도 아니며, 운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지난 27년의 '죽음'이 뒤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 '죽음의 터전' 위에, 지금 일본 선교의 집을 짖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개척자들의 죽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이들을 존귀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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