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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8 07:14

황용현 컬럼 20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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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들림과 7년환난이 없다고 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습니다. 이 숫자가 적지 않습니다.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종말론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계에 네(4) 가지의 종말론 학설이 있습니다. 이 학설들이 같은 크리스천이지만, '이 세상'과 '예수님의 재림'을 보는 시각을 다르게 만듭니다. '성경 해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네(4) 학설이 이러합니다. 발생 순서로 (1)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al Premillennialism, 1-5세기, 16세기-현재), (2) 무천년설(Amillennialism, 5세기-현재), (3)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18세기-현재), (4) 세대주의적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19세기말-현재) 입니다. 이 네(4) 학설에 대한 자세한 공부는 저의 '종말론의 네(4) 학설' 강해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성경해석'에서의 다른 점을 보겠습니다. 두(2) 구룹으로 나눕니다. 첫째 구룹이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 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주로 문자적,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반면 두번째 구룹인 '무천년주의자들'과 '후천년주의자들'은 은유적, 상징적, 영적으로 해석합니다. 저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 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해석'에서 두드러지게 다릅니다. 첫번째 구룹이 이 요한계시록을 '미래적 사건과 예언'으로 봅니다. 요한계시록의 key 성구를 1:19로 봅니다. 이 성구를 세(3) 시대로 구분합니다. (1) 네가 본 것(1장), (2) 현재(주후95) 있는 일(2-3장, 아시아 7교회), (3) 이후에 일어날 일(4-22장) 입니다. '4-22장을 미래적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이 첫번째 구룹은 6천년때 예수님의 공중재림, 들림, 7년환난, 혼인잔치, 지상재림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실제 1천년)이 뒤따르며, 그후 심판이 있고, 7천년을 마무리한다고 믿습니다. 이 세상을 7천년으로, '창조목적 학교'로 봅니다.

 

반면 두번째 구룹은 '천년왕국'을 문자적 일(1) 천년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을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아주 긴 세월'(수천년-수만년)로 해석합니다. 이 천년왕국을 '교회시대'로 봅니다. 이 천년왕국이 미래의 왕국이 아니며, '예수님 초림'으로 이미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현재 이 천년왕국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종말론을 무천년설/후천년설이라 합니다.

 

이들은 천년왕국이 끝날 때(이 세상이 끝날 때), 예수님이 재림해 오신다고 합니다. 이때가 내일이 될 수 있고, 아니면 수백년, 수천년 후도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날과 시간은 예수님도 모른다고 합니다(마24:36). 이들 중 일부는 종종, 예수님의 재림의 임박성을 말하는 '전천년주의자들'을 이단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라고 평가 절하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종말론 학설에 무지한 교인들이, 이들의 이 비평에 종종 혼돈해 합니다.

 

또한 이 무천년/후천년 구룹은 '요한계시록'을 미래적 사건으로 보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전반을 '교회시대에 일어나는 현세적 사건'으로 봅니다. 교회시대에 일어나는 '선과 악의 대결스토리'로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첫번째 구룹에서 강조하는, 들림과 7년환난의 임박성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들은 장차 긴 시간 후, 천년왕국(아주 긴 세월)이 마칠 때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때 신부의 들림과 7년환난이 따로 있지 않고, 이 모든 일이 모든 성도들에게 동시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때에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으로(벧전2:9), 들림 받고 예수님의 신부로 신천신지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모든 성도가 왕노릇 한다고 합니다(계21:24). 이들은 영적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성도가 신부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합니다.

 

이런 종말론 사상이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의 마음에 깔려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에 대한 임박성이 약합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이 학설이 크리스천들을 '영적 유아'로 남게 만듭니다. 'Sunday Christian'과 '명목상 크리스천'(nominal Christian)을 양산하게 만듭니다. 천국의 소망보다, 이 세상 성공과 행복에 더욱 관심 두게 합니다. 두더지, 병아리, 참새 시작자로 남게 합니다.

 

잘잘복음, 번영복음, 기복 신앙, 치유 복음, 카운셀링 복음, 사회 복음에 시각을 고정시키게 합니다. 대부분 교회의 주일 설교가 이 주제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두 짐승'에 미혹되어, '종교다원주의'를 강단에서 공공연히 가르치기도 합니다. '영적 유아들'이 '종교다원주의'에 매력을 가지게 합니다. 구원을 상실케 합니다(마24:23-28). 안타깝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이 세상의 '나그네'이며 '순례자'(학생)라는 사실(히11:13; 벧전2:11)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인양, 이 세상의 성공과 행복만을 강조하며, 이들을 눈 감겨 놓고 잘못 인도합니다. 양의 옷을 입은 약탈하는 이리들입니다(마7:15). 약탈당한 크리스천들 중, 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되어서야, 드디어 이 사실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그 많은 시간을 허튼 데에 사용했다고 억울해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성도를 이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후천년주의'(이 세상 낙원화, 두 짐승 사상) 신봉자들의 결말이 이런 후회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분들 많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더하거나, 제하면', 이런 결과를 낳게 된다는 사실(계22:18-19)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일본은 물론, 세계 각나라에 이런 사상을 가진 크리스천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리는 이들과 다투면 안됩니다. 우리와 다른 종말론 사상을 가진 크리스천들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분량이 다릅니다(롬12:3-8). 그릇의 모양과 재료가 다릅니다(딤후2:20-21).

 

그러므로 다투면 유익이 없으며 오히려 파멸케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더욱 열심히 말씀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개종 32년후(주후35-67), 온갖 믿음의 여정을 거치면서 깨달았던 지혜였습니다. 이 지혜를 바울이 자신의 영적아들(딤전1:2; 딤후1:2), 디모데에게 유언으로(주후68 순교) 남겨주었습니다(딤후2:14-15).

 

우리는 이 바울의 지혜의 가르침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항상 이것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이런 분이 지혜자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크리스천을 안아주는 지혜입니다. 우리와 다른 종말론을 주장하는 분이라도 안아주는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자는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기 위해, 말씀공부 더 열심히 하도록 성령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사명 때문입니다. '내 민족'과 '타 민족'을 섬기는 사명입니다(마24:14). 이들이 더욱 성장하여, 수직계명, 수평계명, 지상사명을 순서대로 잘 순종케 하도록 도와드리는 사명입니다. 또한 상기와 같이 후회하는 자들이 없도록 도와드리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만으로는 성취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의 도움받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은혜가 따라주어야 합니다(계22:21). 우리는 '우리의 자신'과, '우리가 섬기는 분들' 위에, 이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황 용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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