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장  

2024.03.19 09:45

황용현 칼럼 2024.03.16

조회 수 5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지난 주일에 우리가 빌립보서 1:12-19을 공부했습니다. "일본을 향한 신실한 징검다리들"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징검다리들'이란 누구를 이야기합니까?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디아스포라들'(diasporas)을 지칭합니다. 다시 말해 재일 교포들, 유학생들, 회사 주재원들, 사업가들, 직장인들,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어느정도 구사하며, 일본문화에 익숙한 분들입니다.

 

이 '징검다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두(2) 문화권을 중간에서 연결하는 분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일본인들'(로마제국의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복음화 하는데 사용 받는 분들입니다. 일본(로마제국)의 '미교회 지역에 가정교회'를 세우는데 사용 받는 분들입니다.

 

로마제국 복음화를 위해, 바울에게 두(2) 부류의 '징검다리들'을 허락했습니다. (1)'로마로 파송한 제자 선교사들'(롬16:1-20, 30여명, 두라노서원 출신들, 행19:9, 주후53-55)과 (2) 바울이 개척한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두 문화와 언어를 아는 분들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도 두(2) 문화와 언어를 소유했던 '징검다리들' 이었습니다.

 

이방인 선교에는 '징검다리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로마제국에 살고 있는, '예정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바울이 이 '징검다리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역자들입니다. 이들의 역할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AMI도 일본 선교에 있어, 이 '사도행전의 모델'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일본 디아스포라들'(징검다리들)에게, 일본 복음화를 위해, 우리가 이 '사도행전의 모델'을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들과의 동역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습니다. 어떻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오늘 본문에서 시사해줍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이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로마에서 복음전하는 자신의 제자들(디아스포라들, 징검다리들)의 모습을 언급했습니다. 이중 두(2) 부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1) 첫째 부류가 '착한 뜻'('선한 뜻, good will, good motive)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분들(빌1:15)입니다. 참(in truth, 진실로)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분들입니다(빌1:18).

 

반면 두번째 구룹입니다. 이와 정반대의 동기(motive)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제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것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빌1:17). 이들이 바로 (2) '질투'(envy)와 '다툼'(strife, rivalry, 경쟁, 빌1:15)으로, 순전치 못하게(selfish ambition, not sincerely, 빌1:17)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분들입니다. 외모로(in pretense, false motive, 빌1:18)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이렇게 로마에 자신의 제자들 중, 두(2) 상반된 구룹이 있다는 사실을 빌립보 교회에 알려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울의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던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rejoice) 또한 기뻐하리라(will rejoice)"(빌1:18) 입니다. 바울이 복음 전하는데 있어, '과정'(process)이나 '동기'(motive)를 무시하는 듯한 언급입니다. 상당히 혼돈스럽습니다. 바울이 '타협주의자'처럼 보입니다.

 

크리스천들의 질투와 다툼과 분열에 '타협주의적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같은 '빌립보서'에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다투지 말고 하나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빌2:1-4,4:2). 그의 다른 모든 서신들에서도 다투지 말고 하나되어야 함을 항상 강조합니다(고전1:10; 엡4:1-10).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이런 '타협주의적 언급'을 오늘 본문에서 했을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제 생각입니다. 바울이 결코 '타협주의자'가 아님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면 왜 그가 이런 '타협주의적 언급'을 했을까요? 저의 생각입니다.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를 향한 '교육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도 이런 두(2) 부류의 감독들, 집사들, 성도들(빌1:1)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언급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회시대 전반에도,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일본교회에도, 일본 디아스포라들 사이에도, 우리들 사이에서도, 이런 두(2) 부류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예언적으로 언급케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이 말씀하시면서, '구원'(salvation, 빌1:19)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성경에는 이 단어가 여러 의미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1) '영생적 구원'과, (2) '상급적 구원'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언급한 이 '구원'의 표현은 포괄적으로, 이 두(2)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생적 구원'이 천국행 구원입니다. 착한 뜻과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참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분은 '영생적 구원'을 받습니다. 이와 함께 '상급적 구원'도 뒤따라옵니다. 예수님의 신부로 임명 받습니다(계19:7-10). 천년왕국때 왕권을 부여 받습니다(계20:4-6). 신천 신지에서도 왕권을 부여 받습니다(계21:24, 22:5). 이들이야말로 '의의 열매'로 가득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리는, '창조목적에 부합된 행위를 하는 분들'입니다(빌1:11).

 

반면 이 '창조목적'에 어긋난 행위 하면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영광, 욕심, 비전 성취를 위해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두(2) 주인(재물과 하나님, 마6:24)을 섬깁니다. 외식하며 나팔 붑니다(마6:1-18).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인정받기를 기대하며 목회합니다. 자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선교합니다. 가르칩니다. 긍률 사역합니다. 설교합니다. 부흥회 합니다. 세미나 합니다. 음악 사역합니다. 찬양 사역합니다.

 

'가시적 이 세상만' 바라보는(고후4:18) 사역자입니다. 영적 유아(헬. nepios, 고전3:1; 갈4:1)와 영적 어린아이(헬. Paidion, 마18:2; 요일2:18)입니다. 두더지, 병아리, 참새 시각자 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부류의 크리스천이 전체 크리스천의 70-80%라 합니다. 놀라운 비율입니다. 교회가 시끄럽고 세속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분들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나요? 이들의 성품과 인격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사역 동기와 사역 모습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사역 열매를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분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열심히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런데 질투가 많습니다. 협조하지 않고 다투며 경쟁합니다. 잘되는 분을 보고 배 아파하며 깎아 내립니다. 이간질하며 분리하는 일을 합니다. 심지어 상대방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기도 합니다. 한국 교회만이 아닙니다. 세계교회 안에서 이런 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이 부족해서 입니다. 그 결과 창조목적에 위배행위를 서슴치 않고 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창조목적 위배행위를 아주 심하게 할 경우입니다. 이런 분은 제아무리 그리스도를 많이 전해도, 구원이 무효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출32:32-33; 왕상18:40; 시69:28; 마24:23-28; 고전9:27, 10:1-15; 롬9:3; 히3:17-18, 6:4-6; 계3:1-6). 창조목적에 심하게 위배했을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이런 분에게 '영생적 구원'이 상실될 수 있다고 성경이 가르칩니다.

 

일부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의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요10:28) 가르침을 굳게 믿고, '구원 상실'을 믿지 않습니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으로 믿습니다. 저는 칼빈주의를 우선시 하지만, 그 안에 알미니안주의도 공존한다고 믿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의 저서들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한편 이런 분들 중, 구원이 무효 되지는 않지만, 상급이 무효 되거나 적어질 수 있습니다. '상급적 구원' 이슈입니다. 상급은 천국에서 '신분 계층'과 연관됩니다. 천국이 '신분 계층사회' 입니다(마5:19, 18:1, 23:11; 고전15:41; 딤후2:20-21).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바울이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로마의 자신의 제자 사역자들 중, 두(2) 부류가 있다고 빌립보 교회(디아스포라들)에게 언급했는가요? 이 말씀이 오늘날 일본 선교를 하는, '우리 AMI'와 '일본 디아스포라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나요?” 이는 '우리 AMI 팀'과 '일본 디아스포라 팀' 중에도, 이런 두(2)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바울이 제시했습니다. "지식으로 더욱 더욱 풍성해지면 된단다. 적당히 수박 컽핥기식 지식이 아니란다. 확실히 깨닫는 지식(epignosis) 이란다. 그러면 총명이 더욱 더욱 풍성해지며, 분별력이 커지며, 의의 열매들로 가득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이 되는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단다"(빌1:9-11).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으로 더욱 더욱 풍성(abound more and more) 해야 합니다. 이 '지식'이 곧 요한이 먹었던 '작은 책'(계10:10)이며, 다시 말해 삼위일체론/기독론, 하나님 나라론, 종말론입니다. 우리는 이 '지식'을 '일본 디아스포라들'에게 전수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일본 팀들'에게 전수시킬 수 있습니다(딤후2:2).

 

이 '지식'으로 풍성한 크리스천은, 결코 '질투'와 '다툼'을 하지 않습니다. '이간질'과 '분리 행위' 하지 않습니다. '외모'로 '보여주기 식'으로, '자신의 영광과 욕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어 'Ami Bible Academy'(ABA) 공부와, 한국어/일본어 'Ami Japan Bible Academy' 공부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황 용 현 목사

unnamed-48.png

 

?

  1. 황용현 칼럼 2024.07.12

    Date2024.07.12 Views16
    Read More
  2. 황용현 칼럼 2024.07.05

    Date2024.07.08 Views10
    Read More
  3. 황용현 칼럼 2024.06.28

    Date2024.06.28 Views30
    Read More
  4. 황용현 칼럼 2024.06.21

    Date2024.06.21 Views32
    Read More
  5. 황용현 칼럼 2024.06.14

    Date2024.06.14 Views26
    Read More
  6. 황용현 칼럼 2024.06.07

    Date2024.06.07 Views30
    Read More
  7. 황용현 칼럼 2024.06.01

    Date2024.06.03 Views19
    Read More
  8. 황용현 칼럼 2024.05.24

    Date2024.06.03 Views21
    Read More
  9. 황용현 칼럼 2024.05.17

    Date2024.05.17 Views84
    Read More
  10. 황용현 칼럼 2024.05.10

    Date2024.05.10 Views59
    Read More
  11. 황용현 칼럼 2024.05.03

    Date2024.05.03 Views58
    Read More
  12. 황용현 칼럼 2024.04.26

    Date2024.04.26 Views48
    Read More
  13. 황용현 칼럼 2024.04.20

    Date2024.04.22 Views38
    Read More
  14. 황용현 칼럼 2024.04.12

    Date2024.04.12 Views70
    Read More
  15. 황용현 칼럼 2024.04.05

    Date2024.04.08 Views37
    Read More
  16. 황용현 칼럼 2024.03.29

    Date2024.04.01 Views31
    Read More
  17. 황용현 칼럼 2024.03.23

    Date2024.04.01 Views44
    Read More
  18. 황용현 칼럼 2024.03.16

    Date2024.03.19 Views50
    Read More
  19. 황용현 칼럼 2024.03.08

    Date2024.03.12 Views31
    Read More
  20. 황용현 칼럼 2024.03.01

    Date2024.03.05 Views3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