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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5 07:46

황용현 칼럼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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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예배에서 제가 빌립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모델'에 대해서 입니다. 이 모델이 바로 '죽음+부활= 영광 model' 입니다(빌2:5-11). 바울이 이것을 '예수님의 마음'(the mind of Jesus, 빌2:5)) 또는 '생명의 말씀'(the word of life, 빌2:16)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the excellency of the knowledge of Christ Jesus, 빌3:8)이라 했습니다.

 

바울의 이 '예수님의 모델'에 관한 이야기가 바로 '빌립보서의 주제'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라고 외치는 내용이 담긴 책이 바로 '빌립보서' 입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그리스도를 상식적으로 아는 차원이 아닙니다. '독수리 시각적 차원' 입니다. '죽음'(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 하나님의 신비, 창세전)+'부활'(부활론)= '영광'(상급론, 낙원론, 새하늘과 새땅론)입니다. 단편적 지식 모델이 아닙니다. 종합적 역동적 고차원적 지식 모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에 대해, 이런 고차원적 지식을 가질 수 있나요?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에 임해야 합니다(빌4:23). 이것 없이는 안됩니다. 아는 것 같아도 무지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잘 발동하여 노력하여,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공부한 것 같지만, 은혜 없이는 안됩니다(전7:20; 사64:6; 롬3:20; 딛3:5). 이 사실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롬3:20; 딛3:5). 아하! 자신의 노력으로는 안되는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하구나! 였습니다.

 

바울이 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 받은 바울에게, 지식(knowledge)과 총명(the depth of insight)을 더욱 더욱(more and more) 풍성하게 채우셨습니다(빌1:9).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이 이렇게 이끄셨습니다. 자신이 자랑했던, 이 세상 '육신의 자랑거리들'을 재조명하게 했습니다. 그가 이것들을 한낮 '배설물'(dung)로 여기게 되었습니다(빌3:8).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ure, 고후5:17)임을 발견했습니다. 상기 '예수님의 모델'(죽음+부활= 영광)이 보배(treasure)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이 '보배를 질그릇(earthen vessels)에 가진 자'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고후4:7).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 은혜를 받으니(고후13:13; 빌4:23), 이렇게 그에게서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AMI 공동체에, 바울처럼 가치관의 변화 받은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바울이 예전에 가졌던 '육신의 자랑거리들'이 이러했습니다. 그는 유명한 교육도시 길리기아 성의 다소에서 태어났습니다(행22:3). 부유하고 교육열이 강한 부모님에 의해, 그는 예루살렘 유학생활을 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곳에서 당대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에게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철저히 교육받았습니다(행22:3).

 

이로서 그는 히브리인 중 '엘리트 히브리인'이 되었습니다(행22:2-3; 갈1:14). 게다가 그는 12지파 중, 예루살렘 최근교에 위치한 귀족 지파인,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습니다(빌3:5). 또한 그는 아브라함의 언약에 따라(창17:12), 태어나서 8일만에 할례를 받은, 토종 이스라엘인 이었습니다(빌3:5).

 

뿐만 아니라 율법에 의하면, 그는 바리새인이며, 흠이 없었으며,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분이었습니다(빌3:6). 앞장서서 스테반을 순교 시키는데 가담했고(행7:54-60), 그후 예루살렘 교회를 흩뜨려 버리는데도 선봉장이었습니다(행8:1-3).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그는 죄인 중의 괴수이며, 혐오 대상입니다. 그러나 유대인 입장에서는 그는 엘리트 중 엘리트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바울에게는 '육신의 자랑거리들' 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행9:1-9, 주후35).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입니다. 그가 '모태 형성 전에 받았던 은혜'(렘1:5; 갈1:15)가 현실화 되었습니다. 이 은혜에 따라, 그를 '예수님의 모델'(빌2:5-11)을 좇는 자가 되도록, 강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개종(주후35) 후 20년동안, 그에게 '죽음과 부활' 훈련을 모질게 시키셨습니다. 그 힘든 과정을 그가 고린도 교회에 간증했습니다(고후11:23-27, 주후55).

 

그후에도 계속 강훈련을 받아왔습니다. 때가 되어(전3:1), 빌립보서를 집필하게 했습니다(주후60-62). 이때에 그가 비로서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개종 후 25여년간 받아온 강훈련이, 바로 이 '예수님의 모델'(죽음+부활= 영광)을 좇아가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비로서 이 '예수님의 모델'(죽음+부활= 영광, 빌2:5-11)을 빌립보서를 집필하면서, 체계적으로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체계화하여 '예수님의 모델'을 기록된 곳이 빌립보서 뿐입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이런 체계화된 '예수님의 모델'이 왜 필요합니까? 단순히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데 말입니다(요3:16; 행16:31). 예 맞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모델'를 체계적으로 알아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바로 앞으로 전개될 교회시대의 '예수님의 신붓감들' 입니다. 이들을 위해서 입니다. 일반 성도들을 위함이 아닙니다.

 

일반성도들은 이 '예수님의 모델'을 따를 수 없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이 세상에서 '병아리 시각'이나 '참새 시각'으로 살다가 낙원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디자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디자인임을 알 수 있나요?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녀들의 삶을 통해, 그림자(shadow)/본보기(example, 고전10:6)로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천년 교회시대에 살았던, 지금도 살고 있는 일반교인들의 삶을 보면 이를 증명해 줍니다.

 

이들은 착한 일을 많이 하지만(빌1:6), 시각이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자기 만족으로 착한 일을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안 합니다(빌2:3). 다툼과 허영(vain glory, 헛된 영광)으로 합니다(빌2:2-3). 원망과 시비로 합니다(빌2:14).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의 일들을 구하지 않습니다(빌2:21).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고,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합니다(빌3:3). 감사하지 않고, 염려가 많고, 평강이 없습니다(빌4:6-7).

 

이런 일반성도들은, 상기의 '예수님의 모델'(빌2:5-11)을 아무리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마13:13). 예수님이 이 디자인을 `천국의 신비'라 하셨습니다(마13:11). 아마도 이들이 천국에 올라가서야 어느정도 깨닫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고전13:12).

 

그러나 '예수님의 신붓감'은 다릅니다. 빌립보서에서 성령님이 바울에게, 이 '신붓감 후보생들'의 모습과 영성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세(3) 분입니다. (1) 바울 자신(빌2:20-30), (2) 디모데(빌2:19-24), (3) 에바브로디도(빌2:25-30) 입니다. 이들이 이 '예수님의 모델' 범주에 들어온 분들이라고 바울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들 모두가 이 모델을 온전히 잡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바울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잡지 못함을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내가 예수께 붙잡혀 있다. 그를 붙잡으려고 좇아갈 뿐이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 좇아갈 뿐이다"(빌3:11-14). 이 푯대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델'(죽음+부활= 영광, 빌2:5-11) 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의 모델'(죽음+부활= 영광)을 좇으려면, 최소한 '작은 책'(기독론, 하나님 나라론, 종말론)을 먹어야 합니다(계10:10-11). 그래야 '독수리 시각자'가 되어, 이 '예수님의 모델'을 좇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작은 독수리'는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 교회시대 전반을 볼 수 있는 시각과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짐작컨데, 바울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교회시대 전반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이 1세기 시대 인물들입니다. 교회시대 전반에 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이들이 종말시대에도 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아주 '제한된 작은 책'을 먹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이들이 순교까지 한 것을 보면, 특별한 은혜를 받은 분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분들은 나름대로 주어진 '제한된 작은 책'을 먹고, 이 '예수님의 모델'을 좇아가다가, 때가 되어 낙원으로 갔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깨달은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다가,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낙원으로 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과 다릅니다. '큰 독수리 시각자들' 입니다. '하나님 나라'(저세상, 이세상, 저세상)을 보는 자들입니다. 지식(knowledge)과 총명(the depth of insight)으로 풍성한 자들입니다(빌1:9). '작은 책'을 먹고 있는 자들입니다. 시대적으로 바울과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보다 더 많은 지식과 총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의 재림 징조들과 사명을 예언하신 '감람산 설교'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독수리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신비'(고전2:7; 롬16:25-26; 계10:7), '그리스도의 신비'(엡3:4), '천국의 신비'(마13:11), '불법의 신비'(살후2:7; 계12:3-4)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산다고 해서, 모든 크리스천이 다 이 신비들에 대해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바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9:6),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입니다.

 

지난 한 해에도 우리 모두가 이 '고귀한 부름의 상'을 위해 좇아왔습니다. 새해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이 '부름의 상'을 위해 좇아가야 하겠습니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부지런히 많이 심어야 하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우리가 '빌립보서 시리즈'를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후 '두 짐승' 시리즈를 계속 하겠습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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