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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4 07:41

황용현 칼럼 2024.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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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요즈음 '예수님의 모델'(빌2:5-11)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죽음 + 부활 = 영광" 모델입니다. 이것이 곧 '십자가 신학'이며, '생명 살리는 신학'(요12:24-26)이며, '어린양 신학'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신학'입니다. 예수님이 성육신(100% 인성)하시여, 이 모델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모델에 따라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빌2:5).

 

예수님이 이 명령 내리시기 전, 미리 4천년 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모델을 '본보기'(헬. hupodeigma, 영. example, copy, 히8:5)와 '그림자'(헬. skia, 영. shadow, 히8:5)로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의 역사 속에서 입니다. 놀랍게도 이 구약 역사속에,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자상하심과 친절하심과 배려하심(고전13:4-7)이 담겨 있음이 발견됩니다. 또한 이 역사속에, '예수님 모델'의 절대성과 중요성이 담겨 있음도 발견됩니다.

 

그러면 구약 4천년 기간, 상기 '어린양 신학'('예수님 모델', '십자가 신학', '생명 살리는 신학')을 어떻게 '본보기'와 '그림자'로 보여 주셨나요? 열(10) 가지 '어린양 모습'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을 단계적, 점진적, 발전적으로, 역사 현장에서, 눈높이와 역기능적 교육방법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열(10)가지 '어린양'(본보기, 그림자로 보여주신) 모습을 살펴봅시다.

 

(1) '가죽치마의 어린양'(주전4114, 창3:21), (2) '아벨의 어린양'(주전4114, 창4:4), (3) '방주의 어린양'(주전2458, 창6:14), (4) '400년 노예 예언 어린양'(주전2090, 창15:13-16), (5) '모리아산의 어린양'(주전2050, 창22:2; 갈3:16), (6) '유월절의 어린양'(주전1446, 출12:1-36), (7) '성막의 어린양'(주전1445, 출25:8), (8) '성전의 어린양'(주전959, 왕상6:14), (9) '성전이 자신의 몸이라 가르치신 어린양 예수님'(주후27, 요2:21), (10) '다 이루었다 하신 어린양 예수님'(주후30, 요19:30) 입니다.

 

상기 열(10)가지 '어린양' 모두가, 장차 십자가에서 자신이 직접 보여주실 '어린양의 모델'입니다. 이것을 그가 구약 사(4)천년 역사속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단계적, 점진적, 발전적으로, 역사 현장에서, 눈높이와 역기능적 교육방법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믿고 있는, 구약 스토리를 상고(search the scriptures)해 보아라. 그 내용 모두가 나에 관하여 증거하는 내용이란다"(요5:39). 유대인들이 믿던, 안 믿던 이 가르침을 이들에게 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후, 제자들(유대교 배경을 가진 자들)에게도 똑같은 말씀하셨습니다(눅24:27,44). 당시 제자들이 믿던, 안 믿던 이 말씀을 이들에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구약 4천년 기간이 창조목적학교 구조 속에서, 유치원에서 고등학년 기간입니다. (1)유치원(아담타락-노아, 주전4114-3058), (2) 초등학년(노아-아브라함, 주전3058-2166), (3) 중등학년(아브라함-다윗, 주전2166-1040), (4) 고등학년(다윗-예수님, 주전1040-주전4) 기간입니다. 이 기간 예수님께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주요 신학과목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려 열두(12) 과목이나 됩니다.

 

이 과목들이 이러합니다. (1) 어린양 신학(상기 10가지), (2) 노아 신학(노아홍수 신학 창6-8, 노아 예언신학 창9:24-27, 노아 세(3)자녀 신학 창10:1-32), (3) 바벨론 신학(니므롯 신학 창10:8-12, 바벨탑 신학 창11:1-9), (4) ashkenaz 신학(가짜 유대인 신학, 창10:3), (5) 아르박삿 신학(아브라함 조상 신학, 진짜 유대인 신학, 창10:22, 11:10-26), (6)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신학(창12:2-3), (7) 애굽, 출애굽, 광야 신학(출12-신34), (8) 십계명 신학(출20:1-17), (9) 가나안 신학(수6-대하36), (10) 성막과 성전 신학(출25:8; 왕상6:14; 요2:21), (11) 십자가 신학(요19:18), (12) ‘다 이루었다’ 신학(요19:30)입니다.

 

상기 열두(12) 과목에 숨겨진 '대명제'(대주제)가 무엇인지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요5:39; 눅24:27,44).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모델' 이야기입니다. '십자가 신학' 이야기입니다. '생명 살리는 신학' 이야기입니다. 누구를 위한 모델 이야기인가요? 신약시대 크리스천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이들이 이 모델대로 살도록 디자인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예수님이 이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신약 크리스천들이여, 이 디자인대로 살아라"였습니다(빌2:5).

 

그런데 신기하게도, 신약시대 전반에 걸쳐 이 모델대로 살았던 크리스천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소수의 '남은자들'(롬11:5, remnants)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 '십자가 신학'에 별 관심 없었습니다. '자신의 십자가 지기'도 꺼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기도 꺼려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마10:37, 16:24-27). 십자가는 '수치의 쓴잔'(히12:2)이며, '고통의 쓴잔'(마26:39,42)이며, '저주의 쓴잔'(시22:1: 마27:46) 입니다. 아무나 이 잔들을 마실 수 없습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남은자'로 선택 받았습니다(롬11:5). 그는 이 잔들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갈2:20). 그는 이 십자가(수치, 고통, 저주)를 오히려 '최고의 자랑'으로 생각했습니다(갈6:14). 바울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롬1:7)로, 이 십자가 속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떤 사실을 알았는가요? (1) 십자가 속에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는 (2) 십자가 속에 창조목적학교 개교 소원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3) 십자가 속에 예수님의 순종심과 겸손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그는 (4)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이 십자가 속에 담겨있다는 사실(고전1:24)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5) 이 십자가 속에 제자의 모델(마10:37, 16:24-27)이 숨겨진 것도 알았습니다. 결국 그는 (6) 이 십자가가 곧 하나님의 사랑(요3:13; 요일4:16)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것 모두가 '십자가 속에 담겨진 신비들'입니다.

 

바울이 잘나서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롬1:7; 계22:21) 이 십자가에 숨겨진 예수님의 마음과 그 신비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 '십자가 속에 담겨진 신비들'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해 왔습니다. Sunday Christian- nominal Christian(명목상 크리스천)의 모습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신14:2)의 모습이 이러했습니다. 남은 자들만 예외였습니다(사1:9; 롬11:1-5). 구약 이스라엘인 스토리가, 바로 신약 크리스천 스토리의 본보기와 그림자입니다.

 

신약시대에 소위 크리스천이라는 분들(성직자, 평신도 포함)이, 십자가를 변질시키거나 오용해 왔습니다. 십자가를 장식용 도구로 만들었습니다. 교회 지붕 첨탑용, 교회 치장용, 목걸이용, 가정 벽걸이용 등으로 입니다. 어떤 분은 십자가를 수호신용이나, 소원 성취용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로마카톨릭 교회를 위시한 정교회들과 성공회, 감리교를 위시한 일부 개신교단들에서 이런 모습이 발견됩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 사(4)천년 긴 시간에 걸쳐, 예수님께서 열(10)가지로 '어린양 신학'을 '본보기'와 '그림자'로 우리에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자상히,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발전적으로, 눈높이로, 현장에서, 역사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보여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 신학'입니다. '생명 살리기 신학'입니다. '예수님 모델 신학'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통해 명령하셨습니다. "너희 크리스천들아, 이 '예수의 모델' 대로 살아라!"(빌2:5). 그런데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소수 '남은자들'만이 이에 순종했습니다. 다수 크리스천이 불순종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나요? 전능하신 하나님(창17:1)이 손 놓고 계신가요? 포기하셨나요? 무관심 하신가요? 우리가 무엇이라 대답할까요?

 

저의 생각입니다. 천국이 직분사회/계층사회(마5:19,18:1,23:11; 눅19:11-27; 고전15:41; 딤후2:20-21)입니다. 공의의 하나님(대하12:6)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수고한 '남은자들' 곧 '예수님의 신부들'(계19:7-10)을 로얄계층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천년왕국(계20:4,6)에서와 신천신지(계21:24,22:5)에서, 이들을 통치자들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창조목적 파트너(창1:28)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이 로얄계층 '남은자들'을 사용하시어, 재림전 추수사역을 감당케 하십니다. 이들을 '예수님의 모델' 속에 들어오도록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들이 '예수님의 모델' 안에 살도록 도우시며 이끄십니다. 우리가 일본 추수사역자가 되려면, 이 '예수님의 모델' 속에 들어오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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