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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15 08:29

황용현 칼럼 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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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 "바울과 루디아의 만남"(행16:6-15)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바울의 2차 선교여행(행15:36-18:22, 주후50-52) 중반 때(주후51)였습니다. 그가 제1차 선교여행(행13:4-14:28, 주후46-48)을 마치고 안디옥에 귀환했습니다. 2년후, 그가 안디옥에서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때 함께한 동역자들이 이러합니다. 누가, 디모데, 실라, 디도였습니다. 바나바와 마가는 이들에 합류하지 않고 따로 구브로로 떠났습니다(행15:39).

 

제2차 선교여행의 시작입니다. 바울팀이 안디옥에서 출발,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경유하여, 더베와 루스트라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디모데를 합류시켰습니다(행15:40-16:5). 그후 이들이 부르기아와 갈라디아를 거쳐 아시아에 도착하였습니다(행16:6). 아시아에서 8교회들(골로새 교회 포함)을 개척하였습니다(계2-3). 열심히 말씀 전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더이상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에 이들이 무시아로 해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것도 성령님(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무시아(Mysia)를 지나서 트로아(Troas)에 도착했습니다. 그 밤에 바울에게 '마게도니안 환상'(Macedonian vision)이 나타났습니다. 한 마게도니아 사람이, 바울에게 간청합니다.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 입니다(행16:6-9).

 

이 환상을 본 뒤, 바울팀이 즉시(immediately) 마게도니아로 떠나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위해, 자신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행16:10). 그래서 바울팀이 트로아(Troas)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Samothracia)를 거쳐, 항구도시 네압볼리(Neapolis)에 도착했습니다(뱃길 약180-185km, 행16:11).

 

이들이 이 항구도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계속하여 내륙으로 여행했습니다. 여기에서 내륙으로 약 15km에 있는 빌립보(Philippi)에 도착했습니다(행16:12). 이 도시는 특별한 도시였습니다.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 성(the chief city, the leading city)이며, 로마 식민지(a colony) 였습니다(행16:12). '작은 로마'(a little Rome)로 알려진 도시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은퇴한 장군들과 고급 공무원들이 집중 거주하는 도시였습니다. 성령님이 바울팀을 이 로마 고급 군인과 고급 공무원의 은퇴 도시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바울팀이 예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이 도시에 유대인들이 거의 없기에, 유대인 회당이 없었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라, 회당이 없는 경우, 강가나 해변에서 안식일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요세푸스의 고대기 XIV X.23). 바울팀이 성밖에 있는 '간기테스 강'(Gangites River)으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안식일 지키러 온 유대인 여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유독 한 여인이 바울의 말에 집중하여 듣고 있었습니다. 다른 여인들은 무반응이었습니다. 이 바울의 말에 집중했던 여인이 바로 루디아(Lydia)입니다. 이 여인이 똑똑하거나 잘나서가 아닙니다. 이 장면을 기록한 누가(Luke)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시니라"(행16:14).

 

예수님의 은혜 받은 여인입니다. 같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유대교를 믿는)이지만, 다른 여인들과 달랐습니다. 이 여인은 평소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worshiper of God) 였습니다(행16:14). 1세기때, 이미 예정된 'Messianic Jews'의 일원이었습니다. 창세 전에 이미 디자인된 '그리스도의 신비'(엡3:4; 신32:20-21; 시6:9-10; 사29:10; 롬11:8-9)의 일환에 속한 인물이었습니다.

 

1세기때, 다른 다수 유대인들은 눈이 감기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디자인되었지만, 소수 유대인들(12제자들과 그 팀들, 예루살렘교회 교인들, 바울 팀들)은 눈뜨게 디자인하셨습니다. 이들이 바로 1세기 Messianic Jews입니다. 루디아가 이 구룹에 속한 인물입니다. 하나님의 때(kairos, 전3:1)에, 그녀를 바울팀과 빌립보에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녀를 Messianic Jew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의 디자인입니다.

 

이 디자인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그녀의 마음을 열게 하여 복음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집안 식구들(her household)이 강가에서 세례받게 하셨습니다. 바울팀에게 강권했습니다.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행16:15). 이 여인의 강권으로, 바울팀이 루디아의 집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유럽의 첫 교회가, 이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루디아의 집이 무척 컸던 모양입니다.

 

루디아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아시아의 '두아디라성' 출신입니다. 이곳에서 남편과 함께 '자주색(purple) 옷감'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입니다(행16:14). '자주색 옷감'은 황제를 포함한 고위층들만 입는 옷감입니다. 평민들이 입는 옷감이 아닙니다. 그녀가 빌립보의 고위층 마케팅을 위해 빌립보에 지사를 차리고, 지사장으로 상주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남편은 두아디라 본사에 있고, 루디아는 빌립보에 가족을 데리고 있었나 봅니다.

 

바울팀에게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이 기도 처소로 가는 도중에, 귀신들린 점치는 여인을 개종시키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여인의 주인이 화가 났습니다. 돈벌이가 끊겼습니다. 관원들에게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투옥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진을 일으키셨습니다. 옥문이 열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간수와 그 가족이 세례 받았습니다(행16:16-34). 그후 개종된 모든 분들이, 계속해서 루디아 집에서 예배와 말씀훈련 받을 수 있었습니다(행16:40).

 

바울이 빌립보를 떠난 후, 분명 루디아는 여러 고위급 로마인들을 복음화 시켰으리라 봅니다. 이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만찬을 하며 성경을 가르치며 제자화 했으리라 봅니다. 바울에게 이 사실을 정규적으로 보고 했으리라 봅니다. 바울이 자신의 팀들을 그녀에게 보내어, 정규적으로 말씀훈련 시켰으리라 봅니다.

 

말씀훈련 하면서, 바울팀들이 그녀에게 바울의 1차와 2차 선교 이야기를 했으리라 봅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아시아 교회들에 대해서도 말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겪고 있는 재정적 문제들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전개될 유럽 교회들(데살로니가, 베레아, 아테네, 고린도, 겐그레아, 로마)개척과 재정지원에 대해서도 논의했었을 것입니다.

 

성령님이 그녀에게 감동 주셨습니다. 이 로마제국 복음화에 바울팀의 재정 후원자가 되기로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실행에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바울이 이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아, 나의 선교사역에 물질로 동역한 교회는 너희 밖에 없단다"(빌4:15-18, 주후60-62).

 

그런데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왜 바울이 루디아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빌립보 교인들을 거론했나요? 신기하게도 바울이 루디아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도움을 받은 분인데 말입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하면서도, 바울이 루디아의 이름을 한번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모든 서신들에도 루디아의 이름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누가가 두(2)번 루디아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바울팀이 처음 빌립보에 들어갔을 때입니다(행16:14,40). 그후 성경에 루디아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몇가지로 추론합니다. (1) 그녀가 빌립보 교회 개척한 후, 일찍 죽었나? (2) 아니면, 개척 후 즉시 고향으로 귀향했나? (3) 아니면, 기독교 포기하고 유대교로 귀환했나? (4) 아니면, 바울팀들과 불편한 관계가 있었나? (5) 아니면, 바울의 여성관(남성 우월주의) 때문인가?

 

우리가 자칫 바울이 '남성 우월주의자'로 오해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주후55)에서 발견됩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다"(고전11:3).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창조되었다"(고전11:9). "너희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조용하게 하라. 그들이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하였으니, 율법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다만 복종할지니라"(고전14:34). 또한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딤전2:12).

 

얼핏 보면 바울이 '남성 우월주의자'로 보입니다. 그래서 루디아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결코 '남성 우월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인, "남녀가 한 몸이란 가르침"(막10:6-9)을 믿고, 실제 남녀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임을 가르친 분(갈3:28)입니다. 상기 고린도 교회와 에베소 교회에 보낸 내용은 여성 비하 메시지가 아닙니다. 당시 이 교회 안에 있었던 목소리 높은 여성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였을 뿐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독수리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어느 한 부분만 보고 성경을 전체인양 해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기록케 하셨습니다(사28:13). 모든 성경 말씀에 짝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사34:16). 두더지, 병아리, 참새 시각으로 이 모든 흩어진 짝들을 찾을 수 없습니다. 퍼즐을 모두 맞출 수 없습니다. 큰 그림인 독수리 시각을 가져야만, 퍼즐의 짝을 높은 위치에서 보며, 맞출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독수리 시각으로 보라고, 여기 저기에 기록하시고, 짝을 찾게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독수리 시각으로 볼 때, 예수님께서 여성들을 귀히 사용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예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이 창조목적 위배행위를 자주 했습니다. 이로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을 민족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드보라'(삿5:1-31, 주전1200)와 '에스더'(에5-10, 주전450) 입니다.

 

예수님도 여성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신실한 여인들의 수종을 받으며 공생애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공생애 기간, 마리아의 집이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임의 장소였습니다. 최후의 만찬도 이 집에서 하셨습니다(요13-17). 십자가 지실 때도, 부활하실 때도, 격려와 수종을 담당했던 분들이 바로 여성들이었습니다.

 

교회사에서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도 마리아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행2:1, 주후30). 유럽의 첫 교회인 빌립보 교회도 루디아의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행16:15,40, 주후51).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밀라노 칙령, 주후313)하게 된 것도, 콘스탄틴 1세의 어머니 Helena 때문입니다. 러시아 정교회가 블라디미르 황제에 의해, 러시아의 공식 종교가 된 것(주후988)도, Olga(주후955,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 정교회에서 세례 받음, 블라디미르 황제의 할머니)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루디아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바울팀의 Asia지역 선교와 Europe지역 선교의 key partner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경에서 이 여인의 이름을 숨겨 놓으셨습니다. 바울 서신 어디에도 이 여인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질문이 있습니다. 바울이 '여성 비하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바울이 루디아의 이름을 전혀 거론하지 않았는가요? 아무리 눈을 비비고 바울 서신들을 보아도, 루디아의 이름이 없습니다. 바울의 입장에서는 이 여인이 가장 고마운 분인데 말입니다.

 

황 목사의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 대해 일체 언급 못하게, 바울에게 지시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모델'('예수님의 마음', 빌2:5-11)을 우리의 눈높이로 상황화(contextualizing)하여 보여주시기 위함 입니다. 다시 말해 "죽음+부활 = 영광" 모델입니다.

 

'죽음'이 바로 '루디아의 숨김' 입니다. '루디아의 죽음' 입니다. '부활'이 바로 '바울의 나타남' 입니다. 'Asia와 Europe 지역의 살아남' 입니다. '영광'이 바로 '루디아의 높임 받음' 입니다.

 

'복음 연극무대'로 비유합니다. '죽음'이 곧 '무명 후원자'(루디아)입니다. 이분의 이름이 연극 프로그램의 후원자 명단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부활'은 누구인가요? 주연배우인 바울과 조연배우들, 연출가, 조명, 카메라맨, 아나운서들입니다. 이들의 이름이 프로그램에 적혀 있습니다. 이들이 살아납니다. '영광'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이 '무명 후원자'(루디아)를 높이십니다.

 

우리가 이 '바울과 루디아의 만남 model'에서 무엇을 깨닫게 되나요? '생명 살리는 원칙'(요12:24) 입니다. 아하! 우리 'AMI Team들이, '루디아' 였구나!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AMI Mission에 동참해 왔구나! 숨어서 미전도족속 복음화에 직접 간접으로(물질과 기도로) 참여해 왔구나! '죽은 한 알의 밀알’이었구나!

 

이로서 사역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전임 사역자들을 '부활시켜 드리는 일'(힘 주는, 격려해 드리는, 안위해 드리는)을 해왔구나! 낙원에서 상급(영광)이 기다리고 있겠구나! 아하! 이것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 였구나! 예수님의 철저한 디자인 속에서 였구나! 예수님의 크신 은혜였구나!

 

바울과 루디아의 만남이 결코 우연의 만남이 아니듯이, 여러분들과 저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디자인된 만남입니다. 재림전 미전도족속 복음화 파트너 만남입니다. '영광'(상급)을 향한 만남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의 푯대를 향해 좇아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일(1)주 후에 있을, 일본 세미나(미전도족속 세미나)도 허락하셨습니다. 일본이 미전도 국가입니다. 무교회 지역이 전국에 깔려 있습니다.

 

일본을 향한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세미나 참석자들이, 무교회 지역에 가정교회를 개척케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모델'을 따르는 분들을 만들어내는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 이 푯대를 향해 함께 좇아갑시다. 예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고,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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