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원죄(original sin)와 저주(curse)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사53:5). 누가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습니까? 예수님 이십니다. 삼위하나님 중 제2위 되시는 분입니다. 이분이 우리의 구원자(the Savior, 마1:21) 이십니다. 유일한 구원자 이십니다. 타종교에는 이런 구원자가 없습니다(행4:12). 종교다원주의는 허구입니다(마24:23-28). 재림전에 반드시(헬. dei, 영. must, 마24:6) 일어나야 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입니다. 재림전 산고(헬. odinon, 영. birth pains, 마24:8) 중 하나입니다.
이 유일한 구원자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원죄에서 해방시키셨나요? 그가 찔림(pierce)으로 입니다.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사53:5). 어디에 찔리셨습니까? 손과 발과 옆구리입니다. 실제 그가 십자가에서 손과 발에 못박히어 찔림(pierce) 받으셨습니다(마27:35). 손과 발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창(spear)으로 옆구리에 찔림(pierce) 받으셨습니다. 이때 피와 물이 나왔습니다(요19:34). 요한이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물과 피를 흘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요일5:6) 라고 했습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만이 원죄를 사함 할 수 있다"(롬5:9; 엡1:9; 히9:22) 라고 했습니다.
왜 피가 이렇게 중요한가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레17:11). 모든 피 중에 예수님의 피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의 피에만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피만이 생수(living water, 요4:10) 이며, 참된 음료(요6:55) 이며, 언약의 피(마26:28; 히9:20) 이며, 새 언약의 피(눅22:20; 고전11:25) 이며, 이 피를 마셔야만 영생을 가질 수 있단다(요6:53-54)" 라고 천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를 마시지 않은 자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과 예수님의 피는 직결되어 있습니다. 영생 받으려면, 반드시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피'를 어떻게 마실 수 있나요? 2천년 전에 흘리신 피인데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피를 마실 수 있나요? 바울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이 순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엡2:8-9).” 조건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자만입니다(롬1:7; 엡2:8-9). 이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아닙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단순히 의지적으로 이성적으로 감정적으로 이분을 '믿는다'라는 추상적 고백인가요? 아니면 성서적 어떤 구체적 고백이 있나요? 예 있습니다. 그러면 그 고백이 무엇인가요? '구원자 예수님의 정체성을 믿는 고백' 입니다.
그 정체성 고백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음의 여섯(6) 가지 고백입니다. (1) 구원자 예수님이 삼위하나님 중, 2위 하나님이시다. (2) 이분이 신성을 완전히 비우시고, 100% 인간이 되셨다(빌2:7). (3) 이분이 물과 피로 이세상에 오시기로 디자인된 분이다(요일5:6). (4) 이 디자인대로 이분이 손과 발과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셨다(마27:35; 요19:34). (5) 그래서 이분이 우리의 '구원자'(the Savior, 마1:21)가 되셨다. (6) 또한 이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저주'를 떠받으시고(사53:5; 마27:46), 우리의 '대속자'(the Redeemer, 롬3:24)와 우리의 '화목자'(the Peace Maker, 롬3:25; 요일2:2)가 되셨다" 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 '구원론'(the Doctrine of Salvation)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보혈을 먹는 자' 입니다. 그러면 그의 배에 '생수의 강'(성령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요7:38-39). '구원받은 자의 증거' 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세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고백을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소수의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만 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마7:13-14; 계20:11-12). 왜 소수만 입니까? 이는 예수님이 이들에게 '특별 은혜'('하나님 자녀 되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롬1:7; 엡2:8-9; 계22:21).
이 고백을 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놀랍게도 '전지하신 예수님'(Omniscient Jesus, 히4:13)이, 이들이 모태에서 형성되기 전 이들을 미리 아셨고, 장차 이들이 이런 고백할 것도 미리 아셨습니다(foreknew, 렘1:5; 롬8:29, 과거형). 또한 이런 이들을 예정하셨고(predestined), 부르셨고(called), 의롭게 하셨고(justified), 영화롭게 하셨습니다(glorified, 롬8:29-30). '예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Jesus, 롬9:6-23)에 의해서 입니다. 이 사실을 인간이 자신의 작은 머리로 결코 소화할 수 없습니다. 한때 바울도 이에 반기를 들다가(롬9:3), 예수님 앞에 바짝 무릎 꿇고 두손 들었습니다(롬9:6-23).
우리는 감사하게도 이 '특별 은혜'(하나님의 자녀된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히11:13; 벧전2:11). 그러면 우리의 '본향'은 어디입니까? '저 세상' 입니다(히11:14,16). 예수님이 이 '저 세상'을 다양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윗 세상'(요8:23), '영원한 세상'(요3:16), '사망, 고통, 곡, 아픔 없는 세상'(계21:4), '아버지의 집'(요14:2), '낙원'(눅23:43: 고전12:4), '삼층천'(고후12:2) 등 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무엇입니까? 열(10) 가지로 표현됩니다. (1) 물질 세상, (2) 시간 세상, (3) 때가 되면 형적이 다 없어지는 세상(고전7:31; 요일2:17: 계21:1), (4) 이 세상 것 모두 썩어지는 세상(벧후1:4), (5) 이 세상은 더러운 세상(벧후2:20), (6) 이 세상 행사는 다 악한 세상(요7:7), (7) 사탄이 이 세상 왕인 세상(요12:31), (8) 잠깐 지나가는 세상(요일2:17), (9) 그림자 같은 세상(대상29:15; 욥8:9; 시39:6), (10) 창조목적학교인 이 세상 등 입니다.
그러면 질문이 있습니다. 왜 이 세상을 '창조목적학교'로 디자인하셨나요?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교육시키기 위함 입니다. 이 학교에서 예수님이 교장이시고, 예수님이 사탄을 교감으로 임명하셨습니다(요12:31). 선한 천사들을 선한 교사로, 악한 천사들과 사탄의 자녀들을 악한 교사로 임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학교가 언제 개교 되었나요? 아담타락(주전4114) 때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7천년 마칠 때, 심판(계20:11-12)과 함께 폐교됩니다(계20:13-15). 사탄과 그 똘마니들과 사탄의 자녀들을 불못으로 던집니다(계20:10-15). 이 학교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됩니다. 그 후 '새하늘과 새땅'이 전개됩니다(계21-22). 이 세상 7천년은 영원에 비하면, 하나의 점(dot)입니다. 우리는 이 점 안에 있는 하나의 먼지(dust)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또 질문이 있습니다. 이 학교의 학생인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인가요? 그 대답은 이러합니다. (1) 이들은 예수님에 의해서, 원죄와 저주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2) 이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요15:19,17:14). (3) 이들은 이 세상에 잠깐 방문한 나그네들이며, 순례자들(학생들)입니다(히11:13; 벧전2:11). (4) 이들은 졸업 후(육이 죽은 후), 본향으로 귀환하는 자들입니다(히11:14,16).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영적성숙 과정에서 여섯(6)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단계가 이러합니다. (1) 영적 유아(헬. nepios, 영. infant, 고전3:1), (2) 영적 어린아이(헬. paidion, 영. child, 마18:2), (3) 영적 사춘기(헬. teknion, 영. adolescent, 요13:13), (4) 영적 청년(헬. neaniscos, 영. youth, 요일2:13), (5) 영적 아들(헬. huios, 영. son, 마5:9,45), (6) 영적 아버지(헬. pater, 영. father, 고전4:15) 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영적 성숙을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으로 발전하면서, 성숙의 열매를 맺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제자리걸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찌했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영적 수준을 가지고, 신분사회인 낙원(마5:19,23:11; 고전15:41; 딤후2:20-21)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직분(신분)을 부여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부여받은 직분(신분)을 가지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섬길 것입니다. 천국의 직분 사회는 이 세상 계층사회와 다릅니다. 사랑 공동체입니다. 상위 신분자가 사랑으로 하위 신분자를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 신분사회는 피라밋형 구조입니다. 하위 직분자들(일반 백성들)이 다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위로 올라갈수록 그 숫자가 점점 적어지는 사회 구조입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예수님이 직분 설정하실 때, 그 기준을 어디에 두실까? 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이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들(commandments)과 사명(commission)을 순서대로 신실하게 순종 여부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1) 수직계명(the vertical commandment, 출20:3-11; 마22:37-38)과, (2) 수평계명(the horizontal commandment, 출20:12-17; 마22:39)과, (3) 지상사명(the great commission, 마28:19-20; 행1:8)의 순서입니다. 순서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됩니다. 순서가 바뀌면 예수님께 기억됨이 없습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마7:15-27).
왜 순서가 중요한가요? 순서를 바꾸어 사역하다 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기 영광과 자기 욕심을 추구하게 되며,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보여주기식 외식자의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마6:1-18). 인간의 한계성과 나약성 때문입니다. AMI와 황용현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가 일본선교를 상기 순서에 맞추어 해야 합니다.
일본선교 그 자체가 최우선 되어서도 안됩니다. 경쟁과 다툼과 질투로 해서도 안됩니다. 이 세상 방법을 도입해서도 안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서도 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비전과 만족을 위해서도 안됩니다. 이는 우리의 수고가 헛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겸손히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이분의 명령에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우리는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잠9:10). 이런 지혜자가 곧 '신붓감들'(계19:7-10) 입니다. 천년왕국에서 통치자들입니다(계20:4,6). 신천신지에서 통치자들입니다(계21:24,22:5). 신천신지에서 예수님의 '창조목적 파트너들' 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신천신지에서 우주(무수한 별들 세계)를 정복(subdue)하며,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는(dominion over) 중책을 맡은 복받은 분들입니다(창1:28).
이들이야말로 정녕, 우주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창조목적에 순종하도록 가이드하며, 가르치며, 권면하며, 격려하며, 이끄는 사명자들입니다. 여호와(예수님)의 '창조목적 파트너들' 입니다. 영원한 파트너들입니다. '최우수 피조물들' 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들' 입니다. '복받은 분들' 입니다(창1:28). AMI 교회와 AMI 선교의 존재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황용현 목사의 여러분들을 향한 책임이 여기에 있습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