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은사들'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대해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종종 이 부분에 대해 헷갈려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가르침이 분분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복음주의자이지만, 신학 배경에 따라 해석에 차이가 있습니다. 왜 다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이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성경적 답을 해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은사(헬. karisma, 영. grace, a free gift)는 성경에 약 30여 가지가 있지만, 이중 대표적 은사14가지를 바울이 고린도전서 12장(은사장)에 기록했습니다. (1) 지혜의 말씀 은사, (2) 지식의 말씀 은사, (3) 믿음 은사, (4) 병고치는 은사, (5) 능력 행하는 은사, (6) 예언하는 은사, (7) 영들 분별하는 은사, (8) 각종 방언을 말하는 은사, (9)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 (10) 사도 되는 은사, (11) 선지자 되는 은사, (12) 교사 되는 은사, (13) 돕는 자 되는 은사, (14) 다스리는 자 되는 은사 등입니다(고전12:8-10, 28). 사역자로 기름부음 받는(요일 2:20, 27) '주요 은사들'(key essential gifts)입니다.
이 모두가 한 성령님에 의해서, 이 성령님의 뜻대로 크리스천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고전12:4-6, 11). 한 분이 상기 30여 가지 은사들 다 받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뜻에 따라 각 사람에게 일부를 나누어 주십니다(고전12:11). 각 사람이라 했는데, 모든 크리스천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소수의 '신부 후보생들'에게 입니다. 이들에게 상기의 '주요 은사들'의 일부를 주십니다.
왜 '신부 후보생들'에게만 상기 은사들을 나누어 주시는가요? 이들이야말로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참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1) 수직계명, (2) 수평계명, (3) 지상사명에 순종하며 수행하도록 예정된 분들입니다. 이들이 이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위해 '성령님의 은사들'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는 이들이 주어진 사명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모든 ’신부 후보생'은 그 은혜의 분량, 은사의 분량,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롬12:3-8). 사명도 다릅니다. 이 '분량과 사명'에 따라 각자에게 '성령님의 은사들'이 주어집니다.
이 '성령님의 은사들'이 무료 선물(a free gift)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자신의 '의로움'이나 '선행'이나 '노력'에 의한 대가가 아닙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얻는 결과물도 아닙니다. 성령님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방적 무료 선물입니다(고전12:11).
이 무료 선물(은사)이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고 다양합니다. 최소한 30여 가지입니다. 바울이 이 다양함을 비유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을 몸(교회)으로, 그 몸(교회)에 많은 지체들(은사 소유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지체들을 바울이 발, 손, 귀, 눈으로 묘사했습니다. '발의 은사자', '손의 은사자', '귀의 은사자', '눈의 은사자'로 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원하신 대로 이 '지체들'(은사자들)을 자신의 몸(교회)에 두시고, 필요한 은사들을 나누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고전12:12-18).
한편 이 지체들(은사자들)에는 우열이 없다고 했습니다. 높고 낮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귀하고 덜 귀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시각에는 우열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우열이 없다고 했습니다. 반면 낮아 보이며 약하게 보이며, 덜 귀히 보이며 덜 아름답게 보이는 지체를, 예수님이 더 높이신다고 했습니다. 이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자신의 몸'을 고르게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합니다(고전12:19-25).
한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신부 후보생들'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에게 유익(헬. sumphero, 영. to be profitable)을 주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고전12:7). 어떤 유익인가요? (1) 수직계명, (2) 수평계명, (3) 지상사명 수행에 있어 큰 도움을 주는 유익입니다. 우수학생 되게 하는데 큰 도움 주는 유익입니다. 이 모두가 창조목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사43:7,21; 고전10:31).
이들 '신부 후보생들'을 창조목적에 충실한 자로 만들기 위한 유익입니다. 이들을 통해 '창조목적의 절대성과 중요성'을 크리스천들에게 나누게 하는 유익입니다. 이들을 통해 '재림의 임박성'을 외치게 하는 유익입니다. 이 '산고 시대'에, 이들로 하여금 (1) 끝까지 잘 견디며(마24:13), (2) 깨어서(마24:42), (3) 재림을 준비하며(마24:44), (4) 외치며 들림 받는 자가(마24:45-25:46) 되게 만드는 유익입니다.
이 유익을 받기위해, 우리는 최소한 상기 '주요 은사들'(key essential gifts) 중,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중요 요건 중 하나가 바로, 이 '성령님의 은사들'을 받는 것입니다. 모든 크리스천에게는 아닙니다. 일반 크리스천은 상기에 명시된 '주요 은사들'을 받지 않습니다. 사역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이런 은사들을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들은 이 '은사들' 없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다가 천국으로 갑니다.
물론 예수님의 신부 후보생들도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일반 크리스천들처럼 이들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세월을 아끼며 살아야 합니다(엡5:16). 상기에 열거한 '주요 은사들'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받고, 이 받은 은사들을 잘 활용하며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창조목적 학교의 우수학생으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바울에게 도전하셨습니다. "우수학생이 되려면 상기의 받은 은사들에만 안주하면 안된다. 이것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상기 은사들은 우수학생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며 필요요건 중 하나일 뿐이다. 최종 목표는 아니다. 그러면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사랑(헬. agaphe, 영. love, 조건없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사랑)이다. 이것이 복수이다.
상기 '주요 은사들'보다 더욱 유익되는(더 좋은, 헬. kleittona, 영. better) 은사들(헬. karismata, 영. Gifts, 복수)이 바로 이 '사랑 은사들'이다. 이것을 사모하라(헬. jeloute, 영. eagerly desire, 명령형). 그러면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12:31)라고 했습니다. 명령형입니다.
명령은 선택(option)이 아닙니다.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무엇을 명령하셨나요? "더 좋은 은사들을 사모하라"라는 명령입니다. "더 좋은 은사들이란 무엇인가?" 복수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사랑의 은사들'입니다.
"오래 참고, 온유하며, 질투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 유익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이웃의 잘못) 생각하지(마음에 기록하지) 않고, 불의(창조목적 위배행위)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예수님, 말씀)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 참으며, 모든 것 믿으며, 모든 것 바라며, 모든 것 견디기 입니다"(고전13:4-7). 이것이 더욱 유익되는 은사들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유익됩니까?
창조목적 학교의 우수 학생이 되는 데에 유익된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의 신부후보생이 되는 지름길 된다는 약속입니다. 우리 AMI 팀들 모두가 들림 받아 예수님의 혼인잔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주요 은사들'(key essential gifts) 중 하나인, '가르치는 은사'로 열심히 제자화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멈추면 안됩니다. 상기의 '사랑의 은사들'로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신부의 인격'입니다. 이 '신부의 인격'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에 100% 이 '신부의 인격'을 닮을 수 없습니다. 부분적으로만 닮을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모습으로만 닮을 수 있습니다.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만 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죽어서 낙원에 올라가면, 그때야 어느 정도 닮을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어서야 어느 정도 온전한 '성화'가 가능합니다(고전13:8-12).
그러나 성령님이 바울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성화 되기를 사모해라"(고전12:31)입니다. 단순 '사모하다'(헬. jelo-o, 영. eagerly/earnestly desire)가 아닙니다. 명령형(헬. jeloute)입니다. 반드시 성화 되려고 노력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이 '사모'란 단어는 질투(영. jealousy)에 어원을 둡니다. '거룩한 질투'입니다(출20:5). 창조목적 학교의 우수 학생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거룩한 질투심'입니다. 들림 받는 자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거룩한 질투심'입니다.
이 '거룩한 질투심'은 모든 크리스천이 가지는 마음이 아닙니다. 소수의 '신부 후보생들'만이 가지는 마음입니다. 일반 크리스천은 이런 '사모'하는, '거룩한 질투심'이 담긴 마음을 가지기 쉽지 않습니다. 이들이 종종 마음에 이런 소원이 있을 수 있으나, 행동으로 옮기기 못합니다(롬7:18,25). 예수님의 주권적 디자인입니다(롬9:6-23).
그러면 어떤 분들이 이런 '거룩한 질투심'을 가지게 되나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받은 분들이어야 합니다(롬1:7; 계22:21). 이런 분들에게 보혜사 성령님(요14:16)의 이끄심이 임합니다(롬8:9-17). 성령님께서 거룩한 질투심을 유발케 도와주십니다(요14:16). '사랑의 은사들'에 배고파하며 목마르게 해주십니다(마5:6). 주안에서 복 받은 분들입니다(마5:3-16). AMI와 SNS로 공부하는 분들 중에 이런 복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2023년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대망의 2024년이 눈앞에 있습니다. 지난 한해동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님의 이끄심'과 '거룩한 질투심'을 유발케 도와주심과, '사랑의 은사들'에 배고파하며 목마르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새해에는 보다 더한 분량으로, 더욱 업그레이드된 분량으로(롬12:3-13), 우리 모두에게 이 '성화의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황 용 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