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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0:44

황용현 칼럼 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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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시리즈'를 27회로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주부터 '남은자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남은자'란 일반 크리스천들에게 생소한 용어입니다. 익숙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별관심을 두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가 크며, 대단히 중요한 용어입니다. 구약에 약 84회, 신약에 약 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구약에서 이사야가, 신약에서 바울과 요한이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사야가 15번, 바울이 3번, 요한이 3번입니다. 이사야의 대표적 성구가 바로 이사야서 1:9, 바울의 대표적 성구가 로마서 11:5, 요한의 대표적 성구가 계시록 12:17 입니다. 우리가 '남은자'에 대해 이해하려면, 이에 대한 성경적 원어 표현을 알면 도움이 됩니다.

 

'남은자'의 원어 표현이 이러합니다. sarid((히), reimma(헬), remnant(영) 입니다. 이사야는 이 '남은자'를 또 다른 표현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사 6:13에서 입니다. '그루터기'와 '거룩한 씨' 입니다. '그루터기'의 원어는 이러합니다. matstsebeth(히), koutsouro(헬), stump(영) 입니다. '거룩한 씨'의 원어 표현은 이러합니다. kodesh zehrah(히), hagios sperma(헬), holy seed(영) 입니다.

 

그러면 '남은자'란 그 의미가 무엇인가요? 그 의미는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거의 모두가 배교행위(apostasy)를 합니다. 창조목적(사43:7,21)에 위반 행위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깁니다. 우상을 더 섬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 중, 아주 소수만 이런 배교행위를 안 합니다. 신실한 소수입니다. 성경에서 이 신실한 소수를 '남은자'라 부릅니다.

 

그러면 이 '신실한 소수'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자기네가 잘나서 인가요? 자기네가 원해서 인가요? 자기네가 똑똑해서 인가요? 자기네가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인가요? 자기네가 좋은 가문 출신 때문인가요? 자기네가 좋은 학교 출신 때문인가요? 자기네가 좋은 networking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이것들과 전혀 무관합니다. 그러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은혜적 선택' 때문입니다(롬11:5).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권적으로(롬9:6-23) 베푸시는 '은혜적 선택' 때문입니다. 여기에 아무도 항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은혜적 선택'을 언제 디자인하셨나요?

 

여호와(예수님)께서 예레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친의 태에서 너를 짓기 전이라 하셨습니다"(렘1 :5).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시139:16). 야곱은 모친의 태에서부터 였다고 했습니다(사44:2). 바울도 모친의 태로부터 자신을 선별하여, 은혜로 자신을 이방선교사로 부르셨다고 고백했습니다(갈1:15). 이들 모두가 자신들의 부르심이, 바로 하나님의 일방적 선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자신들이 잘났거나, 운이 좋아서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그러면 왜 '남은자'를 '그루터기'라 부르셨나요? '그루터기'란 무엇인가요? 이는 한 나무를 자른 후, 남겨놓은 작은 부분을 말합니다(단4:15,23,26). 때가 되면 여기에서 새싹이 나옵니다. 잘린 나무가 소생합니다. 잘린 나무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그루터기' 때문에 소생하게 됩니다. '남은자' 때문에 소생케 됩니다. '남은자'가 바로, 잘린 나무를 소생케 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그루터기'가 바로, 잘린 나무를 '소생케 하는 자' 입니다. 또한 이사야가 이것을 '거룩한 씨'라고도 불렀습니다(사6:13). 왜 그가 이들을 '거룩한 씨'라고 불렀나요?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요한이 모든 크리스천을 '하나님의 씨'(헬. Theos sperma, 영. God's sperm, 요일3:9)라고 불렀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씨'(모든 크리스천)가 거룩한가요? 결코 아닙니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씨'는, 거룩하지 않고 상기의 배교행위를 해오고 있습니다. 명칭이 '하나님의 씨'이지만, 거룩하지 않습니다. '거룩'(히. kodesh, 헬. hagios, 영. holy, 구별)이란, '구별'이란 의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안된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중 소수 구별된 분들이 있었습니다. '남은자들'('그루터기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가 이들 소수 '남은자들'을, '거룩한(구별된) 씨'라 불렀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남은자'가 되려면, 이렇게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자신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니면, 아무리 크리스천이지만, '남은자'는 아닙니다. '거룩한 씨'는 아닙니다.

 

이 '거룩한 씨들'이 '구약과 신약 역사속에서', 소수였지만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기간 '대부분의 하나님의 자녀들'('대부분의 하나님의 씨', 요일3:9)이 창조목적에 위배행위를 해왔습니다. 배교행위를 자행해 왔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소수의 '거룩한 씨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남은자들' 입니다. '그루터기들' 입니다. 이들이 배교행위를 해오고 있는 전체 기독교인들을, '소생케 하는 일'을 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입니다. 아니면 이 배교자들 모두가 망하게 됩니다(사1:9).

 

이 '소생케 하는 책임을 가진 남은 자들'에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화 작업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요? '예수님의 전인적 구원'(사53:5)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이 '예수님의 전인적 구원'을 "생각하며, 기억하며, 묵상하게 하십니다"(시1:2; 엡3:20; 빌1:3).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찔리심과 저주(징계) 받으심과, 자존심 상처 받으심과 채찍 맞으심에 대한 내용입니다"(사53:5). 이렇게 할 때, 우리가 조금씩 서서히 성화되도록 이끄심 받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순수(pure) 해지도록 도움 주십니다. 영안이 조금씩 밝아지게 도움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저 세상, 이 세상, 저 세상)를 볼 수 있게 도움 주십니다(마5:3,8,10). 신기한 기적입니다.

 

시각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세계관의 변화, 이 세상관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물질관의 변화, 성공관의 변화, 가정관의 변화, 출세관의 변화, 직업관의 변화, 자녀관의 변화, 교회관의 변화, 사회관의 변화, 산고관의 변화, 건강관의 변화, 장수관의 변화, 인간관의 변화, 창조목적관의 변화, 하나님의 나라관의 변화 등, 인생의 전반적 분야에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변화를 감지하게 됩니다. 기적입니다. 자신이 조금씩, 전천후 독수리 시각자로 변모됨을 감지하게 됩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어떻게 자신이 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우리 주변분들이 말합니다. "당신이 변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변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삶의 우선 순위를 바꾸게 됩니다(마6:33). 이것을 주변에서 감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모델'(빌2:5-11)의 삶으로 조금씩, 서서히 인도 받습니다.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인 자신이 "남은자의 반열로, 그루터기의 반열로, 거룩한 씨의 반열로 조금씩, 서서히 이끌려 가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절대로 자신의 의지로는 안됩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남은자 신학'을 디자인하셨나요? 왜 하나님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동등(equal)하게 디자인하지 않으시고, 계층으로 구별시키셨나요?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성경적 대답이 무엇인가요? 이는 하나님 나라가 계층사회이기 때문입니다(마5:19,18:1,23:12; 눅19:11-27; 고전15:41; 딤후2:20-21).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대하12:6) 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나에 따라, 저 세상에서 우리의 직급(계급)을 설정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 바로 '자신의 신붓감들'(계19:7-10) 입니다. 이들에게 천년왕국에서 통치권을 주십니다(계20:4,6). 그후 신천신지에서도 통치권을 주십니다(계21:24,22:5). 이들이 바로 예수님의 창조목적 파트너들입니다(창1:28). 이들이 바로 '남은자들' 입니다. '예수님의 모델'(빌2:5-11)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소생'케 하는 일'(부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영광(통치권) 받는 자들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 이 '소생'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일본과 NK 섬김의 기회입니다. 문제는 아무나 이들을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남은자 반열'에 들어와야만 합니다. 아니면 우리의 섬김에 열매가 없습니다.

 

이 반열에 들어오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요구되나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이 은혜 받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NK 선교를 하면서 말입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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